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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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해외여행을 하다가 이상한 남자를 보았다. 막말을 하고 행동도 불손했다. 그를 아예 상대하지 않고 피했다. 여행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지친 여행객들은 자기의 짐들을 버스 기사가 알아서 짐칸에 넣겠지 하고 버려두고 차에 올라탔다. 무거운 트렁크 수십 개가 길에 널려 있었다.
  
  제일 늦게 가방을 짐칸에 넣으려던 나는 짐칸 안에서 한 남자가 머리를 수그리고 앉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그는 여행객들의 무거운 짐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피하던 그 남자였다. 나는 그를 나쁘게 봤던 걸 고백하고 정중히 사과했다. 그는 씩 웃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군 판사를 할 때였다. 자주 법정에 나타나는 선배 변호사가 있었다. 그가 나를 막 대하는 것 같아 내심 불쾌했다. 어느 날 그가 접대하고 싶다고 다른 장교들과 함께 나를 초청했다. 나만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그 자리에 갔다온 선임 장교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 선배가 너를 아주 괘씸하게 보더라. 나보고 한번 때려주라고 하던데.”
  
  그 말이 가시가 되어 나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오랫동안 변호사로 같이 활동을 해도 그 선배에 대해 꽁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연히 모임에서 나란히 앉아도 불편했다. 아무래도 마음의 매듭을 풀어야 할 것 같았다. 어느 날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전 그런 적이 없어요. 말도 안돼요. 혼자서 그 자리에 오지 않으니까 선배 장교가 슬쩍 돌려서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
  
  나 혼자만 오해를 하면서 속을 끓이고 있었다. 그렇게 우둔하고 옹졸한 존재인지 나는 나 자신도 모르고 살았다. 나는 솔직히 어머니와 아버지도 모른다. 아내의 내면도 모르고 자식도 모르는 것 같다. 친구도 모르고 이웃도 모른다. 단지 익숙할 뿐이지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존경하는 백년 전의 현자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그 노인은 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그 사람이 도달하고자 작정한 미래에 있다는 것이다. 돈이 목적이면 그는 돈이고 사람이 아니라는 것 같았다. 권력이 목적이면 그는 자리 자체고 인간이 아니라는 소리 같기도 했다. 노인은 그분을 알고 그 사랑 안에 있으면 인종이 다르고 다른 나라 사람이라도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내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보니 떠오르는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아이들을 유학 보내기 위해 이민신청을 했었다. 그래야 현지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학원에서 아내에게 서류부터 시작해서 별별 꼼수를 다 알려주었다. 심지어 어떻게 거짓말을 하라는 것까지 자세히 알려 주었다. 정해진 날에 나는 아내와 함께 그 나라 대사관에 심사를 받으러 갔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백인 여성이 통역관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얼어붙을 것 같이 차 보였다. 많은 사람들의 꼼수와 거짓말을 경험해 본 냉정이 틀림없었다. 아내가 지난 밤에 외운 대로 더듬더듬 대답을 했다. 백인영사의 눈빛은 이미 리젝트할 걸 결심한 것 같아 보였다. 통역관인 한국인 여자도 찬바람이 돌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통역을 하던 한국여성이 서류를 뒤적이다가 나를 보고 물었다.
  
  “혹시 감옥에서 나온 죄인이 갈 곳이 없자 집에 데리고 가서 같이 지낸 그 변호사 아니세요?”
  
  그런 적이 있었다. 뭐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삼십 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 그와 관련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장 먹을 밥도 하룻밤 잘 곳도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데려가 한 달을 산 적이 있었다. 내가 쓴 수필 중에 그 죄인과 지낸 에피소드가 통역을 하는 그녀가 그걸 기억한 것 같았다. 갑자기 표정이 바뀐 그녀는 백인 영사에게 유창한 영어로 뭔가 한참을 설명했다.
  
  영사인 백인 여성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면서 어쩔 줄 모르는 태도로 변했다. 백인 여성영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나갔다가 타이프 라이터를 들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러면서 자기의 나라에서 혜택을 받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하라고 했다. 자기가 추천서를 즉석에서 써 주겠다는 것이다. 뜻밖의 축복이었다. 그때 나는 약간 깨달았다. 그 분을 목적으로 삼고 그가 시키는 일을 하면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기는 너무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인종도 언어도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이다.
  
[ 2021-10-13, 21: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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