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눈(眼)에는 이게 독도(獨島)로 보이나?
反日에 세뇌되면, 이렇게, ‘거리 감각’도 마비되고, ‘방향 감각’도 마비되고 만다.

펀드빌더(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당빌의 ‘조선왕국전도’에서 독도(붉은 점선 안)를 ‘찬찬타오’란 이름으로 표기한 부분. /서울역사박물관



<어떤 두 사람이, 동일한 연구 분야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장기간 연구에 몰입했다. 어느 날, 이 중 한 명(A)이, 그간의 연구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특허권을 얻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다른 한 명(B)이 무슨 수완을 발휘했는지 그 특허권을 손에 넣었다. A는 빼앗긴 자신의 특허권을 되찾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B를 향해 "앞으로 특허권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고 했고, 손해 볼 것 없는 B는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A와 B가 다른 일로 싸우게 되었다. 흥분한 B가 특허권 이야기를 먼저 꺼내며 A를 자극했다. 화가 난 A는 "불법 탈취해간 특허권 반환하라"며 B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B는 "원래 내 연구성과가 더 뛰어났다"고 반박했다. A는 "그 정도 연구성과는 나도 있고,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특허 취득했느냐다"라며 재판소 行을 요구했다. B는 "내 연구성과가 더 뛰어나기 때문에 재판 받을 이유 없다"며 반박했다. 결국 A와 B의 갈등은, 같은 소리의 반복 패턴을 보이는 중이다.   
 
A: "불법으로 탈취한 특허권 반환하라! 법대로 하자!"
B: "내 연구성과가 더 뛰어나기 때문에 법정 갈 필요 없다!"
A: "그 정도 연구성과는 나도 있다. 법대로 하자!"
B: "갈 필요 없다. 내 연구성과가 더 뛰어나다!"
A: "그 정도 연구성과 나도 있다!"
...서로 무한반복....>

오늘날 독도(獨島) 영유권을 놓고 갈등 빚는 韓日 양국 상황을 비유해 본 것이다. 내용 中 나오는 A는 日本, B는 韓國이다. 내용 중 특허권은 '독도 영유권'을 말하고, 연구성과라는 것은 '각종 古地圖나 古文獻'을 의미한다.

독도(獨島)의 소유권 관련하여, 法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행위를 먼저 취한 쪽은 日本이다. 1905년 日本 시마네현이 정식 告示(제40호)로써 독도(獨島)를 편입시키는 法的 행위를 했다. 이후 1907년에는 日本 정부 차원에서 독도(獨島)를 정식으로 日本 영토로 편입했다(閣議 결정).

韓國의 法的 행위는 1952년 ‘평화선’(이른바 ‘이승만 라인’) 선포를 통해 이루어졌고 이때 독도(獨島)가 韓國 영토로 편입되었다. 韓國의 法的 행위가 日本보다 47년 늦었다. 이후 日本은, ‘무력을 동원한 영토문제 해결 포기’ 원칙을 담은 自國의 평화헌법(平和憲法) 탓인지, 물리력 동원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日本은 독도(獨島)에 대한 韓國의 실효지배를 사실상 용인하는 체념의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오히려 韓國 쪽에서 먼저 독도(獨島)를 이용해 日本을 자극하기 시작했고, 이에, 화가 난 日本은 반격 태세로 전환하게 되었다. 日本은 법대로 하자며 ‘국제사법재판소 行’을 거듭 요구하는 중이다. 

日本의 재판소 行 요구에 불응하는 韓國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말과 함께, 옛날 지도만 잔뜩 꺼내들고 반박하는 中이다. 하지만, 옛날 지도나 문헌으로 치면 日本에게 유리한 자료들도 얼마든지 많이 존재한다. 다만, 韓國 언론이 이런 현실을 거의 보도 안 하다보니, 많은 韓國人들은 옛날 지도나 문헌들은 전부 韓國 편인 줄로 착각하고 있다. 옛날 지도나 문헌들을 갖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現代 법정(국제사법재판소)에서 안 통한다. 법정에서 통하는 것은, 유효한 법적 행위이며 이것을 누가 먼저 했는냐 하는 것이 핵심이다.     

오늘날 독도(獨島) 문제는 따라서 ‘긁어 부스럼’의 전형적 케이스다. 사실은 상대방이 가질 뻔했는데 운 좋게 내가 갖게 되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은인자중(隱忍自重)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상대가 ‘日本’이라면, 韓國人들은 ‘가만히 있는 것’(隱忍自重)을 '절대로' 못한다. 결국 영유권 갈등은 오늘날 핫이슈로 급부상(急浮上)하게 되었다. 독도(獨島) 영유권 문제는 커지면 커질수록 韓國이 손해다. 韓日 갈등 격화로 피로감이 극에 달한 美國이 ‘법대로 해결하는 게 최선!’이라며 韓國에게 국제재판소 行을 강권하면 어쩔 것인가?  

反日 세뇌된 많은 韓國人들이 보여주는 독도(獨島)에 대한 태도는 맹신적(盲信的)이다. 최근의 대표적 例는 스페인(의회 도서관)이 보관 중인 ‘조선왕국전도’이다. 6월16일 스페인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라고 했던 그 古地圖다. 1737년에 프랑스 지리학자(부르기뇽 당빌)가 그린 한반도 地圖로서, 나름 실척(實尺)에 충실했다. 한반도 남해안의 주요 섬(진도 등)도 잘 표시 된 것 같고, 日本의 쓰시마도 보인다.

