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플리트 장군 아들의 戰死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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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남침 전쟁 때 유엔군의 주력이던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그의 아들이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한 경우이다. 그의 아들 지미는 그리스에서 근무하다가 본국에 돌아와 있었다. 그는 해외 근무를 한 직후라 다시 해외근무를 할 자격이 없었지만 굳이 자원을 하여 한국 전선을 택했다. 결혼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는 한국 전출 명령을 받자 어머니에게 이런 요지의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이 편지는 군인의 아내에게 바치는 편지입니다. 눈물이 이 편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합니다만...저는 자원해서 전투비행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전투중에 B-26 폭격기를 조종할 것입니다. 저는 조종사이기 때문에 機首엔 폭격수, 옆에는 항법사, 후미에는 기관총 사수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야간비행을 할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싸우고 있으며 드디어 저의 미력한 힘이나마 보탤 시기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에 미국이 위급한 상황에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소집된 나의 승무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고, 아직 가정을 이뤄본 적도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저의 의무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들 짐 올림>
  
  지미는 한국으로 부임하자 동료 승무원들을 데리고 미8군 사령부를 찾아가 아버지를 만났다. 1952년3월19일 밴 플리트가 만60세 생일을 맞은 날이었다. 며칠 뒤 父子는 서울 북쪽의 갯벌로 기러기 사냥을 나갔다. 4월2일 밴 플리트 장군은 아들과 통화를 했는데 아들 짐이 그즈음 북한 지역으로 출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1952년4월4일 오전 10시30분, 밴 플리트는 미 제5공군 사령관 제임스 에베레스트 장군으로부터 아들 지미가 야간 출격을 한 뒤 귀환하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지미와 두 승무원은 압록강 남쪽에 위치한 순천 지역을 정찰 폭격하기 위하여 출격했었다. 지미로서는 네번째 출격이자 최초의 단독 비행이었다. 새벽 1시5분에 이륙한 그는 새벽 3시 김포 비행단의 레이다와 접촉했다. 지미는 主표적이 구름에 가려져 있다면서 예비 표적을 요구했다. 예비표적을 향하여 날아가던 지미의 폭격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진 뒤 소식이 끊긴 것이었다. 그에 대한 구출작전이 진행되었다.
  
  밴 플리트 장군은 아들에 대한 공군의 수색작업이 도를 넘지 않도록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구출 작전을 중지하라"고 명령한 것도 그였다. 그 후로도 그는 가끔 아들이 실종된 지역의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옥구 비행장에 있던 공군 부대의 아들 침대도 그대로 보존되어 들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해 부활절 밴 플리트는 한국 전선에서 실종된 군인 가족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저는 모든 부모님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
  
  밴 플리트 대장은 100세까지 장수하였다. 그는 1915년 미국 육사를 졸업했는데 동기생으로는 아이젠하워, 브래들리가 있다. 1차 대전, 2차 대전, 그리스 내전, 한국전에 참전했다. 승진이 늦은 이유는 육군참모총장이던 마셜이 동명이인의 문제 장교를 밴 플리트로 오인한 때문이다. 2차 대전 때는 노르망디 작전에 참여, 유타 해변에 상륙했다. 8군 사령관으로 한국의 정규육사 교육을 지원하고, 한국군의 훈련과 교육을 응원하여 '한국군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였다. 이승만 대통령을 특히 존경하였다. 1965년 7월 하와이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서울까지 運軀(운구)한 사람이다.
  그는 박정희의 군사혁명이 일어나자 맨첨 지지 의사를 표명했고 미국에 코리아 협회를 조직하는 데 앞장 섰다. 협회는 이를 기려 밴 플리트 상을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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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노라망디 오마하 비치 언덕에는 미군 묘지가 있다. 프랑스 정부는 미국에 이 묘지를 영구적으로 기증, 미국 정부 기관이 운영하고 있다. 9387명의 미군 전사자들이 묻혔다. 시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두 아들도 여기에 잠들어 있다. 루스벨트의 장남은 1차 대전에 대령으로 참전하였다가 퇴역한 뒤 필리핀 총독까지 지냈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군에 복귀, 노르망디 상륙전에는 준장으로 참전하였고 나중에 病死하였다. 시오도어 루스벨트의 다른 아들(퀜틴)도 1차 대전에 참전, 전사하였다. 퀜틴은 하버드 재학중 미군에 들어가 전투조종사가 되었다. 1918년 7월 프랑스 상공에서 죽었다.
  
  
  
  
  
  
[ 2020-09-19, 12: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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