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를 보면 행복해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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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보라카이 바닷가를 산책할 때였다. 흰 물결이 밀려오는 모래사장에 원주민인 듯한 가난해 보이는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행복합니까?”
  그 청년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만 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다음날 관광 가이드를 하는 한국 여성을 만났다. 전문대 관광학과를 나오고 일한 지 일년이 됐다고 했다. 그녀는 안내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일억 원을 모아 여행을 다니는 게 꿈이에요.”
  그녀에게는 일억원이라는 행복의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 나이 무렵 나는 얼마의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했을까. 대학 시절 친구가 사는 열 일곱 평 아파트를 가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었다. 온수가 나오고 수세식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파트에서 살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막연한 희망사항이지 그렇지 않더라도 불만은 없었다. 동대문 밖 낙산 아래의 우리 동네는 주변이 온통 판자집투성이였다. 그런 속에서 우리 집은 기울어져 가는 낡은 일본식 목조 가옥이었다. 판자집에 사는 동네 친구들은 우리 집을 궁궐이라고 추켜 세우면서 자주 내 방에 와서 잤다. 돈이 궁한 어머니가 방들을 세를 놔서 내가 차지했던 면적은 다다미 세 장 정도였지만 판자집 아이들을 보면 나는 불만이 없어졌다.
  
  결혼 무렵 우리 집과 삼촌 집에 인사를 하러 왔었던 아내는 세월이 오래 흐른 후에야 그 때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당신이 녹슨 철문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는데 왜 뒷문으로 가게 하나 하고 이상했어. 마당도 보이지 않고 그래서 뒷채 구석 창고 옆쯤 되나 생각했어. 우리 집은 마당도 넓고 나무도 있고 연못도 있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시어머니 될 분이 내게 밥을 주는데 반들반들하게 닦은 양철 소반에 음식을 담아 내오시는 거야. 양철 소반이 신기했어. 처음 봤거든.”
  
  어머니가 하도 닦아 꽃무늬가 지워진 양철 소반이었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어떤 밥상에서 먹든 밥은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아내는 마당이 없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아버지는 거기에 나팔꽃도 심고 수세미도 심었다. 다만 넓이가 탁자 하나 정도로 좁았지만. 아내는 당시 느낌 감정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빈민촌에 있는 당신 작은아버지 집에 인사 갔을 때 정말 놀랐어. 창고 같은 브로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공중화장실 앞에 수십 명이 줄을 서 있는 거야. 기절할 뻔했지. 그래도 노점상을 하고 돌아온 당신 작은어머니가 내가 왔다고 일부러 비싼 고기를 사와서 요리해주는 걸 보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 내가 일부러 인사하러 간 걸 아주 좋아하시는 표정이었어.”
  
  나는 아내에게 우리 집안이 어떤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데려갔었다. 나중에 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남들이 보기에 우리 집안은 가난했구나 하고 어렴풋이 알아챘다.
  
  나는 하나님이 가난의 고통을 감지하는 신경줄을 아예 끊어놓은 것에 대해 감사한다. 둔한 사람에게 그건 고통이 아니다. 백은 흑과의 대비를 통해서 더욱 희듯이 가난은 내게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극대화해준 면이 있다.
  
  법무장교로 전방에 근무하러 갔었다. 관사가 배정되고 운전병이 딸린 군용지프차가 나왔다. 온수가 담긴 욕조에 처음 몸을 담았을 때 행복감이 넘쳐 흘렀다. 목욕탕이 없는 집에서 자랐다. 명절 때나 공동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었다. 군용관사에는 수세식 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재래식 똥통을 쓰던 나는 행복했다. 자가용을 가진 집 아이들이 부러웠다. 국가가 내게 운전병이 모는 지프차를 준 것이다. 나는 행복했다. 남들은 최전방에 배치된 걸 불행이라고 여겨도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제대 후 변호사를 하면서 내가 번 돈으로 아파트도 소유하게 되고 차도 샀다.
  
  위를 보는 사람들은 항상 침울하고 불행한 것 같은데 항상 바닥을 구경하고 다니는 나는 상대적으로 행복했다. 감옥에 있는 재소자들의 소망은 나를 행복하게 하기도 했다. 어떤 재소자가 이런 말을 했다.
  
  “철창 밖으로 가을비가 내렸어요. 먼지 낀 잡초가 나 있는 교도소 담장 아래라도 비를 맞으면서 걷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럴 수 없는 게 이 감옥살이죠.”
  
  그 말을 듣고 난 후 강물이 찰랑이는 아름다운 강가를 산책하면서 나는 내가 가진 자유에 대해 감사하고 행복했다. 또 어떤 징역살이를 하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허름한 식당에 가서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에요. 이십 년 동안 여기서 주는 스팀에 찐 밥과 멀건 된장국만 먹었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먹는 모든 음식들에 감사했다. 사람들은 돈이 얼마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금액이 충족되면 행복해질까?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만족하면서 감사했다. 그것도 행복의 길 아닐까.
  
[ 2022-12-01, 22: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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