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 힘들고 어떤 때 보람을 느꼈나요?'’
중학생 손녀의 학교 숙제에 대답하느라 힘들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중학교에 다니는 외손녀한테서 카톡으로 질문사항이 왔다. 인터뷰어로서 변호사인 할아버지에게 묻고 글을 써서 학교에 제출하는 숙제라고 했다. 손녀에게는 보다 정직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이 손녀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지는 자신이 없었다. 가장 무서운 인터뷰였다. 첫 번째 질문은 이랬다.
  
  “드라마나 영화에 변호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할아버지는 언제 변호사에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
  
  아마 고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사장실 같이 좋은 방에 변호사가 혼자 있었다. 말단직원인 아버지는 납덩어리와 화공약품에 둘러싸여 일했다. 다닥다닥 붙은 작은 철 책상에서 다른 직원과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 일터를 찾아갔다가 아버지가 상관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절절매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혼자 빵집을 해도 좋고 동네 약방이나 한의원 아니면 무역오퍼상 같은 직업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 제일 나은 직업이 변호사 같았다. 당시 변호사는 지식과 함께 어느 정도의 부(富)를 소유한 전문직업인이라는 인식이었다. 조용한 방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이 나의 마음에 스며들었었다.
  
  ‘변호사가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손녀가 하는 둘째 질문이었다. 내가 삼십 년간 주로 한 일이 뭐였지? 내가 나에게 되물어 보았다. 막연했던 상상 속의 변호사와는 달랐다. 어둠침침하고 특유의 냄새가 나는 감옥을 찾아가 죄수들과 만났다. 거기서 그들의 애환과 고통 그리고 신산(辛酸)스런 삶에 대한 얘기를 들어야 했다. 마치 단테가 지옥을 지날 때 다리 아래서 수많은 영혼들이 손을 뻗어 살려달라며 절규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일주일에 몇 번씩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지옥에 다녀왔다.
  
  그 다음으로 주로 하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변론서에 어떻게 그들의 고통과 신산스런 삶을 생생하게 묘사할까 고민했다. 변호사는 소설가같이 글과 말로 애환을 형상화 해서 전달하는 직업이었다. 감옥이 아니더라도 늪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칼바람 부는 추운 겨울에 집에서 내쫓기거나 직장에서 해고당한 사람들의 불행도 글로 표현해서 법원에 내야 했다. 법정에서는 그들의 입이 되어주는 게 나의 본업인 변론이었다.
  
  ‘좋은 변호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손녀가 물었다. 나는 좋은 변호사였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 어떤 게 좋은 변호사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변호사 사회에서는 돈을 많이 번 경우 성공한 것으로 여겼다. 어떤 변호사는 고급 저택에 외제승용차 골프장 헬스장 회원권을 가지고 클라리넷을 배우게 됐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게 아니냐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변호사가 된겠다는 친구 아들은 빌라와 예쁜 여자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변호사가 된다고 하기도 했다. 그게 좋은 변호사일까. 아닌 것 같았다.
  
  변호사 사회에서는 전에 높은 관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한 수 높게 보아주는 경향이 있다. 대법관 출신 장관 출신 판검사 출신 등 눈에 안 보이는 수많은 품종들이 있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꼭 좋은 변호사일까? 사람 나름이었다.
  
  재벌 회장들이 뇌물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법정이었다. 잠시 휴정이 되고 사람들이 화장실에 몰려가 있을 때였다. 한 재벌 회장이 서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그 옆에 고위직 법관을 지낸 변호사가 임금을 모시는 신하 같은 자세로 보좌를 하고 있었다. 오줌을 누면서 묻는 회장에게 “옛 회장님 옛 회장님” 하고 비굴할 정도의 어조로 대답했다. 돈에 팔린 비굴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왜 변호사를 산다고 표현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과거 의자의 높고 낮음이 변호사를 구별하는 기준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런 사람은 전직을 자랑해도 선배로 존경하지 않기로 했다.
  
  손녀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도대체 누가 좋은 변호사일까. 그랬다. 좋은 변호사는 인간에 대한 공감능력과 연민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억울함을 이해 못하는 변호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좋은 변호사는 고통의 경험이 있어야 했다. 도스토엡스키는 고통이 가장 좋은 법률가를 만든다고 했다. 법률지식과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손녀에게 그렇게 대답해 주고 싶었다.
  
  ‘어떤 때 힘들고 어떤 때 보람을 느꼈나요?'
  
