'이조(李曺)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보수는 무얼 보지 못했나?

[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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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비리로 실형을 받은 조국이 급조한 정당이 비례 의원을 뽑는 지지율에서 양당의 지위를 위협하고, 전과가 수두룩한 이재명 대표가 공천을 사당화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명횡사'로 거센 비난을 받았던 민주당이 크게 승리할 것이라는 현상에 대해 내가 만나는 많은 보수권 사람들은 ‘저쪽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사실 외교적이고 점잖은 표현이고, 사회주의적 분배를 강조하고, 범죄자들이 주도하는 “이조조선(李曺朝鮮)”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적으로 무엇인가 정상이 아닌 무식한 사람들일 것이라는 뜻이다.
  
  트럼프가 10년 전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과정에서도 미국의 언론과 식자들은 이해힐 수 없는 현상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과거의 여성에 대한 막말과, 전쟁 영웅인 존 맥케인 상원 후보의 군 경력을 조롱했다. 온갖 금기를 무시하는 악동은 곧 몰락할 것이라던 정치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힐러리를 물리치고 대권을 잡았다.
  
  그 이후에도 온갖 구설수를 만들고, 전직 대통령으로서 기밀 문서의 은익을 포함해 89개가 넘는 위반 사항으로 4개의 형사 범죄로 기소되고, 자산 가치를 부풀려 불법적으로 융자를 받았다는 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불륜을 숨기기 위해 뒷돈을 주며 입막음을 했다는 범죄와 성폭력을 했다는 폭로를 한 작가의 명예를 훼손한 죄로 유죄를 받고, 160개가 넘는 재판에서 부인 당한 부정 선거로 패배했다며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폭동을 유도했다는 혐의로 ‘민주주의의 위협’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압도적으로 당선되고 현직 대통령 바이든을 앞서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미국 언론과 지식인들도 우리의 야당 지지를 보는 보수권과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다. 이들의 반응 또한 우리의 보수권과 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정치전문가들과 식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어 왔다.
  
  이 현상에 대해 식자들은 많은 설명을 더하며 이해하려고 애를 써왔다.
  
  하나는 트럼프나 우리 사회의 이조(이재명, 조국)는 식자들이 생각하는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정치적 동물'들이라는 견해다. 트럼프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해서 ThinkProgess의 편집장인 주드 레검은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에게서 찾는다. 바르트는 1980년에 사망한 프랑스 철학자이다. 1957년 그의 저서 신화론(Mythologies)에는 '레슬링의 세상(The World of Wrestling)'이라는 에세이가 실려있다. 프로 레슬링에 관한 분석이다.
  
  우리는 권투와 프로 레슬링의 차이를 잘 알고 있다. 권투는 스포츠이고 규칙에 따라 싸우며 승패가 갈린다. 프로 레슬링은 스포츠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엔터테인먼트과 연출이다. 권투에서 반칙은 실격패를 당할 수 있지만 프로레슬링은 관객에게 순간적으로 흥미를 자아내면 그만이다.
  
  선거 운동에서 트럼프는 프로레슬러처럼 행동하고 있고, 트럼프의 상대 후보들은 권투 경기처럼 레이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 트럼프는 미국 프로레슬링 협회 명예회원이다. 나머지 선수들이 다음 잽을 가늠할 때, 트럼프는 금속 의자로 그들의 머리를 처버린다는 것이 분석의 핵심이다. 전혀 다른 룰에 의해 싸우고 있는 새로운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조국과 이재명, 그리고 막말 대행진을 하고 선동적 거짓말을 일삼는 야당의 후보들이 당선되고 그런 정치인들이 다선 의원들로 건재한 것에 대해 우리 보수권은 그런 후보들을 찍는 유권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를 반복한다. 그들은 프로레슬링을 하고 있고 관객은 즐거워하고 자신들의 분노와 실망을 대신해주는 '사이다'라 하고 있는데 이 바뀐 룰을 보수권은 인식 못하고 품위와 도덕성 타령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약속했던 특권 폐지를 번복하고 국회를 방탄용으로 사용하고, 서초동에서 대규모 집회를 하고, 이들은 이미 프로레슬링을 하고 있는데 권투의 규칙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보수권인지도 모른다.
  
