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악사(樂士)가 된 金 판사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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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카톡을 통해 내게 동영상을 하나 보내주었다. 노인들이 모이는 종로의 허리우드극장 낡은 무대 위에서 한 남자와 세 명의 여성이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장면이었다. 마치 오래 전 유랑극단을 연상하게 하는 노인들을 위한 위로 공연이었다. 악단장 같은 모습의 작고 둥근 모자를 쓴 남자가 흘러간 노래인 ‘울고 넘는 박달재’를 구성지게 연주하고 있었다. 청중인 노인들 쪽에서 박수소리가 울리고 “잘한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악단장 모습의 남자가 친구인 김 판사였다. 그가 판사생활을 끝낸 후 십년 전 갑자기 오카리나를 배워 길거리공연부터 시작한 것이다. 놀라운 변신이었다. 부장판사로 재판장석에 앉아 근엄하게 행동하다가 노숙자들이 있는 뒷골목에 서서 거리의 악사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칠십고개를 앞둔 노인인 그의 무대를 보면서 이런 글 한토막을 단톡방에 올렸다.
  
  ‘김 판사 악단 대단하다. 최고의 연주다. 참 잘했어요.’
  고등학교와 대학을 같이 나왔고 오랫동안 같이 고시 공부를 한 친한 친구였다. 그의 답장이 왔다.
  ‘땡큐 부럽지? 여인들 사이에서 노는 게.’
  
  그는 쑥스러웠는지 민망함을 농담으로 피했다. 검은 판사복에 가려져 있던 그는 원래 마음속 밑바닥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성격이었다. 그렇다고 얕은 사람이 아니었다. 산 속의 호수처럼 맑고 깊이가 있었다. 그는 숨길 것도 없고 또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그런 성격이었다. 대학 시절 같이 지내보면 부끄럼 없이 자신의 모든 걸 폭로하는 그런 품성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그는 철저한 상식의 사람이었다. 판사 시절 정의에 위반한다고 생각하면 그 누구의 청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호사인 내가 한번은 그가 재판장으로 심리를 하는 사건을 맡았다. 그는 나를 따로 찾아와 그 사건을 맡지 않을 수 없느냐고 사정했다. 가장 친한 친구로 봐주고는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어서 거꾸로 내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그런 성격이었다. 나는 위선자보다 그런 친구가 좋았다.
  
  나는 음울한 사람, 자기를 자꾸 감추려는 사람을 싫어한다. 자기 혼자만 우뚝 서서 다른 사람을 내려다 보는 사람을 싫어한다. 자기 주위에 높은 성벽을 쌓고 자기 내부를 다른 사람이 엿보지 못하게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와 말하는 카톡방은 네 명의 노인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단톡방이었다. 판사출신인 다른 친구가 글을 올렸다.
  
  ‘우리 만날 때 그 여성분들 모시고 나와라 ㅎㅎ’
  
  농담이었다. 오랫동안 판사 생활을 한 그 친구는 노년에 섹소폰을 배우다가 때려치우고 지금 음식배달을 하고 있다. 뒤늦게 악기를 배우는 게 너무 어렵다고 했다. 김 판사 같이 멋지게 위로공연 무대에 서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몇몇 사람들과 새벽에 도시락을 만들어 직접 쪽방촌에 배달하고 있었다. 젊은시절 판사로 높은 법대에서 내려다보다가 직접 쪽방촌을 찾아가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들의 방문을 열고 밥을 넣어주면서 보니까 세상이 달라보이더라고 했다. 그는 쪽방에서도 손바닥만한 창문이 있는 것과 없는 것과 천지차이인 걸 발견했다고 내게 말했다. 따스한 정이 흐르지 않는 신성한 법정은 가을 달처럼 교교하기는 하지만 차가운 게 사실이다. 신성한 것은 높은 법대에서 판결을 선고하는 일이 아니라 밥을 하고 나물반찬을 만들고 그걸 산동네 쪽방촌에 배달하는 노동이 아닐까. 그가 단톡방에 올린 농담에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와 같이 있는 사람들 멋진 여성들이다’
  
  외모가 아니라 자기의 시간을 늙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준다는 것 자체가 사랑이 아닐까. 그들은 마음이 멋진 여성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추어 유랑극단장인 김 판사가 다시 코믹한 글을 올렸다.
  
  ‘그들은 남편이 있는 사람들이니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거리보다 멀리할지어다. 나이들어 돌아보니 우린 젊은시절 재미없이 세월만 허송했네. 이 나이에 어디에 들이밀겠나’
  
  그 말에 판사출신 다른 친구가 글을 보냈다.
  ‘김 판사는 그래도 젊은시절을 재미있게 보낸 것 같음’
  
  마지막으로 내가 글을 올렸다.
  ‘인생의 저녁 남은 시간을 함께 즐겁게 보냅시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 2021-12-01, 23: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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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파     2021-12-04 오후 7:10
참 인간다운 정이 흐르는 멋진 분들입니다~
친구의 정을 넘어 바르게 판결하는 판사님도 정말 훌륭하십니다.
그것이 양쪽을 다 살리는 길이기도 합ㄴ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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