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시골 여가수
탁자 두 개의 작은 찻집 구석 공간이 무대, 관객은 두 명.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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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말의 뜨거운 태양에 마른 길바닥이 타는 것 같았다. 나는 구례 오일장이 서는 장터로 갔다. 코로나의 여파로 장터는 썰렁했다. 장터 입구의 국수집에서 들깨비빔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지리산을 좋아해서 산을 오르내리던 여성이 아예 지리산 아래 장터에서 국수집을 냈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장터 끄트머리 쪽에 있는 ‘소리 갤러리’라는 특이한 이름의 미니 찻집으로 들어섰다. 진흙벽을 한 창고 같은 시골 건물의 한 귀퉁이를 개조해서 만든 작은 찻집이었다. 지리산 가수라고 불려지는 고명숙이라는 오십대쯤의 여성이 하는 차를 파는 집이었다. 작은 방 하나 정도 넓이의 찻집 안에는 나무 탁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한쪽 벽의 바탕에는 구름바다에 쌓인 지리산 봉우리가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지리산 가수의 노랫말이 디자인 같이 담백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길이 내게 묻는다. 어디까지 가려 하느냐고. 내가 길에게 물었다. 어디쯤에 끝이 있느냐고. 그냥 가는 길이라면. 그냥 걷는 길이라면. 소풍 나온 어린아이 모습처럼 티없는 마음이련만 어깨에 한 짐. 등에 한 짐. 양손에 한 짐씩 인생의 무게는 길도 무거운가 보다. 시작이 끝이요. 그 끝이 다시 시작인 것을’
  
  상당히 깊은 울림을 주는 시였다. 나 역시 청년의 산맥을 넘어 장년의 강을 건너 노년에 지리산 산기슭의 작은 찻집에 와 앉아 있었다. 그 찻집은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겸손한 분위기가 가득 차 있다. 구석에는 접이식 의자 하나가 놓여있는 손바닥만한 초미니 무대가 있었다. 그 옆에 통기타가 벽에 기대어져 있는 게 보였다. 무대라고 할 것도 없는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그 무대는 바위 사이에 숨어 피는 앵초같이 어떤 의미가 피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바위 틈에서 혼자 있는 듯 없는 듯 작게 피었다가 소리 없이 가을이 오면 사라지는 작은 꽃이었다. 그 작은 꽃은 하나님이 보아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을 벌판에 피는 들꽃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군가 보아주지 않아도 혼자 조용하게 자신의 향기를 뿌리며 존재하는 것이다. 차를 내온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저는 노래를 잘 못 불러요. 그렇지만 노래를 좋아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못하는 노래지만 한 곡 불러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있던 통기타를 들고 구석무대의 접이식 철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머리에 섞인 희끗희끗한 숲속의 잔설 같은 흰머리가 세월을 가늠하게 했다.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 속에 흐르는 물결을 따라 열심히 부르는 노래였다. 나름대로 들꽃 같은 예쁜 그녀의 삶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탁자 두 개의 작은 찻집을 열고 구석의 공간을 무대 삼아 작은 꿈을 그녀의 그릇대로 이루어 나가는 삶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그 능력의 범위에 맞추어 산다면 좌절이나 실망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래가 끝났다. 두 사람이 열심히 박수를 쳐 주었다. 우리 두 사람의 관중을 보고 그녀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 작은 찻집의 조그만 무대지만 이 무대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제 마음의 자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섬진강 축제에서 달빛 아래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녀의 찻집과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확인했다. 누구나 자기의 타고난 그릇에 자기 몫의 삶을 채워나가면 그게 성공한 것이 아닐까. 나 역시 내가 열망까지 한 것은 아니었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인이 됐다. 뒷골목에 개인법률사무소를 열고 골방 같은 적막한 사무실에서 삼십여 년을 보냈다. 그게 나의 천직이었다. 벽의 책장에 문학, 철학, 역사책을 가득 쌓아놓고 그걸 읽으면서 시간의 벽을 두드려왔다. 시간이 나면 그 찻집의 여가수 주인처럼 작은 글을 써서 내 작은 무대인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큰 그릇에는 큰 무대가 맞고 작은 그릇에게는 작은 무대가 맞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바위 틈의 작은 앵초에게도 따뜻한 햇빛과 바람과 짙은 행복감을 주신다고 믿는다.
  
[ 2021-07-30, 09: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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