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父子) 엿장사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이마에 띠를 매고 한복을 입은 남자가 북을 둘러멘 채 사람들의 발길에 닳은 오래된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축 처진 어깨의 뒷모습이 삶에 지친 듯한 느낌이다. 그는 술을 파는 야간업소에 출연해서 창을 하는 삼류 소리꾼이었다. 나비 넥타이를 한 업소 지배인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프로그램이 개편돼서 박씨가 하던 무대가 없어졌어요.”
  
  말을 듣는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는 봉투 한 장을 받아들고 힘없이 집으로 향한다. 그는 엿장사였다. 밤에는 엿을 만들고 낮이면 골목길이나 시장에서 무쇠 가위로 장단을 맞추며 소리를 하며 엿을 팔았었다. 그는 다시 자유로운 엿장사로 돌아갔다. 그의 소리 재능을 이어받았는지 아들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아들은 회사생활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들은 사표를 내고 아내에게 아버지와 같이 엿장사를 하겠다고 했다. 아내와 어머니는 대학 성악과까지 나온 사람이 장터에서 소리를 하면서 엿을 판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결심을 얘기한다. 아버지의 표정이 착잡하다.
  
  “네 결심이 그렇다면 한번 해 봐라.”
  
  아버지는 벽에 걸려있던 손때 묻은 북과 무쇠 가위를 내려 아들에게 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엿을 만드는 장면이 보였다. 단단한 반죽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늘이고 그걸 접어서 다시 늘이고 하는 작업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치 짜장면집에서 밀가루 반죽으로 길다란 면발을 만드는 과정과 흡사했다. 길다란 엿가락을 가위로 일정하게 자르고 거기에 깨를 묻혀 작은 상자들에 넣기도 했다. 가족 경영의 엿 공장이었다. 리어커 위에 엿이 수북이 담긴 엿판이 놓여지고 북을 멘 아들과 무쇠 가위를 든 아버지가 장돌뱅이 한복 차림으로 시장을 향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시장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신명나게 한판 노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 부자의 용기에 마음으로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본 다큐멘터리의 프로그램이었다. 일흔여덟 살의 실존하는 엿장사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얘기였다.
  
  내 세대만 하더라도 관료사상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하면 봉건시대 과거에 급제한 것으로 취급했다. 그런 생각들이 전문직이나 대기업에 들어가야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런 고정관념이 조금씩 풍화되는 모습이다.
  
  대기업 회사원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삼십대에 회사를 그만두고 뒷골목에 작은 국수가게를 차렸다. 그는 삼십 년 동안 한 자리에서 규모도 늘리지 않고 칼국수만을 만들어왔다. 단골손님이 늘어나고 그 가게는 맛집으로 인정받았다. 요즈음은 그의 아들이 새벽에 주방에 들어가 은은한 불에 오랫동안 사골국물을 우려내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대 칼국수 가게가 탄생했다.
  
  근엄한 재판장이던 분이 있다. 천재로 소문난 그의 재판을 여러 번 받았었다. 그가 법관직을 그만둔 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굳이 나의 손을 잡고 한 빌딩의 귀퉁이에 있는 작은 파스타 집으로 데리고 갔다. 젊은 주방장이 내가 있는 테이블로 나와 인사를 했다. 재판장을 했던 법조 선배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자신의 아들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음식점을 자주 이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법률사무소 근처에 작은 가게가 있다. 찐 계란도 팔고 김밥도 판다. 가게의 젊은 주인이 없을 때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물건을 팔고 있다. 아들을 대신해서 팔고 있는 것 같았다. 찐계란을 파는 노인은 유명한 법조 선배였다. 판사도 하고 국회의원도 했었다.
  
  허영심에 무리해서 아들을 미국의 로스쿨로 유학시킨 집이 많다. 언어가 무기인 변호사 사회에서 그들이 미국에 뿌리내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와도 법정에 설 수 없다. 그렇다고 법률문서를 만들 능력도 경험도 얻기 어렵다. 많은 젊은이들이 어두운 방에 들어박혀 백수로 인생을 허비한다.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그릇의 크기와 재능이 다르다. 모두 일등급이 되고 명문대를 나와 전문직이나 대기업 사원이 될 수 없다. 자식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다면 일찍부터 자식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설정해 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 2023-01-18, 10: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