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 나왔는데 내가 어떻게 노동을 하냐"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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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강가 뱃사공>
  
  구치소의 앞마당은 한산했다. 화단의 시든 풀들이 초겨울의 쌀쌀한 바람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화단 턱에 앉아 구치소 담벼락의 작은 철문 쪽을 보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삼십 년 동안 징역을 살았다. 석방이 되도 갈 곳이 없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면 오늘밤을 어디 여관이라도 잡아주던가 아니면 집에라도 데리고 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법정에서는 변호를 했는데 대책없이 석방되면 잠정적으로 보호자까지 겸해야 했다. 이윽고 철문이 열리고 동굴 같은 어둠 속에서 초로의 한 남자가 주춤거리며 걸어 나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구치소의 언덕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바라다 보는 하늘이 어때요?”
  내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정말 좋으네요”
  그의 표정에서 마음 깊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환희가 느껴졌다.
  “이 맑고 투명한 공기를 가슴 속 깊이 들여마셔요.”
  
  내가 변호사의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얼마 후 그와 함께 남양반도의 한 구석에 있는 두레마을을 찾아갔다. 김진홍 목사가 청계천의 빈민들을 이끌고 와서 세운 마을이었다. 감옥에서 나온 그가 두레마을에서 노동을 하면서 새로운 삶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데리고 간 것이다. 마을 안에 있는 김진홍 목사 숙소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개지 않은 이불이 있었고 방바닥에는 책들이 어수선하게 쌓여 있었다. 윗단추를 미처 잠그지 못한 한복을 입은 김진홍 목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다.
  
  “청계천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그저 진실하게 살고 담담히 복음을 전하러 간 건데 시간이 지나니까 세상이 나를 자꾸만 유명인사처럼 끌어내더라구요. 그래서 간증하러 다니면서 마이크를 잡고 설쳤어요. 이상해요. 사람들이 막 올려주니까 마치 내가 뭐나 된 듯이 붕 뜨더라구요. 모든 걸 정리하고 다시 노동을 하면서 기도하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속마음까지 솔직히 드러내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이 얘기하는데 갑자기 한 여인이 들어와 끼어 들었다. 낡은 검정코트를 입었는데 머리가 헝크러져 있었다. 초점이 없는 눈이었다. 그녀가 비정상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목사님 우리 엄마는 말이죠 저를 이해 못해요.”
  “알았다 내려가 있거라.”
  
  “목사님 저는 말이죠”
  그녀가 다시 호소하듯 중얼거렸다.
  
  “내려가거라”
  목사가 약간 엄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나중에 그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사연을 귀띔해 주었다. 서울대학교에 다니던 그녀는 사랑하던 같은 대학의 남자친구가 분신자살을 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그녀의 늙은 엄마가 딸을 두레마을에 의탁했다고 한다. 마을에서 그녀는 골칫거리인 것 같았다. 서울대학교를 나왔는데 내가 어떻게 노동을 하느냐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충의 분위기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으로 쓰는 방 같았다. 비닐장판이 깔려 있고 길다란 탁자가 가운데 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와서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소박한 밥상이었다. 잡곡밥과 김치 그리고 중앙에 삶은 오징어와 초장이 놓여 있었다. 부엌에서 밥을 짓는 여자가 김 목사를 보면서 말했다.
  
  “목사님 찬밥 드려서 미안해요.”
  평등한 그들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밥 먹는 자리가 진짜 설교를 하는 장소 같았다. 돼지 키우기가 힘들다는 사람에게 김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
  
  “개인이든 단체든 자존심을 가지려면 스스로의 경제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남에게 손을 내밀면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잘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땀을 흘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잘살아야죠. 그렇지만 너무 완벽하려고는 하지 마세요. 완벽주의를 추구하면 불만이 따르고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그렇다고 대충대충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인간이 부족한 존재라는 걸 인식하면서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는 몸으로 실천하는 이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인 것 같았다. 나는 감옥에서 삼십 년을 살았던 그 사내가 거기서 노동을 하면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데리고 갔었다. 나는 인간을 자유와 새로운 영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는 뱃사공이고 싶었다.
  
[ 2021-09-17, 22: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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