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믿으면 돌아오는 건 배신입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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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투명인간>
  
  젊은 시절 몇 년간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권력과 가까운 곳이어서 그런지 출세의 사다리를 타기 위해 경쟁과 시기가 치열한 모습들을 보았다. 권력은 어떤 자리를 가지고 인간을 노예처럼 굴종시켰다. 한 조각의 기름진 스테이크 조각을 보면 개는 목숨을 걸고 몸을 날린다. 그런 개에게 정의나 도덕은 필요 없었다. 오직 주인에게 충성하고 고기 조각을 얻어먹는 게 전부였다. 일반 사람들은 말이나 명분은 그럴 듯하지만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고기 조각으로 비유할 수 있는 돈이나 이권이었다. 대통령의 비서관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일년에 한 번 정도 종교계 인물들을 초청해서 식사대접을 하고 돈 봉투를 주는데 마치 뺏듯이 받아가더라구.”
  
  그 비서관의 얼굴에는 인간의 탐욕을 보고 느끼는 냉랭한 미소가 떠올랐다. 겉으로는 마네킹 같이 매끈한 인간들의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여러 가지 형태인 것 같았다. 개의 모습이 비칠 때도 있었고 쥐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인간은 각자 여러 가지 모습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속에서 특이한 모습을 가진 한 인간을 보았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국제관계의 학위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자기를 드러내고 출세의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 속에서 그는 투명인간 같은 느낌이었다. 말이 없이 자기 일만 했다. 남들은 부지런히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활동할 때도 그는 구내식당의 창가에서 혼자 조용히 식판 위의 밥과 국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는 항상 소박한 졈퍼를 입고 있었다. 보호색을 가진 동물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고, 기억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같이 보였다. 어느 날 오후 내가 잠시 책상 위에 성경을 올려놓고 읽을 때였다.
  
  “성경을 읽으시네요”
  옆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였다. 평소에 별로 대화가 없던 그가 옆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반쯤 열려진 문틈으로 내가 보였던 모양이다.
  
  “아, 네, 빈 시간에 좀 읽어 보려구요.”
  내가 쑥스러운 느낌으로 어중간하게 대답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절대로 인간에게 의지하지 마세요. 약한 인간을 믿으면 돌아오는 건 배신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부탁하세요. 인간에게 뭘 바라면 비굴해지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렇지 않아요.”
  
  말해주는 그의 모습에서 동생을 이끄는 따뜻한 형의 모습이 느껴졌다. 권력을 둘러싼 소용돌이 같은 인간의 물결 속에서 그는 움직이지 않는 바위 같은 모습이었다.
  
  권력의 근처에 있어 보면 참 여러 가지 모습이 보였다. 장군 출신이 대통령 비서관을 찾아 와 구걸을 하듯이 벼슬자리를 사정한다. 그렇게 구걸해서 벼슬을 얻고는 그 다음부터는 하다못해 요정 여주인 앞에서 근엄하게 군림하는 모습이었다. 공천을 받기 위해 돈을 바치려 하고 엎드려 절을 하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개에게라도 권력의 옷을 입히면 그들은 모두 다가와 그 앞에서 절을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야만 세상적인 출세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곳에서 내게 형같은 충고를 해 준 그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성경 속에서 예수는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는 노예다. 내 말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을 정도로 네 마음이 죄로 꽉 차 있다. 노예는 권리가 없지만 나는 너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
  
  그 죄라는 것은 탐욕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나는 마음으로 물었다. 성경 속의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내 가르침을 따라 산다면 내 제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 얼마 후 나는 그곳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었다. 보던 성경을 배낭에 넣고 세상을 흘렀다. 기차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다가 밤늦은 시카고역 나무벤치에 앉아 근처 편의점에서 산 육포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저녁을 때우기도 했다. 삼십 년 세월의 강이 흐른 지금 내게 형같이 말해 주었던 그는 칠십대 중반이 되어 혼자서 경전을 읽는 은자(隱者)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자유가 무엇인지를 전해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었다.
  
