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共이 망하기 전엔 다신 거기 안 간다는 스위스인
여행 중 만난 사람들139 – 스위스의 핵전쟁 대피소

bestkorea(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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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ersion is below.)


알고 보니 이 양반은 스위스 출신으로 중년(中年)까지 루체른에서 살다가 직장을 따라 오스트리아로 옮겼다은퇴 후에도 계속 오스트리아 크렘스에 살고 있었다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대국(觀光大國)인데 그런 곳에서 태어나고 살았으니 당신은 행운아 아니냐고 했더니그는 긍정 반 부정 반 고개를 끄덕였다이는 마치 시골 사람이 서울 사람에게 당신은 123층의 롯데타워 등 볼거리가 많은 곳에 사니 복도 많다고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표정과 비슷암튼그게 무슨 의미냐고 했더니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는 추위에 약한 체질(體質)이라서 일 년에 약 절반 정도는 불편하단다문제는 자기 아내라고자기와 정반대의 체질이라 더위는 질색(窒塞)이란다더 묻지는 않았지만이들 부부의 신뢰와 사랑은 대단해 보였다그 이면(裏面)에는 그들의 합리적 사고(思考)라고 할까독립된 개인 영역의 범위를 상호 존중하는 기본이 잘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가 내게 말했다자기는 우리 부부(夫婦)를 처음 볼 때 중국인으로 생각했다고흔히 있는 일이다우리도 얼굴만으론 서구인의 국적(國籍)을 구분 못 하니까그가 나에게 중국에 대한 생각을 묻기에 난 한 마디로 모든 공산주의자는 싫다특히 중공러시아북한은 더 싫다고 했다이 양반은 의외라는 듯 내게 그 이유를 물었다난 한마디로 인류 역사상 사람을 가장 많이 굶겨 죽이고 때려죽이고 학살(虐殺)하고 탄압(彈壓)한 자들이 모두 공산주의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이 양반 표정을 보니 확신을 못 하는 것 같아서 난 바로 내 스마트폰으로 ‘the Blackbook of Communism’을 검색해 영문자료(英文資料)를 보여주었다(한글 자료도 있지만그들에겐 무의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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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이 6500만 명을소련이 2000만 명을북한이 200만 명을캄보디아가 200만 명을에티오피아아프칸동유럽베트남남미 등 순으로 학살당한 사람들의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그는 이 자료를 본 뒤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중국을 가보았느냐고 물었다그렇다고 하니 그는 곧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자기는 친구와 함께 2008년 북경 올림픽 때 그곳에 갔는데 감시(監視)와 통제(統制)가 너무 심해서 다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그의 얘길 들어 보니 내가 경험한 것과 비슷했다당시엔 스마트폰이 없던 때니까 이메일 체크 등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소위 말하는 PC(왕빠網巴)에 가야만 했다문제는 그들이 내 여권(旅券)을 요구하고 인적(人的사항을 노트에 다 기록하고 사용 목적을 묻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과 불이익을 줬다자유가 몸에 밴 사람에겐 견디기 어려운 순간들이었다나는 그 이후론 중국에 발을 끊었다고 했더니이 양반은 한술 더 떠 아예 중국 공산당이 사라질 때까진 절대로 안 간단다직접 경험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와의 명확한 차이는 이럴 때 나타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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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에게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꼭 봐는 할 곳이 있다면 어디를 추천하겠느냐고 물었다그는 답 대신 나에게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되물었다내가 가보았던 곳을 하나하나 말했더니 그는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정도면 더 이상 안 가도 된단다그렇게 비싼 나라에 가느니 이곳 태국이 훨씬 좋단다참 솔직 담백한 친구였다내가 그에게 말했던 곳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짤즈부르크인스부르크크렘스멜크그라즈 등이었다스위스는 바젤제네바마터호른루체른베른인터라켄그린델발트융프라우 등이었다그는 내가 만약 멜크를 안 가봤다면 그곳과 루체른을 추천하려고 했단다멜크를 가봤다는 건 멜크 수도원을 가 봤다는 거고루체른을 가봤다는 건 빈사(瀕死)의 사자상(獅子像)’을 봤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란다관점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공감했다.