  손녀의 평범한 질문인데 예상 외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무실로 찾아오는 의뢰인의 대다수가 불편한 요구를 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법망에서 빠져나가게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사람들은 그게 변호사라고 화석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들은 어떻게 하든 탈세와 탈법을 하는 방법을 요구했다. 그들의 공범이 되지 않고는 밥을 벌기가 어려웠다. 정의라는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은 불의를 선택했다. 성직자도 자식이 사고를 내면 판사에게 뇌물을 써 달라고 했다. 대통령도 총리도 법망에 걸려들면 뒤로 돈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썩은 하수도 물이 흐르는 세상에서 나도 오염되어 갔다. 같이 썩으면 쉬운데 양심이 더러 가시에 찔린 듯 아팠다. 그런 때 힘들었다.
  
  더러 보람도 있었다. 억울하게 갇힌 사람의 누명을 하나하나 풀어 그가 자유를 얻게 했을 때 기분이 괜찮았다. 변호사는 권력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비리를 발견할 때가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사회에 진실을 알리고 그게 이루어지는 순간은 상쾌한 느낌이었다. 그게 보람이었다고 할까.
  
  ‘변호사가 되면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손녀가 물었다. 물고기는 물을 느끼지 못한다. 삼십 년이 넘게 법의 밥을 먹어온 나는 뭐가 좋은지 모른다. 너무 그 속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손녀의 숙제를 위해 상대적으로 좋은 점을 찾았다.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정년퇴직이 없는 직업이다. 친구들은 뭐를 했건 거의 다 보통 할배인데 나는 아직도 변호사다. 스물 다섯 살 때 육군중위 봉급 구만 원을 받기 시작해서 칠십고개를 맞은 지금까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지식노동자다.
  
  변호사들 격언에 이 직업이 부자가 되지는 못해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했다. 독보적인 자기 분야가 있거나 우연히 대박이 터진 친구 변호사들은 부자가 되기도 했다. 나이가 먹을수록 경험이 축적되고 지식이 늘어나 숙성된 된장처럼 능력있는 전문직업인이 될 수 있다. 수술을 많이 한 의사가 인정받는 것처럼 변론을 많이 해야 독특한 직업적인 육감을 가질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고통을 보면서 삶의 지평을 넓히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보다 깊게 알 수 있었다.
  
  보통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혼자 분개하고 떠들고 만다. 그러나 변호사는 달랐다. 그런 사회문제를 법정에 올릴 수 있는 힘과 자격이 주어져 있었다. 대통령이라도 잘못하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수도를 옮기려고 할 때 한 개인 변호사의 소송으로 대통령의 공약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었다. 그건 시위를 능가하는 한 전문직업인의 무서운 힘이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할 때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나요?’
  
  긴긴 앞날을 두고 있는 손녀의 아이다운 고민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나의 영혼이 다시 고시낭인 시절로 돌아가 봤다. 법률보다는 문학이나 역사 예술 쪽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문열 씨는 고시 공부를 하다가 대 소설가가 되기도 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나는 외줄타기 위의 광대처럼 어쩔 수가 없었다. 뒤늦게 회사에 들어갈 수도 없고 앞이 깜깜한 상태였다. 그냥 소처럼 앞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대로 인내의 끝자락에서 간신히 문이 열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게 스스로를 만들었던 것 같다. 인터뷰어인 손녀의 마지막 질문이다.
  
  ‘삼십년간 해 오시면서 할아버지만 느낀 변호사란 뭔가요?’
  
  나름대로 깨달은 게 있다. 한 사람의 신산스런 삶을 글로 쓸 때는 작가같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변론서도 법관의 눈길을 끌어야 했다. 생생하게 묘사해서 검은 법복을 뚫고 그들의 가슴 속에 스며들게 해야 했다. 그런 수련을 거치는 과정에서 나는 덤으로 작가 자격을 얻었다. 소설가로 등단하고 컬럼니스트로 언론에 글을 팔게 됐다.
  
  법정은 최고의 무대였다. 재판부와 방청인과 그리고 배심원 앞에서 변론을 하는 변호사는 연기력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었다. 연기자의 역할은 청중과 공감하는 것이다. 변론도 결국은 마찬가지였다. 변론기술을 연구하다가 텔레비전 시사프로의 사회자 역할을 부수적으로 얻기도 했었다. 변호사로 한밤중에 범죄현장을 뒤질 때는 탐정 역할이었다. 여러 다양한 배역을 변호사는 해 볼 수 있었다.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밥을 얻기 위한 방법이라기보다는 삶의 소재였다. 애초부터 원한 건 아니었지만 변호사란 나의 천직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사람마다 각자의 천직을 통해 하늘이 부여한 사명을 수행한다는 것을. 손녀의 질문에 대답하느라고 힘이 들었다. ‘감사합니다’라고 배꼽인사를 하는 토끼의 이모티콘을 손녀가 카톡으로 보내왔다.
  
[ 2021-09-05, 16: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