  가장 흔한 설명은 사회가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고(정치적 양극화), 그 결과 진영 정치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즉 후보나 정책이 아니라 '우리 편인가 아닌가'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일부는 소셜미디어를 비판한다. 소셜 미디어의 '에코 챔버(메아리가 증폭되는)' 현상이나 정치적 편향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잘못된 지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들은 과학적 근거도 별로 없다. 실증 연구들은 소셜 미디어나 언론의 영향력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이 모든 설명들은 유권자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보수권의 정치 고관여 사람들은 주택 가격을 급등시켜 청년들을 절망에 빠트리고, 종부세로 중산층을 강탈하고, 최저임금 급격 상승으로 물가를 크게 올리고, 자영업을 궁지에 몰아넣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경제 실정과 대파 가격을 갖고 물가를 공격하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후보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어떻게 온갖 범죄로 얼룩진 조국과 이재명의 결점을 보지 못하냐고 왜 586 운동권을 심판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트럼프의 인기가 유권자들의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것은 트럼프가 사회 문제 해결에 무능하고 정쟁에만 몰두한 말뿐인 기성 정치권과는 달리 트럼프는 즉각적인 의사결정과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선거는 반복되는 논쟁으로 채워진다. 이민에 대한 논쟁, 총기 규제에 관한 논쟁, 범죄에 관한 논쟁, 그리고 성소수자 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에 대한 배려의 논쟁이 반복된다. 그런데 국민들에게는 이념에 충실한 관념적 논쟁일뿐 자신들의 일자리나 경제적 불안에 대해 정치권은 아무런 해법도 선택도 하지 못하는 양당의 이념적으로 무장된 소수에 장악된 것에 실망을 계속해온 반면에, 트럼프는 집권하자마자 그 실효성이나 논리는 차지하고라도 중국에게 즉각적인 관세를 부과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막겠다고 국경에 담을 세우는 선택을 하는 실천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념에서 자유로운 실용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는 대법원을 바꾸어 낙태가 여성의 기본권이라는 대법원의 과거 판결을 뒤집었지만 강경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전면적 낙태 금지에 찬성하지 않고 각 주의 결정이라고 중간선에서 입장을 취한다. 중국을 때리면서도 시진핑과 협상해 좋은 관계를 자랑한다. 중국 때리기에 열심이지만 틱톡의 금지와 강제 매각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 이런 것들이 유권자들에게 실용적이고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반대자들은 그가 미국의 민주주의에 위협일 것이라는 주장으로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 주장에 동조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미국 국민들은 미국의 제도와 관습이 독재 대통령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부통령 비롯해서 법무부 장관 등에 압력을 가해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고 했지만 그가 임명한 사람들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의 부정 선거 주장은 160번이 넘는 재판에서 어떤 법정도 동의하지 않고 모조리 기각했다. 그의 범죄 혐의는 배심원과 법원에 의해 채택되어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이 4개의 법정에서 피고인으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사실이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즉 독재자가 되리라는 반대자들의 주장이 과장되고 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라고 유권자들이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 뉴욕타임즈의 기고 칼럼에서 제시된 설명은 유권자들의 선택이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현상에 대한 합리성을 전제한 설명을 한국 총선에 적용해 보면, 보수 일각의 “이해할 수 없다”는 한국의 유권자들의 선택에 대해 유사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은 주식 시장의 그것과 유사하다. 금융에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라는 것이 있다. 주식 시장이 변동성이 강하고 루머에 출렁이는 것 같아도 결국은 기업의 가치들이 제대로 반영된다는 이론이다.
  
  주식 시장에는 상장 기업의 성과와 가치, 그리고 기업이 취한 과거의 선택들을 잘 이해하는 기관투자자들이 있는가 하면 시세에 따라 반응하고 그런 장기적이고 깊이 있는 정보를 갖고 있지도 않고, 정보를 취할 능력도 결핍한 단기적인 개인투자자들이 공존한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의 가격에 반응하면서 사고 파는 것들은 결국 효율적 시장에 같이 기여한다. 이 두 그룹을 장기적 기억을 갖는 투자자와 단기 기억만 있는 투자자로 나누어 부른다.
  
  정치에서 조국이 과거에 어떤 짓을 했고, 전 정권에서 무엇이 진행되었는지를 기억하는 정치 고관여 유권자들이 있고, 정치에 관심이 적은 정치 무관심의 유권자들이 혼재한다. 하지만 이 단기 기억만 있는 유권자들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주식 시장의 개인투자자들의 움직임과 동일하다. 비록 정보가 적지만 주식 시장의 흐름을 보고 기업 가치를 추정하는 반응들이 시장의 합리적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정치 고관여 사람들의 주장이 합리적인가 아닌가를 민심은 판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총선 결과 보수 여권의 폭망을 이해할 수 없는 지지자들은 국민의 선택으로 비난하고 수용을 거부하기 전에 자문해봐야 한다. 왜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그 이전의 지방 보궐 선거에서는 지금의 보수 여당이 승리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대패했는지를. 그때 국민이 바른 선택을 했다면 이번 선택만 잘못된 선택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국민이 단기간에 바보들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다”는 설자리가 없다.
  
