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善行)의 타이밍
"사람이 침몰할 때는 아무리 사정을 해도 돈을 도와 주면 안돼요. 어차피 바닥으로 떨어지더라구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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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善行)의 타이밍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손을 벌리는 경우가 참 많다. 몇 년 전 남해의 한 섬에서 노인들을 돌보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그들이 산다는 바닷가로 갔다. 선행을 하고 싶은 약간의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식탁 위에는 전복죽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갑자기 엄청나게 비싼 전복죽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식사가 끝난 후 나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양지바른 집이 한 채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그 집을 사달라고 했다.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돈이 없었다.
  
  삼십 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상습절도범을 무료 변호한 적이 있다. 믿음이 깊은 것 같았다. 석방되던 날 그는 내게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를 집으로 데려와 한달간 함께 살았다.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온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도둑질을 해서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그 후 석방이 된 후에도 또 도둑질을 했다. 나이 팔십까지 그는 일생을 도둑질로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십오 년 동안 감옥에서 징역형을 치르고 있는 친척이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거칠었다. 처도 자식을 데리고 떠나가고 형제들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무서워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면 공포에 떨었다. 그가 재판을 받을 때 가족이 오히려 그가 감옥에 오래살았으면 좋겠다고 탄원서까지 쓸 정도였다.
  
  친척이기 때문이 아니라 절대고독 속에 있는 그에 대한 연민으로 영치금을 보내주었다. 이빨이 대여섯 개밖에 남지 않은 그가 불쌍해 틀니를 해주기도 했다. 사회에 나와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용접과 도배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돈도 보내주었다. 그는 감옥에서 마치 하나님 대하듯 편지를 써 보내곤 했다. 석방되면 꼭 착한 사람이 되어 보답을 하겠다고 했다.
  
  그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다. 성경 속의 시편 23장을 노트에 천 번 써서 보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의 영혼이 구제되기를 바란 것이다. 마침내 추운 겨울 어느 날 그가 석방됐다. 그가 우선 필요할 돈이 든 옷을 보내고 시골에 묵을 따뜻한 방을 마련해 주었다. 귀촌을 해서 정직한 농부라도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 후부터 그는 내게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차를 한 대 사주셔야 내가 서울에서 사업을 할 수 있어요. 차를 사주세요.”
  
  그가 말했다. 그의 어조가 어느새 감사가 아닌 강요조로 들렸다. 나는 친한 한 목사에게 의논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온정을 베풀 때도 그 방법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변호사가 잘사는 것 같이 보이니까 간을 보고 작업을 벌리는 겁니다. 그 친구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면 먼저 구걸이라도 했어야 합니다. 길 가는 사람들에게 천 원만 적선하라고 하면 제법 주는 사람이 있어요. 노숙자 합숙소도 무료급식소도 있어요. 정부가 그런 사람 굶어 죽지 않게 주는 돈도 있어요.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도울 때도 냉정하게 도와야 합니다. 거절할 건 거절하고 단호하게 대할 건 단호했어야 합니다.”
  
  그 목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관념적이고 감상적인 선을 행하려고 했었다.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운 육십대 말의 재산이 많은 부인이 있다. 그 부인은 내게 이런 조언을 했다.
  
  “사람을 돕는 것도 타이밍이 있어요. 그 사람이 침몰할 때는 아무리 사정을 해도 돈을 도와 주면 안돼요. 어차피 바닥으로 떨어지더라구요. 도와줄 시기가 있는데 그건 그들이 바닥에서 두 다리로 딛고 자기 힘으로 다시 일어서려고 할 때에요. 이런 거 그냥 쉽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철학이죠.”
  
  그 부인에게서 진리를 배운 느낌이 들었다. 얼마 후 다시 내게 전화가 왔다.
  
  “차를 사주시면 제가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데 생각해 봤어요?”
  “차를 사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어정쩡하지 말고 ‘노’라고 분명히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서울에 묵을 원룸을 얻어 줘요.”
  “그것도 싫은데.”
  
  “그러면 나 죽으라는 겁니까? 하나님 하나님 찾으면서 왜 그래요?”
  “너하고는 수신 차단하고 다시 연락하지 않을 거야.”
  
  개 꼬리는 백 년이 지나도 개 꼬리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의지할 사람도 없고 믿을 하나님도 없는 사람은 정말 구원이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깊은 늪에 빠진 사람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스스로 빠져나오기는 힘들다. 사람이 구원받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나 이외의 사람에 의해 구원을 받든가 아니면 인간 이상의 존재인 그분에 의해 구원받는 방법이다. 나는 그가 하나님을 믿고 진정으로 무릎을 꿇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 2022-05-04, 21: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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