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과 조폭…'형제'의 두 모습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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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형제>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을 할 때 고교 선후배 몇 명이 고정적으로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좌장 노릇을 하는 선배는 인격과 재산을 함께 갖춘 원로정치인이었다. 그는 우리가 친동생 같다고 입버릇같이 말하곤 했다. 박 시장 부인은 그 선배 부부가 결혼식 때도 온 막역한 법조 선후배 사이였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갑자기 저세상으로 가고 일 년이 흘렀다. 얼마 전 죽은 박 시장의 부인과 딸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형 같던 존경하는 선배 부인이 꾼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돈에 등한한 박 시장 모르게 조금씩 생활비를 꾼 적이 있었다고 했다. 시장의 딸은 아버지가 남긴 건 많은 책과 자료뿐이라고 했다. 세상은 그 말을 믿지 않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수긍하기가 어려웠다.
  
  성남의 대장동 개발을 둘러싸고 관계자들이 수천억의 돈 잔치를 한 게 드러나 세상이 분노하고 있다. 박 시장이 안 했으면 부인이라도 돈을 빼돌려 숨겼을 것이라는 게 세상의 인식이었다. 역대 대통령의 부인도 그 짓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형제라던 선배 부인의 소송도 그런 인식을 배경으로 괘씸하다는 감정으로 제기된 느낌이다.
  
  이번에도 무료변호를 맡은 내가 할 일은 간단하다. 법원이 중간에서 박 시장이 남긴 재산을 철저히 조사하게 하는 것이다. 재산을 은닉하기 쉽지 않은 그물 같이 짜여진 세상이다. 소송보다 나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형제’라는 단어였다. 선배 부부는 지금도 형제라는 의식이 남아있을까.
  
  박 시장 부인은 지금도 길을 가다가 멀찌감치 얼핏 보이는 박 시장을 만난다고 했다. 평소 메던 등산배낭에 등산화 차림이었다고 했다. 방에 혼자 있는 부인에게 빙의해 억울하다고 통곡을 한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나는 소송을 제기한 선배의 오해를 풀고 다시 형제 같은 사이로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진정한 형제란 무엇일까. 조폭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던 서너 명의 인물들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오래 전 감옥에 들어간 조직의 형제를 구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그 형제의 가족과 자식을 먹여 살리고 교육시킨 것 같았다. 감옥에 사는 조직원의 아이가 대학을 들어갔다고 했다. 조직에서 로비를 해서 법무장관까지 사면을 할 마음을 먹게 했는데 문제는 사회여론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형제 같은 조직원을 석방시키려는 간절한 표정을 봤었다. 핏줄을 같이 한 형제보다 그들이 훨씬 더 진한 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피를 나눈 형제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원수같이 지내면서 남보다 못한 경우도 많았다. 사소한 섭섭함으로 멀어지기도 하는 것 같았다. 다리가 불편한 상태에서 변호사를 해 온 친구가 있다. 차남인 그는 가난한 집안의 기둥이 되어 늙은 아버지를 임종까지 돌보았다. 살 집도 사드리고 생활까지 보살폈다. 어느 날 맏형이 동생을 불러놓고 더 이상 형과 동생의 관계로 있지 말자고 하면서 절연을 선언했다. 동생은 형에게 혹시 교만했거나 잘못이 있다면 빌겠다고 했지만 형은 입을 다물었다고 했다. 그 동생이 내게 하소연하고 엉엉 우는 모습을 보았다.
  
  도대체 형제라는 게 뭘까? 나는 의문이 생길 때 항상 성경과 내가 존경하는 백년 전의 현자인 노인에게 묻곤 한다. 성경 속의 예수가 그를 둘러싼 군중들에게 말을 할 때 그의 형제가 찾아왔다. 앞에 있던 어떤 사람이 형제들이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밖에 서서 있다고 전했다. 예수는 그 말을 전하는 사람에게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내 형제다.”라고 말했다. 핏줄을 등한시하는 위선적인 냉냉한 말 같이 들렸다. 내가 존경하는 현자인 노인은 그게 아니라고 했다. 이익에 얽매인 형제 관계는 가짜이고 핏줄에 연연하면 우리들의 세계는 아주 옹색해지는 걸 말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노인은 사랑의 영으로 맺어진 관계가 진짜 형제라고 내게 알려주었다.
  
  나와 친한 한 일간신문의 주필인 고교 후배가 있었다. 그가 양쪽 신장의 기능이 상실된 적이 있었다. 그는 아파트의 어둠침침한 방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합병증으로 시야가 어두워져 보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의 절망을 보면서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가슴이 아플 뿐이었다. 그가 어느 날 되살아났다. 동생이 신장을 형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동생에 대해 그 감사를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믿음이 깊은 그 형제는 핏줄의 인연을 넘어 영이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진정한 형제란 그게 아닐까.
  
  
  
  
[ 2021-10-14, 21: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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