  이번 총선의 프레임은 정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이다. 이는 정권 즉 대통령에게 의회 권력까지 더해 주는 것이 국가와 내 삶에 더 좋은가 야당에게 행정부의 권력을 통제하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선택인가의 결정이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정권 심판론 즉 윤석열 대통령에게 행정부의 권력에 의회 권력까지 함께 주는 것이 훨씬 위험하다는 명백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독단적이고 권력을 남용하고 일방적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국민의 의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윤 대통령을 국민이 위험하게 보는 징후는 이미 지난 2년의 집권 과정에서 국민들이 명확하게 표시해왔다. 집권 2개월부터 부정 지지가 긍정 지지에 비해 두 배가 되는 지지율에 큰 변화가 없이 진행되어 왔다. 그것은 여당에 대한 그의 일방적 굴복의 요구, 이준석 축출의 정치 공작 때부터 국민들에게 그렇게 인식되어 왔다.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의 참패는 더 분명한 신호였다.
  
  이런 부정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리면 선거 과정에 뒤로 숨는 것이 상식이다. 대통령과 의원들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코트테일 (Coat-tail, 코트 뒷쪽의 꼬리) 효과'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대통령 지지가 높으면 그 덕에 자당 의원들이 더 많이 당선되고 반대의 경우 당선이 어렵다는 네가티브 코트테일 효과다. 이런 경우 대통령은 완전히 뒤로 숨어야 한다. 그런데 강서 보궐선거의 실수를 대통령은 이번에도 반복했다.
  
  상승세를 타던 국힘당의 기세를 꺾이게 한 것은 윤 대통령이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황상무 수석의 해임 지연, 그리고 의료 갈등에 전면에 나서고, 민생 토론회를 통해 전면에 나서면서 시작되었다.
  
  왜 야당 심판론은 먹히지 않았고, 범죄자들을 당선되나? 흔히 하는 말이 어떻게 저런 비도덕적이고 전과자들의 정당을 지지하느냐 하는 말들이다. 정치인의 선정 기준이 도덕성이어야 하는지, 정치에서 도덕을 최우선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지에 대해서 나는 늘 의문을 품어왔고 회의적 견해를 밝혀 왔다. 성리학적인 군자를 뽑으면 좋겠지만 그들이 유능한 정치를 할 것이라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인정치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덕성은 사전에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는다. 권력이 없었을 때와 권력이 있었을 때 인간이 하는 행동이 다르다.
  
  하지만 왜 말도 안 되는 '이조 조선'을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지지하는가?
  
  하나는 정권 심판론의 긴급성이 국민들에게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지금도 당대표이고 국회의원이다. 이 현상이 지속되는 것일 뿐 국민들에게는 새로운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왜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조국이 스타로 부상하는가? 내가 며칠 전에 길거리를 걷는데 젊은 여성 두 분이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권력을 갖고 있는 윤석열, 한동훈이 야당을 심판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하며 혀를 차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이 핵심이다. 국민은 권력의 집중이 더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조국과 이재명에 대한 위험성은 지금 국민이 판단할 시급성이 없다. 이들이 정권을 잡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은 다음 대선에서 고민하면 된다. 즉 현존하는 긴급한 위험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나 독재 가능성을 믿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여당의 극성 지지자들은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이미 윤정부와 보수권의 도덕적 우위는 무너졌다. 그것은 김건희 여사와 처가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에서, 그리고 수사 대상인 이종섭 전국방장관의 호주 대사의 임명과 수사 중 발령으로 정의로운 대통령의 도덕적 기반을 스스로 허물었다.
  
  여당의 확고한 지지층이 아닌 국민들에게 사법권이 어느 편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즉 저들이 검찰 독재의 피해자라는 주장을 할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우리는 모두 공평함에 민감하다. 절대적 평등을 지지하지 않지만, 공정하고 공평함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분노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사법권을 편에 따라 적용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킨 것이 김건희 특검의 거부권 행사이고 이때 한마디도 못하는 한동훈의 정체성도 함께 함몰된 것이다.
  
