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적이 대통령인 사람의 마지막은 감옥?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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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간 손녀를 볼 수가 없다. 학원에 가기 바쁘기 때문이다. 학원 앞에 가서 기다렸다가 손녀가 먹고 싶어하는 걸 사줄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 학원에서는 카카오톡으로 수시로 손녀의 석차를 통보하는 것 같다. 손녀의 목적이 벌써 내신 일등급이 됐다. 일등은 하나인데 그걸 두고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상에서 일등 같아 보이는 대통령 자리를 두고 어른들도 진흙밭의 개싸움을 하고 있다. 추구하는 길이 다양하지 않고 권력과 돈 그리고 사람들의 박수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변호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잠시 국회의원을 겸직하는 변호사 밑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산골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내게 “국회의원이 되는 건 로마로 통하는 길이야”라고 하면서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 뜻을 비쳤다. 그가 청와대 비서실장을 하고 마침내 대통령 후보로 당내 경선에 참가하는 걸 봤었다.
  
  우리들의 뇌리에 박힌 조상 대대로 유전되어 오는 인자가 있는 것 같다. 인생의 목적이 오직 권력이었다. 노회한 정치인인 홍준표는 지금 싸우는 여야 두 사람 대통령 후보중의 한 명은 감옥에 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제6공화국 말기 나는 잠시 대통령직속기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대통령선거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야당 대표였던 김영삼이 여당과 합당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위대한 결단이라고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적어지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 자체가 인생의 목적인 것 같았다.
  
  재벌 회장이었던 정주영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인생의 목적이 재벌에서 대통령으로 바뀐 것 같았다. 목적을 이룬 현직대통령은 또 다른 목적이 생긴 것 같았다. 그는 계속 임금같이 살고 싶은 것 같았다. 대통령을 하면서 부자가 된 것 같았다. 퇴임 후의 안전을 위해 정치거래를 한 것 같았다. 현직 대통령은 확실한 보장조치를 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서려는 당내 후보자들을 약점을 잡아 주저앉혔다. 토론회도 없이 단독입후보에 단독 당선이 되게 했다.
  
  김영삼은 대통령이라는 평생의 목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권력의 게임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취임 후 사정비서관을 불러 정치적 경쟁자들의 범법 사실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정보기관이 움직이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정치적 경쟁자였던 사람들이 은퇴를 선언하고 일본으로 영국으로 피해 나갔다. 박철언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제가 지금 겪는 고통은 지난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를 반대했기 때문에 겪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적 보복, 매장, 제거하기 위한 집중적인 표적이 되고 있고 주변의 사람들이 유탄 파편을 맞고 있습니다”라며 호소하고 구속됐다.
  
  정주영이 일본으로 가려다가 출입국관리소에서 잡혔다. 검찰의 정주영 소환 때였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아우성치는 속에서 정주영은 카메라에 받혀 이마와 콧잔등이 찢어지기도 했다. 현대그룹이 문을 닫는다는 소리가 돌았다. 결국 노태우 전 대통령도 감옥으로 갔다. 그런 게 권력 게임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을 조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감옥보다 죽음을 선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을 조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다.
  
  인생의 목적이 대통령인 사람의 마지막은 감옥인 것 같았다. 과연 인생의 목적이 대통령이어야 하고 그 다음이 감옥이어야 할까.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이 세상 이상의 존재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목적을 대통령이라는 자리 이상에 둔다면 품격이 높아지고 오성이 밝아지지 않을까. 최고 권력의 자리를 성공으로 보고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다.
  
  인생의 목적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삶의 목적을 어디로 삼아야 할까. 나는 그 분을 아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분의 생애는 대실패였다. 세상에 항거하고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따랐다. 고로 대성공이었다. 그 분은 현세를 위한 현세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세를 위한 현세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사랑의 사업에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21-11-16, 22: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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