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에 스미도록 밀려오는 고독감(孤獨感)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노년의 우울하고 고독한 날>
  
  봄비가 축축하게 내리는 거리를 우산을 쓰고 늙은 아내와 함께 걷고 있었다. 길가의 나무도 빌딩도 거리도 젖어있다.
  
  “오늘은 이상하게 뒷목이 뻣뻣하네”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종종 그럴 때가 있었다. 혈압 때문인 것 같았다. 아내가 옆에서 말한다.
  
  “당신도 아버님 같이 중풍이 와서 몸을 못 쓸까 봐 걱정이야. 당신 덩치가 있어서 난 도저히 병 수발을 못해. 다리 하나도 들지 못할 것 같아.”
  
  내가 쓰러지면 참 한심한 인생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외떨어진 요양원의 침대에서 한 덩어리의 물체가 되어 사멸할 날을 기다리는 그런 존재가 될 것 같은 불안이다. 내가 나를 없애기도 불가능한 그런 순간이 올 것이 두렵다.
  
  고교 동기인 착한 친구가 있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거의 가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게 누구에게나 닥치는 현실이었다. 늦은 밤 드라마 삼국지를 한 편 보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갑자기 드라마 속의 한 장면과 대사가 떠올랐다. 병들어 누운 늙은 성주(城主)의 젊은 첩이 냉랭한 표정으로 말한다.
  
  “저 영감은 나 아니면 의지할 데가 없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어떻게 하지 못할 거야.”
  
  그 젊은 첩은 고독한 영감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벽에 붙은 전자시계의 녹색불이 엷게 비치는 천정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의지할 데가 없는 것 같았다. 흰머리가 가득한 아내도 늙고 힘이 없다. 아들과 딸은 자기 앞을 헤쳐나가기도 암담해 하고 있다. 나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하게 여기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미 저 세상에 간 지 오래다. 쓸쓸한 빈 들판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쯤 침대 옆에 있는 내게 해준 말이 떠오른다.
  
  “일생을 살아오면서 정말 힘든 게 고독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니? 인생이란 게 그런 건데. 너도 그 고독을 잘 견디고 오너라.”
  
  이북의 함경도에서 스무 살 때 혼자 내려온 어머니는 삶이 고독 그 자체였다. 못 생기고 배우지 못한 어머니는 멸시와 천대의 상징이었다. 외아들인 내가 어머니의 유일한 구원이고 희망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고독한 어머니에게는 내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뱃속에서 나와 그 고독과 아픔을 일부는 공유했던 것 같다. 죽어가는 어머니 옆에서 나는 애절하게 울었다. 어머니에게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라고 하면서 어머니를 죽음의 강 나루터에서 배웅을 했다.
  
  그런데 나는 누가 있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내게는 그런 자식이 없다. 어려서부터 일찍 유학을 떠나 보내 나는 아버지이면서도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내에게도 목숨을 건 사랑을 베풀지 못한 나는 헌신과 희생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남들같이 아프면 한번 들여다 봐 줄 피붙이 형제도 없다.
  
  뼈에 스미도록 고독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붉은 녹이 슬고 점점 풍화되어 가는 기계처럼 나의 하루하루가 스러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떻게 해요 어머니. 잘 참고 오라는 게 이거였어요?’
  나는 죽은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갑자기 내면의 깊은 곳에서 누군가 내게 메시지를 담은 소리 없는 신호를 보내주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있지 않니?’
  ‘누구십니까?’
  ‘정말 모르니?’
  ‘아, 압니다.’
  
  그건 예수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공허가 남아 있다. 예수가 절규하면서 십자가에서 고개를 떨어뜨릴 때 하나님은 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마음 속의 우물 안쪽에서 최근에 변호하고 있는 한 사건이 물방울같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뇌성마비로 평생 전신 마비를 앓고 있는 여성이었다. 혼자서 배변할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다. 이불을 덮고 잘 수도 없다. 질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돌보아 줄 부모나 형제도 없었다. 파 뿌리 같은 누워있는 그녀의 흰머리를 보면서 이럴 수도 있나? 하면서 그녀의 불행을 보았다. 그녀는 단 하루도 혼자서 살 육체적인 능력이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손가락 하나로 자판을 눌러 찬송시를 쓰는 것이었다. 그 찬송시 하나가 천만 명 기독교 신도의 영혼을 흔들었다.
  
  그녀를 이십사시간 돌보아 줄 천사가 나타났다. 후원금이라는 형태로 하나님이 그녀에게 만나라는 식량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 속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환희를 넣어준 것 같다. 만날 때 그녀는 행복한 것 같았다. 하나님은 의심하는 나에게 그런 사실을 메시지로 보낸 것 같았다. 그건 기적이고 하나님이 보여주는 직접 증거였다. 나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기로 했다. 그분과 함께 있으면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병을 받아들일 능력도 주시고 때가 되면 죽음을 기쁘게 맞아들일 능력도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 2021-04-19, 09: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naidn     2021-04-20 오전 12:37
조갑제 닷컴에서 엄 변호사의 세속적(?)인 글을 간혹본다
미안한 말이지만 냉정(?)하면서 제3자적(?) 글이라 여겨지고 이쁜 글이라 잘 느껴지지 않는다
따뜻한 친구도 있을 터이고
지인도 있을 터이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응 터이고
동호인도 있을 터이고
애국모임도 있을 터인데 ...

고독을 자랑(?)하는 바는 아닐터인즉 ...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