  과도한 정치적 특검이라는 논리는 일부 보수권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그 생생한 동영상과 김건희 여사의 발언,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대한 혐의와 처가의 고속도로 인근의 땅투기 혐의에 윤 대통령은 그가 검찰에서 행했던 검찰권 행사와 너무 다른 위선적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저들을 도덕적으로 심판하려면 내편에게 훨씬 더 엄격했어야 했다.
  
  이재명의 전과 사실과 범죄 혐의, 조국 일가의 범죄 혐의와 실형 선고는 이미 온국민에게 오랫동안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실들은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이들 정보는 이미 국민들의 판단에 다 적용된 정보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이미 주가에 반영된 정보를 갖고 주식이 추가로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그들을 선택하면 안되는 새로운 이유, 아니면 여권을 지지해야 할 이유가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미 온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갖고 '야당 심판론'을 제기했다. 야당을 심판하려고 했으면 여당은 국회에서 정말 열심히 싸웠어야 했다. 더 좋은 입법안을 내놓고 죽을 각오로 싸웠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여당은 너무나 웰빙 정당이었다. 부당한 특검이 발표되었으면 그 부당한 행사가 얼마나 국민적 피해인지 경험하게 두었어야 했다. 그런데 검찰에 박해를 받는 야당으로 연출되었다. 이런 박해 받는 야당을 심판하라는 것이 설득력을 잃은 것이다.
  
  여당이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의 근원인 윤 대통령을 여당과 지지자들이 제어 해야 한다. 그의 한계는 오래 전부터 너무나 명백했었다.
  
  이재명을 물리쳐준 공을 다시 팔 수는 없다. 이재명이나 조국을 다시 물리쳐줄 사람도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다. 그 고민을 국민은 지금 하지 않고 있다. 다음 대선에서 하면 된다.
  
  그보다 앞서 극성 보수층의 현실 부정의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민심은 옳다'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내가 부정선거론을 걱정해온 가장 근본적은 이유가 이것이다. 부정선거론은 현실 부정이다. 희망 고문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윤 대통령은 이준석에게 사죄하고 불러들이는 것부터 해야 한다. 의사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그래서 대선 승리의 정치 기반을 복원해야 한다. 아마도 윤 대통령 자신보다는 다음 대선 후보군을 키우면서 그들의 경쟁을 통해 이루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여당 안에 빨리 대선 후보군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해법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오래 전에 페북에서 썼던 것처럼 검찰은 아젠다 세팅을 잘하는 창조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장 비창조적이고 틀을 벗어나서는 안 되는 직업이 법률가들이다. 정무 감각과 정치에 훈련이 안된 채 권력을 잡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자회견도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시장에도 선거에도 절대적 기준이 작동하지 않는다. 대안 중에서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상대적 비교일 뿐이다. 제시된 위협 중에 더 위협적인 것을 배제한다. 그래서 절대적 도덕적 마지노선이나 금기가 있다는 가정은 위험하고 틀린 것이다.
  
  이 선택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내가 이기면 민주주의와 민심의 승리이고 내가 지면 나라와 국민이 미쳤다는 인식으로는 보수는 희망이 없다. 주식시장이고 정치고 냉정함을 잃으면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
  
  
  
  #국힘당 총선참패, #야당 압승, #프로레슬러, #트럼프 상승세, #최보식
[ 2024-04-12, 18: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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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야의 함성     2024-04-12 오후 9:34
마치 (자유방임적)시장 자본주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잘 작동될 수 있는 것처럼 가정하듯이, 소위 민주적 선거제도를 통한 국민들의 선택도 파국적 결과가 이니라 그나름 대로 합리적인 결과로 나아 갈수 있는 듯이따라서 국민들의 선택은 옳다라는 주장과 유사한 필자는 주장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의 구체적인 역사를 간과한 그리고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역사를 역시 간과한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의 선택 역시 옳다거나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주장을 념두에 둔 필자의 일방적 주장일뿐이다.

