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부동산 현실 인식, 어안이 벙벙

부동산은 국민에게 엄포를 놓는다고, ‘투기 타파’ 구호만 반복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제 대통령께서는 SNS를 통해 “조기 대량 공급과 투기 수요 억제, 고금리에 따른 대출 연체와 경매 폭증 등으로 주택가격이 폭락할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택가격 폭락을 예견하는 것부터 황당하지만, 그 근거로 내세운 ‘조기 대량 공급’, ‘투기 수요 억제’, ‘대출 연체와 경매 폭증’은 대통령께서 여전히 부동산 시장과 민생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공급 목표만 요란할 뿐 구체적인 일정과 실행계획조차 보이지 않는 정부의 공급 발표를 ‘조기 대량 공급’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대단히 큰 착각입니다. 대통령 임기 내 착공조차 불투명한 계획들로는 집값을 안정시킬 수도, 국민에게 공급의 확신을 줄 수도 없습니다. 집값 폭락은커녕 정부가 과연 실제로 주택을 공급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부터 의심하게 만들 뿐입니다.

혹시 대통령께서는 최근 강남권 일부 매물이 가격을 낮춰 나온 현상을 ‘투기 수요 억제’의 성과로 보고 계신 것입니까. 징벌적 세금과 장특공 축소 시행을 앞두고 초고가 주택 일부가 일시적으로 호가를 낮춘 것을 시장 전반의 가격 하락으로 판단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오히려 서울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오르며 ‘가격 키 맞추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정책 성과로 평가하신다면 잘못된 보고를 받고 있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대출 연체로 경매 물건이 늘고 있다며 이를 마치 주택가격 하락의 전조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경매 물건이 늘어난다고 집값이 자동으로 하락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격의 흐름을 판단하려면 낙찰률만 볼 것이 아니라 감정가 대비 실제 낙찰가격을 나타내는 낙찰가율을 함께 봐야 합니다.

올해 7월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101.0%로 4개월 연속 100%를 웃돌았습니다. 경매 물건이 늘어났는데도 서울에서는 감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대통령께서 관심을 가져보라고 하신 경매 지표는 집값 하락의 조짐이 아니라 서울의 두터운 대기 수요와 심각한 공급 부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출 연체와 경매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인식은 심각하게 우려스럽습니다. 경매에 나온 집의 소유자가 모두 무리하게 대출받아 주택을 사들인 투기꾼은 아닙니다. 그중에는 내수 부진과 고금리를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도 있고,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나뿐인 집을 담보로 제공했다가 생업과 삶의 터전마저 잃을 위기에 놓인 평범한 국민도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경매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집값 폭락의 신호인 양 반길 것이 아니라, 경매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국민의 고통 앞에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셔야 합니다.

대통령의 비현실적인 발언 뒤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장 내놓을 실질적인 공급 대책이 없으니 대통령이 직접 ‘집값 폭락’을 거론해 시장에 공포를 불어넣고, 주택 보유자들을 쥐어짜서라도 매물을 내놓게 하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부동산은 국민에게 엄포를 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투기 타파’라는 구호만 반복한다고 시장이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수요와 공급, 금리와 금융, 매매와 임대차가 복잡하게 얽힌 시장을 정확한 데이터와 냉정한 현실 인식으로 다뤄야 합니다.

더 이상 임시방편과 공포를 앞세워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잘못된 부동산 정책 기조를 전면 재검토하고, 국민이 원하는 곳에 실질적으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공법을 택하십시오. 지난 1년간 국민들도 대통령도 이미 충분히 겪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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