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 두 매체의 부동시(不同視) 현상
저승사자와 저격수는 과연 누구에게 칼질하고 총부리를 겨눌 것인가?

문무대왕(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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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총장 후보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내정하고 청와대 정책실장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이 두 명의 고위공직 인사에 대해 동아일보(6월22일)는 "'저승사자' 檢총장 이어 '저격수' 靑 실장…재계 긴장"이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다. 작은 중간 제목으로 "경제정책 대전환 기대 사라져, 대기업에 일방 양보요구 우려"라고 보도했다. 이같은 우려와 비판과는 달리 한겨레신문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임명에 대해 '문재인표 경제개혁의 상징'이라 했고, 신임 경제수석 이호승에 대해서는 '기재부 내 닮고 싶은 상사'라고 호평 보도했다.
  
  동일 인물에 대한 두 신문의 시각이 이렇게 부동시(不同視)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한 매체는 친여·친정부적이고, 한 매체는 권력에 대한 비판·감시기능을 나름대로 살리려고 노력하는 신문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바라본다면 두 매체의 부동시 현상이 참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검찰총장 후보 윤석열은 눈의 부동시(不同視) 현상으로 병역면제된 것으로 보도됐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의 굴절이 다르거나 같은 종류의 굴절이라도 그 굴절도가 다른 것이 부동시 현상이다. 두 신문 가운데 하나는 같은 인물평에 대한 부동시 언론시각(不同視言論視覺)을 가지고 있다는 의심에 대해서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윤석열에겐 '저승사자' 외에도 '칼잡이 검사'란 '닉네임'을 언론이 붙여줬다. 그의 거친 수사 스타일을 풍자하며 기자들이 작명한 것이다. 김상조는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참여연대' 등의 활동을 통해 '재벌 공격수'란 소리도 들었다. 김상조가 공정거래위원장이란 권좌에 앉아 '공정경제 실현'이란 미명 아래 재벌 총수들에게 큰소리 탕탕 치자 재벌은 그의 눈치 살피기에 정신이 없었다는 기사도 종종 있었다. 김상조가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 정책실장이란 권력의 중심에 앉았으니 앞으로 그의 거취에 대해 언론이 우려할 만도 하다.
  
  '저승사자'와 '저격수'는 같은 '저氏' 일족(一族)이다. 언론이 작명해 준 '닉네임 성씨'이다. 굳이 본관(本貫)을 따진다면 '권력저씨'(權力저氏)쯤 되지 않을까? '저승사자'와 '저격수'의 닮은 점은 권력지향성이 비슷하거나 같은 점이다. 오늘의 낮은 권좌에는 성에 차지 않아 더 높은 '권력의 고지(高地)'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고 앞으로, 앞으로 돌진과 공격을 계속한다.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두르고 총부리를 겨눈다.
  
  적폐청산의 칼과 총부리 앞에 희생자가 속출했고 살아 남은 자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과 국정원장, 장관도 추풍낙엽 신세다. 맹수처럼 용맹하게 고지를 향해 진격하는 그들 앞엔 그 옛날의 선배나 상사도 짓밟히는 한 포기 잡초(雜草)같은 가련한 처지에 있다. 오로지 돌격! 돌격! 밀어붙이고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승리의 그날까지 진격의 행군이 있을 뿐이다.
  
  '저승사자'와 '저격수'가 가는 전선(前線)엔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참혹함이 널부러졌고 그 참상이 앞으로 또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우려하는 세론(世論)이 분분하다. 언론은 때가 되면 한국판 '저씨' 시조(始祖)와 족보에 따라 '저00' '저00'로 창씨개명(創氏改名)해서 보도할지도 모른다. 윤석열과 김상조가 목표로 삼는 권력고지의 표고가 몇부 능선인지 궁금하다.
  
  중국에도 '저씨'가 있었다. 중국의 고전 장편 신괴(神怪)소설 '서유기'(西遊記)에 '저팔계(猪八戒)'란 자가 등장한다. '저팔계'는 '하천의 괴물이며 충직한 비관주의자 사오정(沙悟淨) 등을 포함한 일행은 요괴의 방해를 비롯한 기상천외의 고난을 수없이 당하지만 하늘을 날고 물 속에 잠기는 갖가지 비술(秘術)로 이를 극복하여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 공적으로 큰 부처가 된다는 설화를 소설화했다. '저팔계'는 여자에 대한 버릇이 나빠 천계(天界)의 왕인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하계(下界)로 내팽개쳐졌다. 구제불능의 게으른 자이거나 일도 하지 않고 요술을 부려서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데 능했다고도 한다. 중국의 '저씨(猪氏)'와 한국의 '저씨'에 대한 자료를 모아 보면서 문득 1555년 12월2일 조선조 명종에게 올린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의 '을묘사직소'가 뇌리(腦裡)를 스쳐갔다. 요약해 봤다.
  
  "전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없어지고 민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워 손쓸 수 없는 지경입니다.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권세가들은 백성 벗겨먹기를 마치 여우가 들판에서 날뛰는 것과 같습니다. 소신(小臣)은 하늘을 우러러 깊이 탄식하고 밤이면 천장을 쳐다보며 답답해 흐느끼고 있습니다."
  
  남명 선생이 흐느끼며 임금에게 올린 강직한 상소(上疏)가 과연 명종 임금에겐 어떻게 와 닿았을까? 북한의 목선(木船)이 몇날 며칠을 우리 해역을 휘젓고 다니다가 삼척항 방파제에 접안했다. 뻥 뚫린 해안안보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방안보가 무너졌는데도 책임지는 자 한 사람 없고 변명과 허위보고가 판을 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같이 분통터질 일에 대해 대통령은 국민에게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만 하고 있으면 그만인가? 철저조사, 엄벌조치 등 수없이 말만 하고 실천 없는 헛구호는 허공에 떠다니는 구름이나 다름없다. 오늘 대통령 주변에 남명선생같이 직언하며 걱정하는 측근은 몇이나 있는가?
  
  포악한 저승사자와 무자비한 저격수는 공포의 대상이다. 저승사자와 저격수는 과연 누구에게 칼질하고 총부리를 겨눌 것인가? 대통령 주변에는 저승사자와 저격수같은 강성분자는 필요없다. 오로지 대통령이 덕치(德治)와 선정(善政)을 베풀도록 보좌하기 위해 권력야욕이 없는 성실한 측근이 필요할 뿐이다.'대통령은 측근이 문제요, 재벌은 핏줄이 웬수'라고 지적한 박지원 의원의 지적이 헛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대통령께 건백(建白)하는 바이다.
  
  
  
  
[ 2019-06-24, 08: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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