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오 전쟁 때, 나는 거지였어요."
"어떤 집에서 밥을 줄지 어떤 집은 매몰차게 대하는지 그걸 감별해내는 촉이 있어야 해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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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을 든 거지>
  
  먼지가 가득 낀 까치집 같은 머리를 한 거지 아이가 부자집 문에서 배가 고프다며 먹을 걸 구걸하고 있었다. 열 살 전후의 아이였다. 몸이 바짝 마르고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아이의 표정은 정말 배가 고픈 것 같이 애절하다. 뚱뚱하고 얼굴에 잔인한 빛이 스치는 부자집 아이가 문에 나와서 거지 아이를 보더니 운동연습이라도 하듯 단번에 넘어뜨리고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면서 힘을 과시했다. 밥을 얻어먹지도 못한 거지 아이는 처량한 뒷모습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영리해 보이는 한 아이가 그 거지아이의 뒤를 따라가 불러세웠다. 그리고 옷 속에서 마른 빵 두 개를 거지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허기가 진 거지 아이는 그 마른빵을 정신없이 씹어먹고 있었다. 내가 밤늦게 ‘노자(老子)’의 일대기를 그린 중국 드라마를 보다가 눈에 들어온 한 장면이었다.
  
  지금은 깡통을 들고 골목을 다니며 밥을 달라고 하는 그런 거지가 없다. 그러나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서울 시내에 그런 거지들이 우글거렸다. 아침이 되면 문 앞에서 거지 아이들이 밥을 달라고 부엌에 대고 소리치곤 했다. 그럴 때 어머니는 아직 집안 어른이 진지를 들지 않으셨으니까 조금 있다가 오라고 말해주곤 했다. 나는 거지 아이의 깡통을 본 적이 있다. 찬밥 한 덩어리에 신 김치가 바닥에 조금 들어있기도 했다.
  
  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그 시절의 한 장면이 아직도 남아있다. 골목길 담벽 아래 놓여있는 콘크리트 쓰레기통에는 버린 연탄재가 쌓여있고 그 위에 오래된 김치가 덮여 있었다. 거지 한 명이 무릎을 꿇은 채 그 버려진 김치 줄거리를 손으로 들어 허겁지겁 입 속에 넣고 있었다. 거지의 길다란 긴 머리는 먼지로 허옇게 덮여 있었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버려진 썩은 김치를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린시절 시내에 들끓던 거지들은 대부분 전쟁고아였다. 부모와 함께 피난을 가다가 갑자기 부모가 죽고 아이들만 살아남은 경우였다. 흑백의 기록영화 중에서 엄마 아빠가 죽은 옆에서 어쩔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면서 절규하는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가슴이 찡하게 울려왔다.
  
  나의 어머니도 댓 살짜리 연년생인 형과 누나를 양손에 잡고 수은주가 영하 이십 도 아래로 떨어지던 눈 덮인 일월, 서울에서 사흘을 걸어 평택으로 피난을 갔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니라 어린 형과 누나가 죽고 어머니만 살았다. 그 반대의 경우였으면 형과 누나의 입장도 불행한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그 거지 아이들도 다 어른이 됐다. 세상에서 ‘대도(大盜)’라고 별명을 붙였던 상습절도범을 변호할 때였다. 그가 감옥에서 이런 말을 했다.
  
  “육이오 전쟁 이후 나는 꼬마 때부터 거지를 했어요. 골목길 옆에 놓여진 쌀가마니 안에 들어가 잠을 자고 깡통을 들고 밥을 구걸했죠. 어떤 때는 버려진 가마니 안에 내가 들어있는 걸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남대문 앞에 있는 백화점 뒷문 쪽으로 거지아이들이 모여들었어요. 거기는 백화점 보일러에서 나오는 따뜻한 증기가 나오기 때문에 거지들이 몰려서 그 훈기를 쬔 거죠. 그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거지 아이들이 각자 구걸해온 밥과 김치를 큰 깡통 안에 집어넣고 아직 불기가 남아있는 버린 연탄재에 데워서 나눠 먹었거든요. 그렇게 살았어요. 거지로 살다가 보니 점점 간이 커졌어요. 구걸보다 몰래 남의 집 부엌에 스며들어가 은수저를 훔치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 다음은 그 집 방에 들어가 라디오를 훔치고요. 그러다가 도둑놈이 된 거죠.”
  
  나는 유럽 여행길에서 거지 경험을 했던 또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분은 재무장관을 지냈고 대통령과 친인척 관계로 권력의 실세였기도 했다. 그가 여행길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육이오 전쟁 때 어렸던 나는 거지였어요. 거지 생활도 하다 보니까 요령이 있더라구요. 어떤 집에서 밥을 줄지 어떤 집은 매몰차게 대하는지 그걸 감별해내는 촉이 있어야 해요. 나는 그 촉이 발달해 있었죠. 느낌만으로 지나가면서 어떤 집이 밥을 줄 것 같은지를 알아냈거든요. 다른 아이들을 이끌고 다녔는데 거의 틀림이 없었어요.”
  
  그는 힘든 환경에서도 혼자 공부를 해서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경제관료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 장관이 됐다. 그리고 대통령과 동서지간이 된 사람이었다. 모든 재벌회장들이 재무장관인 그의 앞에서 벌벌 떨었다. 거지를 했어도 팔자가 달랐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사람은 철창을 통해 하늘의 별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은 바닥의 진창물을 보는 것이다. 인생이란 마음의 눈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 있는 것 같다.
[ 2021-06-15, 03: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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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건     2021-06-16 오후 4:39
매번 좋은 글 잘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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