[ 2021-02-22, 13: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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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er     2021-03-06 오후 7:17
인류역사 상 가장 무능하여 실패한 인간이 예수이며, 그러나 또한 가장 유명한 인간이 예수다.그리고 성경은 예수팔이들이 만들어 놓은 일종의 소설이다.
   북한산     2021-02-27 오후 12:42
1. 아니, 인간을 믿지말라니요? 엄선생님도 인간이시고 인간속에서 살고계십니다.인간을 가급적 믿지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엄선생님이 옆에 있는 제 친구라면 참 씁쓸 할 것입니다. 이장희씨의 노래인 '그건 너'가 불신풍조조장이라고 금지곡이 된 적이 있었지만 기독교야말로 불신풍조를 조장하는 군요. 속을지 모르지만 믿으려고 노력하고 결국 속으면 용서하면서 사는게 인생아닌가요? 나도 남을 속이지않으려 노력해야하구요. 인간이 그 만큼 변덕이 심하고 원죄를 지닌 존재라는 의미이겠지만 바로 그 변덕심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가 온 것이고 형제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주라는 것이 성경의 정신 즉 부족함을 인정하고 포용하면서 살자는 것이지 여호와와 예수외에는 인간을 믿지말라는 데에 강조점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는데 사랑속에는 믿음도 같이 들어있는 것이지 이웃에 대한 믿음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면 인간을 불신하지 말고 믿어야합니다. 어느 가치관,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따라 세상이 그리고 이웃사람이 다르게 보이지요. 신과 예수외에는 믿지못하는 기독교의 안경을 쓰고 보면 인간들이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보일텐데 인간을 불신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피곤하고 외로울까요? 믿을 수 있는 예수와 신이 있으니까 외롭지 않은 것인가요? 맹자의 성선설이나 모든 중생이 불성(부처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불교의 입장에서는 내 이웃이 믿을 수 있는 존재로 보일테니 마음도 더 편하고 불신할 때보다는 덜 외로울 것입니다.
인간을 믿으면 돌아오는 건 배신이니 성경과 예수만이 배신않는 존재라는 말은 그만큼 성경과 예수를 더 의지하자는 의미이기는 한데 뭔가 고상하고 옳은 말인듯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공허한 말입니다.
2. 그리고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진멸전쟁은 또 무엇입니까? 이방인은 물론이고 자신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사람에 대해서도 진멸을 행하는 여호와가 정말 사랑의 신입니까? 출애굽 당시에 몰살당한 이집트 군인들은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아닌가요? 자기 백성만을 위한다고 하는 좁쌀처럼 속좁은 존재가 여호와입니다.
3. 역사적으로 있지도 않으며 상식에도 안맞는 호구조사를 핑계로 예수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이라고 우기고,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고 2살이하의 아이를 살해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겠지만 예수의 탄생이 결과적으로 살인을 불러올 뻔 했고, 모세 한명을 죽이려고 실제는 아니겠지만 ,유사한 살인이 이집트에서도 있었다는 것이고, 출애굽의 객관적 증거(이집트 역사기록에 없고, 약 200만명이 물도 없는 사막지대에서 40년을 살았다는데 유골도, 주거지도, 살림도구도 없고...)가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공의로운 분이 계신다고, 아니, 계셔야한다는 믿음으로 탄생한 것이 기독교의 신이라고 봅니다. 즉 인간의 마음이 만든 신이 여호와라고 봅니다.
4. 믿지 못할 인간에 비교하여 성경과 신은 절대적으로 믿을 만한 대상일까요? 이미 많이 들으셨던 내용일 수 있지만 성경자체의 모순과 오류를 알면서도 그렇게 성경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래의 내용은 감리교 사이트인 당당뉴스에 있는 글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글의 필자는 모순과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변치않는 다는 입장입니다. http://freeview.org/에는 아래의 글을 쓴 필자의 다른 글들도 있다고 합니다.
-성서의 모순과 오류를 지적한 글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63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931
5. 장군출신인데 비굴한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당당하게 자긍심지니고 사는 분이 더 많다고 봅니다. 믿지못할 인간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믿음을 주는 사람도 얼마든지 이웃에 많습니다. 성경과 여호와를 믿어야해라는 성경을 절대시하는 색안경, 성경외에는 못 믿겠다는 불신의 안경, 남을 비웃으면서 '비굴하지 않은 인간이 나이고 특히 너와 달리 나는 예수님을 믿는 단 말이야'하면서 우월감을 즐기려는 듯한 밴댕이 속알머리같은 안경을 벗어야합니다. 예수는 ' 네 이웃이 누구냐?,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엄선생님은 '아니요, 그런데 인간은 믿어봤자 배신당하니까 별로 사랑하고 싶지 않네요'라고 말 하면 과연 예수의 뜻을 실천하는 자세일까요? ' 아니, 그게 아니고요, 인간을 전혀 안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보다는 예수님을 더 믿고 의지하겠다는 상대적인 의미일 뿐입니다.'가 엄선생님의 입장일 것으로 추측합니다만 인간도 예수님처럼 믿고 사랑해야 한다고 봅니다. 네 이웃의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예수가 말했으니 인간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을 예수사랑과 동등하게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장군출신, 법조계 출신의 훌륭한 면도 함께 많이 소개해주십시요. 자신있는 사람은 남을 비웃지 않습니다. 일부 목사 설교에서 거부감 느껴지는 문장은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입니다.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을 따르지말자고 하면 되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잘못된 사람들인듯이 얘기하면서 자신들을 구분하여 고상함으로 포장하는 것이 구역질 나는데 선생님도 구분을 하시는 군요. 예수는 죄인을 위해 왔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내 친구, 내 이웃, 내 가족이고 내가 예수처럼 사랑해야할 분들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구현해야할 대상이 바로 이웃입니다. 안 믿는 이웃에게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예수와 성경을 믿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나와 달리 안 믿는 너희들은 그런 것 모르지? 에이, 불쌍한 것들...'이라고 양자를 구분하여 우월감내지는 안도감 느끼려는 ,예수 믿는 것을 벼슬로 여기는 듯한 기독교신자를 보면 한심해 보입니다.
6. 성경이 진리라고 믿고 그 진리를 알고 내가 자유를 얻었다면 내가 얻은 이 자유를 이웃도 얻도록 전도하는 것이 엄선생님이 할 일이라고 봅니다. '아, 나는 이렇게 귀한 자유를 얻었다.좋다. 행복하다.'라고 자신의 내면으로만 침잠해서 나름의 자유를 즐기는 것은 이웃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과 관련된 글을 쓰는 것도 전도의 한 방편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도 예수와 성경을 믿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이웃을 사랑해야지'라는 마음을 독자들이 선생님의 글에서 얻기 보다는, 냉소적이고 허무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불신으로 이웃을 바라보게 하는 부작용도 많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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