정말 스위스인 당사자에게 재확인하고 싶은 건 바로 이것이었다핵전쟁 대피소내가 인터라켄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을 때다(1996). 숙소 주인에게 핵 대피소가 진짜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다며 그 대피소가 있는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켜준 적이 있다이번에 만난 그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그 역시 당연히 있다며자기가 살던 집에는 8인용 대피소가 있었단다필수 준비물은 환풍기식수용변기식품비상약건전지 라디오 등이라고 했다대피소 벙커문 두께는 자기 팔을 뻗쳐 보이며 그 정도라고 했다자기 가족은 4인이었지만 8인용으로 한 건 어떤 규정에 해당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란다그래서인지 오늘날에는 전 국민을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여서 지역에 따라선 핵전쟁 대피소 시설이 법적 의무사항에서 해제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계속>

 

감사합니다. (나라가 망하면 모든 걸 다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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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met on my backpacking139 – Swiss and nuclear war shel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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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born in Switzerland and lived in Lucerne until his middle age before moving to Austria. He kept on living in Krems Austria, after his retirement. I told him he was lucky to be born in Switzerland and lived in Austria. Cause the two countries were world-famous tourist powers. He seemed reluctant to accept it. He meant that he didn't like both countries because of the cold weathe in winter. About half a year was hard for him but not for his wife. His wife on the contrary enjoyed the cold weather. I didn't ask him more but the couple's trust and love seemed great. I thought that they respect each other for the scope of the independent personal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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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thought we were Chinese when he first saw us. It happens. We too can't tell the difference just by looking at the faces of Westerners. When he asked me what I thought of China, I said deffinetely that I hated all communists but especially CCP, USSR, and N. K. He unexpectedly asked me why. In short, I told him that it's because all the communists who starved people to death, killed, slaughtered and suppressed people the most in human history. Judging from his face, he didn't seem sure, so I immediately searched 'the Blackbook of Communism' on my smartphone and showed him English data (although there were Korean data, it's meaningless for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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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rding to the data, the Chinese Communists killed 65 million people. The number of people who were massacred was listed in the order of the Soviet Union (20 million), N. K. (2 million), Cambodia (2 million), Ethiopia, Afghanistan, Eastern Europe, Vietnam, and S. America. After seeing this data, he asked me with a serious look if I had been to China. When I said yes, he soon told me his experience. He went to the 2008 Beijing Olympics with his friend. At that time, he said that he was disgusted by the Chinese police because they were so badly monitored and controlled. His experience was similar to mine. There was no smartphone at the time. I had to go to the so-called Internet Cape to use the Internet, such as e-mail checking. The problem was that they asked for my passport and recorded all my personal infor in their notes. Furthermore, they asked me why I used the Internet. They made me feel sick and tired of them. Their treatment was unbearable for a man of freedom. I said I've stopped going to China after that. He said something worse than me. He said he would never go to China until the CCP disappeared. As such, it can be seen that the attitude of those who have experienced the communists in person was clearly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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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ed him to recommend me the most famous places in Switzerland and Austria. He asked me what I saw in Switzerland and Austria. When told him where I've been to one by one and then he nodded to me, saying that you don't have to go to Switzerland and Austria anymore. He meant that it's much better for me to stay in Thailand than there such an expensive countries. He was such an honest man. Where I told him was Vienna, Austria, Salzburg, Innsbruck, Krems, Melk and Graz. Switzerland included Basel, Geneva, Matterhorn, Lucerne, Bern, Interlaken, Grindelwald and Jungfrau. He said it was good enough for me cause I saw the Melk Abbey and The dying lion of Lucerne. There was a difference in perspective, but I agr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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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this that I really wanted to reconfirm with the Swiss. It's a nuclear war shelter. When I stayed at Interlaken guest house (1996), I asked the owner of the G.H if there was a nuclear shelter. He said yes and pointed his finger to the place where the shelter was. I asked him the same question I met this time. He gave the same answer. There was an eight-person shelter in his house. Essential supplies included ventilators, drinking water, toilet bowls, food, emergency medicine, and battery radios. He said the thickness of the bunker door at the shelter was about as thick as his arm was stretched out. That's why I thought they didn't have to worry about it to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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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If ROK goes down, we lose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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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1, 21: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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