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高試) 수석 합격자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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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구백구십팔년 해가 저물어가는 십이월 이십삼일 오후였다. 나는 테헤란로에 있는 르네상스호텔 이십삼층 거피숍 호라이즌에서 스물여섯 살 미모의 여성을 만나고 있었다. 변호사회에서 발간하는 잡지의 인터뷰 자리에 동석해 질문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자리에 나간 것이다. 그 여성은 그해 사법고시의 수석합격자였다.
  
  “고시 공부를 왜 했어요?”
  내가 물었다.
  “제가 왜 고시 공부를 했을까요? 사법고시는 밥이 가장 확실한 자격증 같았어요. 그래서 했습니다.”
  
  “남을 보고 울어 본 적 있어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어야 좋은 법조인이 될 것 같아 물어봤다.
  
  “많이 울었죠. 길거리에서 거지 할머니가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무릎에 눕힌 손녀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어요.”
  
  “사법고시에 수석합격하니까 좋은 점이 뭡니까?”
  “사실 저는 아버지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세요. 평범한 가정에서 너무 평범하게 자랐어요. 아버지는 나 말고도 딸이 둘이나 더 되는데 아버지의 박봉에 너무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았어요. 이번에도 떨어졌다면 너무 암담하잖아요? 그런데 붙으니까 좋았어요. 이제 나만이라도 부모님 부담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녀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을 계속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찰대학에 합격했어요. 남자 백이십 명이고 여성이 다섯 명이었죠. 같이 훈련을 받는데 나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경찰대학을 그만두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들어갔어요. 사회학과를 졸업했는데 여성이라 그런지 취직이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게 됐죠.”
  
  나는 아주 솔직하고 담백한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그의 작품 속에서 고시의 합격은 실력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행운의 여신이 눈을 한번이라도 찡긋해 줘야 합격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천재성을 가진 그도 고시를 도중에 그만두었다. 그렇다면 수석합격은 하늘이 내려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시를 칠 때 전두환정권이 들어서고 국민윤리라는 과목을 고시에 끼어 넣었다. 지방에서 직업을 가지고 공부하던 나는 처음생긴 과목을 보고 당황했었다. 1점 차이로 국민윤리의 과락을 면해서 나는 합격을 했었다. 한 과목이라도 과락이 있으면 다른 과목의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낙방이었다. 그런 불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상위권의 성적이었다. 새로 과목이 된 국민윤리만 없었으면 어쩌면 수석 점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들었었다. 하늘이 내린 행운은 잘 관리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고시를 치던 그 해 수석합격을 했던 사람은 판사로 승승장구하고 잘 나갔다. 그러다 큰 로펌에 들어가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는 돈을 버는데도 성공한 것 같았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고급아파트와 승용차 그리고 화려한 파티를 자주 개최했다. 그와 함께 자기도 하고 잠시 동안 친했다. 그는 자기가 임원으로 이름을 등록한 회사의 주식으로 수십억을 단번에 벌었다고 좋아하면서 자랑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그가 이름을 올렸던 회사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언론에 기사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며칠 후 일면 톱기사로 그의 자살이 보도됐다.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그는 죽은 것이다. 허망한 인생이었다. 하늘에서 행운을 받으면 그걸 잘 갈고 닦아서 보석을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내가 아는 또다른 고시 수석합격자도 돈을 버는 쪽으로 갔다. 먼 풍문으로 그의 삶이 편한 것 같지 않았다. 도박에 빠져 카지노의 단골손님이라는 말을 전해듣기도 했다. 뛰어난 머리를 가졌다고 좋은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
  
  여성판사가 가난에 쪼들려 도둑질을 한 여성피고인 앞에서 굵직한 다이어 알이 박힌 반지를 끼고 재판에 임하는 걸 보기도 했었다. 그런 여판사는 사회적 겸손이라는 걸 몰랐다. 나는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면서 그녀에게 던졌던 질문을 나에게 해 보았다.
  
  왜 고시공부를 했을까? 불의한 힘이 설치던 세상이었다. 그 힘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밥은 그 다음이었다.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변론문을 쓰면서 사무실에서 혼자 눈물을 흘린 적이 많았다. 더러는 눈물이라는 렌즈를 가지고 봐야 그들 영혼의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자기가 아파봐야 남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고통받는 사람의 절규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은 맑은 강물에 그들의 더러운 상처를 담궈 씻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보석같이 반짝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추슬러주는 좋은 판사가 되기를 희망했었다. 그 스물여섯 살의 여성 수석합격자를 만난지 어느새 이십삼 년이 흘렀다. 문득 그녀가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해서 알아 보았다. 그녀는 중견의 부장판사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흔들리는 이 사회를 고정시키는 닻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 2021-09-18, 21: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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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건     2021-09-19 오후 3:19
역시 좋은 글 감사히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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