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차로 떠난 '희랍인 조르바'
“나 산속 컨테이너에 혼자 살아. 밤이면 계곡에서 물 쏟아지는 투명한 소리를 듣는 게 좋아"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서울대를 나온 의사인 친구가 말했다.
  “인생을 살아보니까 내 뜻대로 된 게 없어. 항상 실패야.”
  “그게 무슨 소리야?”
  뜬금없는 말에 내가 되물었다.
  
  “이십 년간 연구하고 임상실험을 해서 논문을 썼어. 임상실험이 힘들 때는 내 몸을 연구 대상으로 했었어. 모든 의사가 환영하는 치료방법을 개발한 거지. 그 논문을 국제적인 학술지에 보냈지. 대단한 내용이라는 심사평이 왔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설렜어. 뉴스에도 나오고 내가 기자들 앞에서 나의 논문을 설명하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마음이 구름 위로 떠다녔어. 그러다 바닥에 패대기쳐졌어.”
  
  “왜 무슨 이유로?”
  “미국의 그 학술잡지 편집장한테서 연락이 왔어. 임상실험이 국가의 정식 허가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게재하지 못하겠다는 거야. 단순한 행정절차 때문에 내 논문은 망한 거야.”
  
  수학문제로 비유하면 답은 맞는데 식에 흠이 있었던 것 같다. 몇년 전 여성들로부터 난자를 사서 실험을 했던 게 문제가 됐던 적도 있었다. 의료윤리가 엄격해진 것 같았다.그가 또 이런 말을 했다.
  
  “의사들이 거의 다 사용하는 내가 만든 의료용 프로그램이 있어. 내가 일찍부터 컴퓨터에 흥미가 있어서 독자적인 벤처회사를 만들어 그 프로그램을 제작했거든. 회사가 잘 나갔는데 관리직원 한 명이 사고를 친 거야. 그래서 회사를 팔아버리고 그만뒀어.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지금 의료계에서 안 쓰는 의사가 없어. 대박이 난 건데 난 쪽박을 찬 셈이지. 일평생 되는 게 없어.”
  
  같은 변두리의 초등학교를 나온 그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항상 전교 일등이었다. 나는 이등이었다. 졸업식 때 상은 그가 독점했다. 나는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우리 두 명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많은 그 변두리의 초등학교에서 명문중학교 입시에 합격했었다. 그는 소년 시절도 자유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가출을 해서 전국을 떠돌았다. 중국집 배달원을 하기도 했다. 그가 맥주홀 문 앞에서 손님들을 부르는 일을 하다가 그를 찾아온 부모에게 잡혀서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그래도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걸 보면 머리가 비상한 친구였다. 삼십대 초에 그는 의사가 되어 개인의원을 차리고 나는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 개업을 하고 한 달쯤 됐을 무렵 점심 때 그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었다. 의뢰인도 없고 법률상담도 없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한심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더니 나를 끌고 옥수동 산꼭대기에 있는 자기 의원으로 데려갔다. 그의 의원도 휑한 느낌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책상 위에 놓여있던 대학노트를 펼쳐 보이면서 말했다.
  
  “이게 어제 진료한 환자들이야. 딱 세 명이야. 이러다가 굶어 죽겠어.”
  
  그는 그런 방식으로 나를 위로했다. 몇 년이 흘렀다. 지방으로 옮겨서 차린 그의 의원에 환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든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흥미로 만든 프로그램이 호응을 받아 벤처 회사가 탄생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주위에서는 그를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했다. 그는 비즈니스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좋은 머리와 학벌, 경력에 불구하고 항상 적자 인생이었다. 관심은 항상 엉뚱한 곳에 있고 엉뚱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전자투표의 부정선거에 꽂혀 그 증명을 하느라고 밤을 새기도 했다. 노년에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얘기가 들렸다. 아내에게 모든 걸 주고 이혼하고 지방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이었다. 며칠 전 그가 뜬금없이 내가 혼자 묵는 실버타운에 나타났다.
  
  “나 산속 컨테이너에 혼자 살아. 밤이면 계곡에서 물 쏟아지는 투명한 소리를 듣는 게 좋아. 대학 시절 읽었던 ‘희랍인 조르바’같이 살고 싶었어. 그래서 요즈음은 차에 텐트를 싣고 다녀. 얼마 전에는 여수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살았어. 검진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 먹고 살 돈은 들어와. 의사 자격증 덕이지.”
  
  그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젊어서는 이성적으로 불교와 기독교에 관심을 가졌었어. 그러다가 요즈음은 산 속 컨테이너 안에서 성경을 읽어. 이젠 분석하거나 따지지 않고 그냥 믿어.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거지. 그러니까 이상하게 마음에 평안이 오는 것 같아. 내가 살아온 이 세상이 끝이 아닌 것 같아.”
  
  그는 하룻밤 내 숙소에서 묵고 새벽에 기차를 타고 떠났다. 틀을 벗어난 그 인생도 또 다른 성공 아닐까.
  
[ 2022-06-15, 10: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