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들은 좋은 설교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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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이십년 시월 십사일 점심 무렵. 도심의 빌딩 사이를 흐르는 바람에 어느새 가을이 묻어있었다. 나는 대학 동기들의 모임에 가기 위해 서초동에서 택시를 탔다. 핸들대를 잡은 기사의 뒷통수가 장마 후의 마른 개천 바닥 같다. 윤기 없는 흰 머리 속에 검은 털이 몇 개 아무렇게나 뒤엉켜 섞여 있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우리에 가둬 키우는 돼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운동 부족인지 튀어나온 배가 좁은 운전석 의자에 간신히 담겨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흘끔 나를 살피는 것 같았다. 뭐 나도 그와 다름없이 뚱보이고 나이 먹은 늙은이였다.
  
  어제 모 금융그룹 회장과 만나 점심 때 평양냉면을 먹었는데 그가 나를 보고 살 좀 빼라고 했었다. 같은 나이인데도 그는 신라호텔 헬스클럽과 히말라야 트래킹을 통해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좋은 몸매도 집념과 부지런, 그리고 여건이 맞아야 하는 것 같다. 택시가 반포대교를 넘어 이태원 부근을 지나칠 무렵이었다. 기사가 뜬금없이 한 마디 했다.
  
  “손님 주제넘지만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현대의학이 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건 뭣하지만 제가 잠깐 보니까 간(肝)이 약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발목이 아프실 거에요.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셔도 되지만 금반지 쌍가락지를 구해서 밤에 잘 때 오른손 왼손 교대로 끼고 주무셔 보세요.”
  
  가끔 동양의학이나 대체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도 그런 것 같다. 일단 존중하고 들어 주는 게 예의 같았다.
  
  “저는 사실 목사입니다. 교회를 개척하다가 신도도 없고 잘 안 되는 바람에 이렇게 택시를 몰고 있습니다.”
  그의 어조에는 어떤 쑥스러움이나 낭패감이 조금 섞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정말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신도의 도움을 받지 않고 택시기사를 하면서 스스로 돈을 벌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게 훨씬 당당하고 멋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 택시 자체가 얼마나 훌륭한 교회입니까? 운전을 하시면서 승객과 대화를 하면서 예수를 소개하는 게 진짜 그분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닐까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런 형태의 교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듭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을 통해 그런 말이 튀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세상 틀에 젖어버린 권위적인 종교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여러 명의 청중을 모아놓고 단 위에 올라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교만이 스며들 수 있다. 거기에 남과 구별되는 거룩해 보이는 성직자의 옷을 입는 순간 권위적인 감정이 솟아오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켜올리는 순간 인간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그래서 성경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처음 개인법률사무소를 차렸을 때였다. 텅 빈 공간에서 이따금 찾아오는 상담객과 마주앉아 그의 절규와 생생한 고통을 들어주곤 했다. 그러면서 변호사란 무엇인가 생각했었다. 서머셋 모옴이 쓴 ‘면도날’이란 소설이 있었다. 미국의 하버드대학을 나온 청년인 주인공 래리는 뉴욕에서 택시운전사가 됐다. 그는 택시를 수행 도구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승객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세상에 의해 자신이 깎이고 다듬어진다고 했다.
  
  나 역시 나의 법률사무소를 나의 일터이자 수행터로 여기자고 마음먹었었다. 나는 또 빠삐용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었다. 망망한 바다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 위에 서 있는 죄수로 전락한 남자의 아픈 마음이 뭉클하게 전해져 왔다. 그런 사람들을 자유로 건네주는 뱃사공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의 수는 상관이 없었다. 하나님이 보내주는 사람만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 어느새 차가 삼호터널을 지나 시청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며칠 전 제 딸이 심장이식 수술을 했어요. 심장근육에 염증이 생겨 죽을 확률이 크다고 했어요. 그런데 하루에 심장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세 명이나 나온 겁니다. 그래서 제 딸이 살아났습니다. 기적이 아닙니까?”
  
  목사인 그는 자신의 간절한 체험을 순간적으로 아주 짧게 전했다. 나는 진짜 교회에서 좋은 설교를 들은 것 같았다.
  
[ 2020-10-20, 03: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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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rgate     2020-10-20 오후 1:56
하나님은 병주고 약주고 하는 일로 소일하시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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