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미국을 간 길에 세탁소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났었다. 가게에 놓여 있는 세탁기 창 안으로 옷들이 거품과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와이셔츠를 다리면서 말했다.
“내가 빨고 다린 옷들을 사람들이 입는 걸 보니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어. 내가 일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데도 세탁물을 가지고 간 사람들이 다시 가지고 와. 나 같이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 그래도 먹고 살 수 있는 걸 보면 가슴이 뿌듯해.”
소년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였다. 변했다. 부잣집 아들인 그는 놀기를 좋아했었다. 고교 동기 중에 소를 키우는 친구가 있다. 명문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우리 학교 출신들은 대부분이 의사나 법조인이 되려고 했다. 그는 매일 같이 짐승의 똥을 치우는 일을 선택했다. 동창회에서 그를 인터뷰해서 글을 쓰라고 했다. 그가 서울로 올라오는 날을 기다려 강남역 부근의 커피숍에서 만났다.
“새벽에 우사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많은 소들이 반갑다고 달려와. 머리를 디밀고 몸을 비비고 손을 핥고 하면서 사랑의 보답을 해. 이제는 소의 표정만 봐도 다 알아.”
그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소가 새끼를 낳을 때면 밤을 새야 하는 고된 일이지. 땀 흘려 받아낸 송아지가 일어나서 처음으로 그 선한 눈망울로 나를 볼 때면 참 좋아.”
각자 하늘이 맡긴 일이 있는 게 아닐까. 오래 전 일이다. 밤이 늦었다. 텅 빈 대학로에는 택시 몇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 구석에는 쓰레기를 담은 봉투들이 쌓여 있었다. 택시로 다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서초동으로 가주세요.”
택시가 쓸쓸한 밤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핸들을 잡은 기사의 등이 굽어 있었다. 그가 백밀러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그가 보였다. 오십대 말쯤 됐을까.
“손님 불편하시지 않으면 말씀을 좀 나눠도 될까요?”
“그러시죠.”
“저는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공장 사장을 했죠. 어느 날 출근해서 프레스를 봤어요. 평소에 거의 만져본 적이 없는데 그날따라 작동해 보고 싶더라구요.”
택시가 종로 5가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 그 부근은 예전에 기계상이 많았던 곳이다.
“기계가 움직이는 순간 왼쪽 손가락 세 개가 뭉텅 잘려버린 거예요.”
내 눈 앞에 잘려 나간 손가락들이 뒹굴었다.
“손가락이 없어지니까 의외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더라구요. 불행이 겹쳤어요. IMF가 닥쳐와서 공장이 망했어요.”
마음이 무거워졌다.
“실업자가 되어 방에 웅크리고 있으니까 우울증에 걸려 폐인이 되겠더라구요. 구청 사회과에 가서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손가락이 없으니까 일용 노동직 자리도 없더라구요.”
택시는 어두운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상점들이 문을 닫고 고양이 한 마리가 도로에 가져다 놓은 쓰레기 봉지를 뜯고 있었다.
“택시회사를 찾아갔죠. 제가 남은 손가락으로 운전은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손님이 다치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안되겠다고 하더라구요. 빌고 또 빌었더니 그 택시회사의 제일 고물차를 맡기더라구요. 막대식 기아에 털털거리는 수명이 다 한 차죠. 사납금을 벌기는 애초 불가능했죠. 하지 말라는 소리였어요. 그래도 했어요. 하루 종일 일하고 부족한 사납금은 제 비상금으로 메웠어요.”
죽기 직전의 벌레가 버둥거리는 환영이 떠올랐다.
“마음이 위축됐었죠. 그렇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데 당당하고 떳떳하지 뭐가 잘못됐습니까?”
그의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마음 한번 바꾸어 먹으니까 세상이 달라집디다. 다치기 전에는 나밖에 몰랐어요. 그런데 손가락이 없어지고 나니까 알겠더라구요. 이제 저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이 핸들대를 사랑할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살아났다.
“열심히 운전해서 이번 크리스마스에 막내놈 군대 가기 전에 따뜻한 세타라도 하나 사 입히려고 해요.”
내가 수십 년 다니던 법정은 화려한 무대였다. 재판장은 붉은 등받이 의자에 검은 법복을 입은 왕의 배역이었다. 변호사들이 대기석에서 자기 사건을 부를 차례를 기다렸다. 내 사건을 부르면 나는 무대로 올라가 몇 마디 하고 내려와야 하는 단역 같았다. 나는 이런 역할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그 자리를 뛰쳐나오고 싶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 잠시 SBS의 ‘사건파일’이라는 시사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았다. 재연 장면 촬영에 동원된 엑스트라들과 함께 칼국수를 먹을 때였다.
“난 오늘 역장 역할을 맡았어. 대사가 하나 있어.”
그는 기분이 너무 좋은 듯 얼굴이 활짝 펴졌다.
“난 행인 1이야. 여기 변호사님 뒤에서 지나가는 역이야”
그들에게 대사 한 마디는 보물이었다. 매일 쏟아냈던 내 변론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삶의 대사였음을 알았다.
나는 법정에서 내 마음대로 대사를 할 수 있었다. 작가가 될 수도 있고 연기자가 될 수도 있었다. 증인들을 움직이는 연출자이기도 했다. 나는 알았다. 변호사가 천직이라는 걸. 법대 위에 올라가 할 한마디에 최선을 다했다. 정성을 다해 변론서의 글 한 줄을 만들었다. 그 분은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했다.
대사(臺詞) 한 마디가 보물인 사람들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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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1, 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