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신창원의 운명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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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주범 신창원을 변호할 때였다. 선고를 하루 앞두고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마음이 참 편해요. 지금 소망이 있다면 내일 사형을 선고해 줬으면 하는 거예요. 강도죄가 들어 있으니까 사형도 된대요. 판사가 사형만 선고해 주면 저는 절대로 항소하지 않고 죽을 거예요. 이런 말을 하는 게 자포자기해서 그런 건 아니예요. 못 배우고 범죄로 얼룩진 잘못된 제 운명을 다 지워버리고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그는 어두운 환경에서 자라나 사회의 그늘에서 범죄를 하고 일평생 어두운 감옥에서 보내고 있다. 감옥 안에서 자살시도도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월사금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고 막 때리는 거예요. 그리고 교실 뒤에 혼자 서 있으라는 거예요. 학교에 가기 싫더라구요. 그래서 가지 않았죠. 그때 선생님이 따뜻한 말 한 마디만 해 줬어도 지금 내가 이렇게 범죄자가 안 됐을 거예요. 그때 학교에 가지 않고 동네 아이들과 과수원 서리를 했어요. 그때는 배고픈 가난했던 시절이라 남의 과수원에 가서 복숭아도 따먹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나만 입건이 되고 도둑놈이 된 거예요.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중간에서 다 뺐죠. 감옥에 가니까 교도관이 재래식 똥통에 머리를 박아넣고 있게 하더라구요.”
  
  학대는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들은 사랑 한 방울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그의 환경은 여당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과 비슷한 것 같았다. 며칠 전 밤 늦게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재명의 인터뷰 장면을 봤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초등학교 때 선생에게 너무 맞았어요. 봄에 보리 한 되 가을에 나락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있어야 가져가죠. 미술시간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또 맞았죠. 그 벌로 변소의 똥 푸는 걸 전담했어요. 그러다가 열세 살부터 공장에 다녔는데 작업반장이 아침에 가면 때리고 저녁에 또 때렸어요. 낮에는 나 같은 공원 둘을 서로 권투를 시키기도 하구요. 나를 때린 작업반장을 보니까 고등학교를 다녀서 반장을 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목숨 걸고 검정고시 공부를 했어요. 중학교 과정 검정고시에 합격했을 때가 정말 기뻤어요.”
  
  그는 공부길로 가서 인권변호사가 되고 시장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됐다. 사람마다 보이지 않는 운명이 있는 것 같았다. 신창원과 이재명은 성장한 토양은 비슷한데 결과는 달랐다. 운명은 여러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어둠이 아니라 눈 부신 빛 속에 살다가 거꾸로 어둠의 끝없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봤다. 명문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 있었다. 금수저 출신이었다. 장관의 아들이고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는 재벌가의 딸과 결혼했다. 아들이 없는 재벌 집안이었다. 신문에는 그가 재벌가의 경영을 맡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때 그의 모습은 유럽의 성(城)을 가진 왕자나 귀족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초라한 모습으로 나의 법률사무소에 나타났었다. 그는 재벌가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한 것이다. 평생 실패를 모르고 산 그는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소송 도중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밝은 곳에서만 살던 그는 순간 끼는 구름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정말 무난한 인생을 사는 운명도 있는 것 같다. 밝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인생 마지막까지 굴곡없이 무난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아는 그 친구는 아버지가 대한민국에서 현찰이 제일 많다고 하는 분이었다. 돈 많은 아버지의 소원은 공부 잘하는 아들이었다. 아들인 그는 엠아이티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교수로 일생을 지냈다. 학교에서 정년 퇴직한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건실하게 운용하고 있다. 일생이 순풍 속의 항해 같아 보였다. 내가 본 운명의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예수는 마굿간의 여물통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가 마지막에 사형을 당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예수의 운명도 어둠 속에서 태어나 어둠 속에서 살다가 어두운 곳으로 사라진 존재가 아닐까. 운명이라는 것은 어쩌면 별 같은 영혼 아래를 흘러가는 구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어둠 속에 있어도 그 영혼은 구름 뒤의 하늘에서 총총히 빛날 수 있다.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삶 속에서도 그 영혼은 구름에 가려 깜깜한 어둠을 헤맬 수도 있다. 운명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운명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다. 그분은 어둠에 감사하라고 한다. 고난당한 것이 네게 유익이라고 한다. 고난은 그분의 검은 은혜일지도 모른다.
  
  
[ 2021-11-20, 06: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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