그런데 한반도 동해안 중간쯤에 육지(해변)쪽 바싹 붙어 그려진 섬 두 개가 보이는데, 韓國 언론 및 국민들은 이것이 '울릉도', '독도'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언론들은 專門家라는 사람들의 그럴 듯한 해설까지 곁들여 보도했다. 언론에 따르면 두 개 섬 中 ‘찬찬타오’라고 표기된 쪽이 독도(獨島)라고 했다. 그런데, 위치가 엉뚱하게도 울릉도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실제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韓國人들은 이조차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남해안 주요 섬이나 쓰시마 위치 등을 실척에 아주 충실해 작성한 지도가 유독 울릉도, 독도만 '거리 무시', '방향 무시'다.

추론 가능한 답은 둘뿐이다. 그 두 섬은 애초부터 울릉도,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해안의 작은 섬을 표시한 것이거나, 아니면, 당시 독도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정확히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그린 것이라는 추론이다. 추론이 맞다면, 이 古地圖(조선왕국전도)는, 당시 朝鮮 사람들이 독도(獨島)에 대해 無知한 상태에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물증(物證)이 될 수도 있다. 反日에 세뇌되면, 이렇게, ‘거리 감각’도 마비되고, ‘방향 감각’도 마비되고 만다.   
 
 

===============================================================

시모조 마사오(下正男, 1950년생)
다쿠쇼쿠(拓植)大 교수(日本史)
※독도 관련, 한국측이 입국금지 조치를 내린 인물
(2016년 2월, 독도 관련 강연 내용 중, 주요 내용 간략 발췌)


-독도 관련 한국측 주장에는, 오류가 많고, 문헌 등에 대한 해석 또한 자의적이다.  


-1700년대 후반 러시아가 일본 연해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당시 일본은 일본 지도만으로는 세계를 파악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에도시대(江戶시대,1603~1867) 사상가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일본 지도에 추가로, 에조(홋카이도 북단), 오가사하라(서태평양제도), 류큐(오키나와) 및 한반도 지도를 이어붙인(합한) 한 장의 지도를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1785년에 나온 '三國接壤圖'다.


-그런데, 이 지도에는 큰 문제점이 있었다. 東海(일본해) 상에 두 개의 섬이 그려진 것인데, 이것은, 일본 지도와, 한반도 지도를 이어붙일(합할) 때, 각각 나와 있던 울릉도(鬱陵島)를, 전부 표시하여, 지도(三國接壤圖)에 두 개의 섬으로 그려진 것이다. 지도에 이런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당시의 '에도(江戶)막부'측도 파악하고 있었음은 확인이 된다. 


-한국측은 이와 관련해, 이 지도의 한 쪽 섬에 '조선의 것'('朝鮮持也')이라는 표시가 있는 것을 내세우며, 이 두 섬을 '울릉도와 독도'로 단정하고, "三國接壤圖는,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한 일본측의 지도다."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한국측 연구자들은, 三國接壤圖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작성되었는지에 관한, '문헌비판(문헌비평)'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15세기에 성립된 地誌로서 세종실록(世宗實錄)이라는 문헌이 있다. 한국의 연구자는 여기에 등장하는 우산도(于山島)가 현재의 독도에 해당하므로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코미디 수준의, 근거도 없는 자의적 주장이다.


-세종실록 내용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라는 이름의 섬이 나온다. 그리고 <맑은 날에는 섬이 잘 보인다>는 기술이 존재하여, 한국측은 "울릉도에서 보이는 것은 독도이기 때문에, 우산도는 독도를 말한다"며 주장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보인다>라는 표현 하나만 갖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원래, 地誌라는 것에는 '규정'(규칙, 법칙)이라는 편집방침이 존재하여, '島嶼가 보인다'라는 등의 기술을 할 때는, 통치자가 관할하는 한반도의 관청 입장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측면에서 기록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이 미흡한 상태다. 


-무엇이 보이는가 측면에서 봤을 때,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樹木이 보이고, 해변이 보인다>라고 나와있다. 그런데 독도에는 <樹木>도 없고, <해변>도 없다. 


-일찍이 '다케시마(竹島)'라는 명칭은 사실은, '울릉도'를 지칭하는 명칭이었고, 지금의 다케시마(竹島)는, 일찍이(원래) '松島'로 불렸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대나무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다케시마(竹島)라는 명칭이 가능한가"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점('독도'='松島')은 과거 朝鮮의 문헌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한국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문헌도 제대로 안읽어보는 모양이다. 한국의 독도 연구 수준은 20년 동안 진보한 것이 하나도 없다.

1
0


[ 2021-06-21, 23: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맑은마음1     2021-06-22 오후 9:30
펀드빌더님의 예리한 분석은 이영훈 교수와 통하는것 같습니다.

모든 사리분별에 사실 확인이 가장 중요해 보입니다.
엉터리 내용을 가지고 민족적 감정으로 우기는 건 집단이기주의.
21세기 법치주의 대명천지에 사실 아니 감정으로 이길수 없지요.
   白丁     2021-06-22 오후 5:54
뭐, 일단 일본 때려서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으니 사실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지.
   越百     2021-06-22 오전 9:34
領土 問題는 아주 銳敏한 사항으로 펀드빌더 님께서 言及을 하셨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國粹主義에 感傷的인 煽動이 主流였습니다. 이래가지고야 論理的으로 對應하는 日本에 이길 수가 있을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