각국의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더라도 시장의 자율성에 오로지 기반한 자본주의 체제는 없었고
항상 국가내지 정부의 크든 작든 간섭이 중첩된 과정을 부단히 계속 겪으며 그것도 부침을 겪고 있으며, 민주주의 역시 일단 도달되면 그 다음부터는 계속 잘 작동되는 기계가 아니라 언제라도 민주적 성격을 잃거나 부단히 위협받는 항상 생성적 성격을 지닌 유동체에 불과할 뿐이다.
단적인 예로 역사적으로 가장 민주적인 독일의 바이마르체제에서 히틀러의 나치정권도 그바로 국민들의 민주적 선거절차에 의해서 성립됐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댓글에서:
현재의 야권 세력을 진보라고 이름붙이는 것 부터가 어불성설이다. 과거와 비교해서도 좌파라고 이름 붙이기도 낮 부끄러운 단지 보수 진영의 반대편에 좌파인척 가면을 쓰고 있는 사이비 좌파 범죄혐의자 패거리 일뿐이다. 이번 선거의 극도의 파행적 성격은 2년전에 스스로 직접 선출한 현 권력에 대해 오만, 독선이라는 프레임을 걸고 그에 대한 단순 불만족을 화풀이 하듯 폭발시켜 완전 후안 무치한 도덕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문제가 큰 범법 혐의자 패거리들을 압도적으로 지지 투표하여 선출하는 자가당착적, 허무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도착적이기까지한 추하디 추한 선거일 뿐이다. 국민의 선택이라고 안그러면 마치 신성모독을 범하는 냥 무조건 그 선택이 옳다는 바부소리는 이제 그만 하자! 독일의 나치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선거로 집권했다.
어쨌든 이에 대한 심각한 후과는 그런 결과를 선택한 국민 스스로가 치르야할뿐이다.

위 댓글의 보완적 댓글:
지난 수십년 동안의 소위 민주화 시민 학생 운동권들이 우리 사회 각 부문의 여론과 의식을 점차적으로 잠식하며 진지전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기존의 보수 주류에 대한 반대, 거부, 저항, 파괴적 좌경적 성향이 곧 진보고 정의이자 심지어 유행적인 것으로 여겨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북한의 극도로 퇴영적 낙후한 전체주의적 본질로 인해서 전혀 긍정적인 대안적 상을 구체화 할 수 없는 딜렘마적 자가당착성이 이번 선거에 임하는 40, 50, 60대 초반 까지 세대의 투표성향에 그대로 표출됐다고 본다. 앞에서 제기한 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밉더라도 어떻게 도덕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까지 문제가 있는 야당 세력들을 압도적으로 혹은 말그대로 맹목적으로 지지하며 투표하여 향후 벌어질 파국적 상황이나 긍정적 대안적 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현재의 기존 권위를 일단 우선 부정하고 보자는 자가당착적이고 허무주의적이고 심지어 도착적일 정도의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무학산     2024-04-12 오후 7:27
나의 견해로 저 글은 억지다
먼저 '이조(李曺)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보수는 무얼 보지 못했나?'라는 제목부터가 거슬린다
타인을 향해 무얼 보지 못했나 라고 말하면 본인은 무얼 보았다는 말이 되고
본인의 시력이나 생각이 앞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른바 이조현상을 트럼프 현상과 나란히 놓은 것도
논증이 체계적이지 않다고 하겠다
이조 현상의 뒤에는 어떤 식으로든 북한과 중국이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뒤에도 중국과 북한이 있는가.
남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일에는 북한과 중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 크게 잘못이 아니다
이전에는 우리의 선거철이 되면 북한에서 겨우 총질이나 하여 우리 선거를
자기네 영향 아래에 두려 했지만 이젠 어떻게 하는 지 다 알 것이다

민노총이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는 가히 노동자 천국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간첩짓을 했다 미국에도 이런 현상이 있고
트럼프 주위에도 이런 일들이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네 사회현상은 중국과 북한을 떼어놓고 설명될 수 없지만
미국은 우리처럼 심하지 않다
따라서 이조현상과 트럼프 현상을 나란히 놓고 예시 삼는 것은
비형식적 논리의 오류라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트럼프 현상을 끌어다 자기 주장에 이용들을 하고 있지만
그들도 미국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얻은 지식일 뿐 밑바닥까지 속속들이
사정을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외국의 문제를 우리 현상에 빗대는 글은 읽지 않는다
일반인이 잘 모르는 외국의 일을 예로 들면 독자는 그런가보다 하고 말며
글쓴이의 의도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자기 주장을 찬성받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그 사람 역시 외국인이므로 하나의 구경꾼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의 일도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데
하물며 외국인이 외국의 현상을 자기 주장의 논거로 삼는 것은
자료의 신빙성이 없다 할 것이다
그래서 저 부분까지만 읽고 더 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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