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소리는 다수가 필요없다
동지가 적다고 위축되어서는 안된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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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신문을 만들며
  
  ‘대한변협신문’을 맡아서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온 적이 있었다. 작은 신문이지만 세상의 빛이나 소금 역할을 한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반의 상업언론은 광고에 얽매여 있다. 권력과 타협도 하고 시대조류를 의식해 침묵하기도 했다. 열정만 있다면 성경 속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경에는 만 명이 넘는 지성인 집단이 있었다. 특히 제작비 걱정이 없었다. 기자가 없어 내가 기자를 겸할 수밖에 없었다. 인쇄나 배포는 비정규직 직원이 한 명 있었다. 용감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변호사단체를 마치 산하 부설기관같이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법무부 장관의 오만을 기사로 썼다. 기사가 나가기 전날이었다. 법무부에서 변협회장을 통해 그 기사를 삭제하라고 압력이 왔다. 단호히 거절했다. 편집권이 독립되어 회장도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마지막에 법무부의 담당 부장검사한테서 직접 연락이 왔다.
  
  “장관님을 비난하는 그 기사를 그렇게 꼭 내보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꼭 내보내려고 합니다. 저의 일입니다.”
  
  “그러지 마시구요. 저희에게 협조해 주시죠. 그러면 저희도 그냥 있지 않겠습니다. 지금 제가 만드는 수사시 변호인 입회 규정에서 변호사의 권리를 조정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형식은 위원회에서 하지만 제가 실질적으로 만드는 겁니다.”
  
  국민이 변호를 받을 권리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가 생색을 낼 사안이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기사를 내보냈다.
  
  나는 그 다음으로 국정원의 불법 수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그곳에서 일해 봤기 때문에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들의 간접적인 압력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려움은 모를 때 생겨나는 법이다. 국정원의 요원이 와서 그들 나름의 회유책을 쓰기도 했다. 작은 신문이지만 용기 있는 바른 소리를 하니까 그들이 반응하는 것 같았다.
  
  다수가 필요 없다. 한 사람이 외쳐도 사회에 울림을 줄 수 있다. 용기 있는 말에는 그런 힘이 있다. 나는 눈치를 보지 않고 글을 썼다. 토착 왜구를 주장하는 사회단체에 당위로 재면 제대로 진실한 역사를 볼 수 없다고 썼다. 그런 단체에서 항의 전화가 몰려왔다.
  
  나는 기존 언론이 기피하는 분야에 대해 과감히 써 볼 계획이었다. 언론들은 노조나 종교 장애인 분야나 같은 언론에 대해서는 쓰지 않거나 조심한다고 했다.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언론의 잔인성이나 횡포가 만만치 않은 세상이다. 최고의 유력 일간지들을 건드리고 논설실장들의 잔인한 글을 비판했다.
  
  벌집을 건드린 것 같았다. 그들은 기사로 사설로 그리고 컬럼으로 연일 나 개인에게 집중포화를 퍼붓기도 했다. 나를 해고하라는 기자들의 단체행동도 있었다. 그렇게 한다고 물러날 이유가 없었다. 얻어맞으면서 언론을 알게 됐다. 무서워하지 않으면 언론은 나의 솜털도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년의 임기 동안 내 할 일을 하다가 편집인 자리를 물러났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성경 속의 ‘빛과 소금’을 화두로 놓고 고민해 보는 과정이었다.
  
  전방위로 공격을 하고 전방위에서 날아오는 돌을 맞았다. 많은 욕을 얻어먹고 짓밟히기도 했다. 때로 변협 내부의 다수로부터 공개적인 독한 비난으로 마음이 주춤할 때도 있었다. 현실사회란 의로운 사람과 성결한 사람의 세상이 아니다. 그들은 소수이고 오히려 세상 물결대로 별 의식 없이 돌을 들어서 던지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동지가 적다고 위축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보면 천명 중의 한 사람만 루터가 되도 충분했다. 나 혼자 해 낼 수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극소수라도 그 분이 용기를 주시면 사회의 부패를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떳떳하게 할 말을 하고 그대로 밀고 나가면 하나님이 끝까지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사회에서 정의가 맥을 못추는 것은 정의를 외치는 사람의 용기와 분발심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좀 더 담대하게 정의를 외치면 하나님은 기꺼이 최후의 승리를 안겨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과정의 시련은 나의 심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과정이라고 간주했다. 그게 세상의 묘미가 아닐까.
  
[ 2022-01-08, 15: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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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바로서야     2022-01-09 오전 9:15
아하! 우리 자유 대한민국의 진정한 등불이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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