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피와 어머니의 기도(祈禱)
인생 칠십에 비로소 깨달았다는 목사와 소설가.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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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인>
  
  내가 다니던 교회 목사의 마지막 설교시간이었다. 정년을 맞은 그는 교회를 떠나야 하는 것 같았다.
  
  “세상을 살아 보니까 칠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겠더라구요. 여태까지 내가 말한 건 다 잘 모르고 한 것 같아요.”
  
  이북 출신인 그는 스무 살 무렵 광산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광산에서 도망쳐 무덤 사이에 숨어있는 그에게 아버지는 매일 같이 지게를 지고 나뭇짐 사이에 밥을 숨겨 산으로 날라다 주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오던 날 그는 숨어서 아버지가 총살당하는 걸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남으로 피난 보내면서 너는 꼭 목사가 되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먼 훗날 그는 이웃사람을 통해 어머니의 소식을 들었다. 떠나보낸 아들을 위해 그 어머니는 무너진 교회의 잿더미 위에서 가마니를 뒤집어 쓰고 기도를 하더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피와 어머니의 기도 위에서 그는 수만 명 신도의 영혼을 울리는 성직자가 된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현실은 언제나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걸 하나님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더 이상 고집 부리지 않겠습니다. 그런 자세가 필요해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주는 의미를 아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일 것입니다.”
  
  그가 하는 설교를 이십 년 이상 들었었다. 미국에서 배운 신학이론이나 그가 읽었다는 많은 철학 서적보다 광산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아버지의 총살 장면을 본 그의 아픔이 훨씬 그의 설교에 색채와 질감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오래 전 저세상으로 간 소설가 정을병 선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의 타고난 까칠한 성격이 운명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서슬이 퍼렇던 박정희 혁명정권 시절 그는 혁명정권의 강제노동을 폭로하는 글을 썼다가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문인 간첩으로 만들어져 징역을 살았다. 소설가 협회장을 하면서 공금횡령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또 감옥생활을 하다가 간신히 결백이 밝혀졌었다. 그는 내게 삶이 억울해서 나이 구십까지는 살아야겠다고 넋두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그가 칠십대 중반쯤이었을 때였다. 어느 날 그는 내게 소설 원고 한 편을 가져와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 칠십 권이 넘는 소설을 썼어요. 지금 되돌아 보니까 그 책들이 모두 가짜에요. 문학도 아니고 그 속에 깨달음도 없어요. 나이 칠십이 넘어서 쓴 이 원고가 비로소 처음으로 나의 문학인 것 같아요. 대중성은 없지만 진짜라고 생각해요.”
  
  그는 내가 감지할 수 없는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살다보니까 나도 어느새 칠십 고개 앞에 와서 서 있다. 젊은 날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 시절 젊음은 영원할 것 같았다. 시간도 무한한 것 같았다. 그러던 젊음이 어느 순간 소리 없이 잦아들고 나는 노인이 된 것이다. 삼십대부터 해 온 변호사 생활이 사십 년을 향해 가고 있다.
  
  법의 늪에 떨어진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허우적대면서 더 깊숙이 빠져들 뿐이다. 어떤 걸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제도적 시스템은 톱니바퀴처럼 메마른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사이에서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칠십 고개에 다가선 이제야 본질이 뭔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리고 늪에 빠진 인간들을 보면서 그 원인과 처방이 보이기도 한다. 성경 속의 예수는 죽음을 앞두고 번민하고 있었다.
  
  ‘제가 뭐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내 앞에 놓여 있는 이 고난에서 나를 구해달라고 해야 합니까? 그렇지만 나는 지금 내 앞에 닥친 이 일 때문에 온 게 아닙니까?’
  
  예수는 모든 걸 그분의 뜻에 맡겼다. 본질을 안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 위로 올라가 죽었다. 행동으로 보인 그의 마지막 설교였다. 인생 칠십 고개에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별 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젊어서나 늙어서나 닥쳐온 운명을 그때그때 거부하지 말고 두 팔 벌리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게 아닐까.
  
  
  
  
[ 2021-02-21, 14: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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