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신학림은 '南海 어머니'의 애절함을 아는가?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문무대왕(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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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柚子) 꽃피고 향기가 향긋한 따뜻한 남도(南道)의 섬이 '남해(南海)'다. 남해에는 바닷바람을 타고 시금치와 마늘이 자라고 유자도 익어가는 따뜻한 고장이다. 바다에서는 멸치도 많이 잡힌다. 죽방멸치가 명품이다. 다랑이논도 있다. 남해 행정구역은 1읍(邑) 9면(面)이다.
  
  '남해라는 지명은 신라 때부터 전해오고 있다. 동쪽은 통영시, 서쪽은 한려수도를 사이에 두고 전남 광양시·여수시,북쪽은 사천·하동군과 접해 있다. 남해에는 이성계의 조선건국과 관련 있는 보광산(현재는 錦山)과 상주해수욕장도 있다. 보광산에는 보리암과 망운사 같은 사찰도 있다. 망운사에는 선화(禪畵)의 대가 '성각' 스님도 있다.
  
  남해 관음포에는 성웅 이순신 장군 순국 유허지인 李落祀도 있다. 조선시대 절개(節槪)를 지키다가 유배(流配)당한 선비들이 적소(謫所)에서 남긴 문학작품을 기리는 '유배문학관'도 있다.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이 절해고도(絶海孤島) '노도'에서 꿈과 좌절의 세월을 작품으로 남긴 곳이 남해다. 남해에 유배당한 선비들 가운데는 '양제역 벽서사건'에 연루됐다는 모함을 받고 18년간 남해 적소(謫所)에서 생활한 '사간원 대사간'을 지낸 청도 김씨 병산(缾山) 김난상(金鸞祥) 선생도 있다.
  
  남해는 유배당한 선비들이 돌아가기도 했지만 그대로 눌러앉기도 했다. 그래서 남해사람들은 조상 자랑을 하면서 남해에 들어온 지 몇년이나 되는가를 자랑하는 말로 "입남(入南) 몇년째인가"를 따지기도 한다.
  
  남해에는 파독(派獨) 간호사와 광원(鑛員)들이 세운 향수(鄕愁)의 상징 '독일마을'도 있다. TV의 인기프로그램 '같이 삽시다'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해는 자랑할 것도 많고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근대에 들어와선 5선 국회의원 최치환, 국회의장 박희태도 있고 서울특별시장 양택식을 비롯, 박홍수·하영재·김두관·박성중 등 국회의원, 국정원장을 지낸 김성호, 최평욱 보안사령관 등 고위 관료들괴 문화 예술가들도 많다. 한강 이남 私學의 명문 부산 동아대 설립자 정재환 총장, 박정삼 백송그룹 회장, 빈대인 부산은행 회장도 남해 출신이다.
  
  그런데 최근 돌출 인간들이 나타나 남해 사람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다며 남해 사람들이 야단이다. D 대학교수 K 박사(경제학 전공)가 밤늦게 전화로 울분을 전해왔다. "남해 사람들 망신은 윤미향과 신학림이가 다 시키고 있다. 창피해서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하겠다"고 했다. 최근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정치적 사건의 주인공이 된 국회의원 윤미향과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출신 신학림이 남해 출신이란 사실에 대해 '남해 사람들'은 부끄러워하고 있다. 이들이 남해 사람들의 자긍심을 짓밟았다며 흥분하고 있다.
  
  남해 출신 시인이자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이며 문화 에디터인 고두현은 시(詩) '늦게 배달된 소포'를 통해 남해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봉지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 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끈 찬찬히 풀다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남해의 어머니는 소포 속에 비뚤비뚤 철자법은 맞지 않지만 그래도 정성들여 쓴 손편지도 함께 보냈다.
  
  <큰집 뒤따메(큰집 뒤땅에) 올 유자가 잘댔다고 몇 개 따서 너어(넣어) 보내니 춥을(추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고생 많았지). 봄벼치(봄볕) 풀리믄(풀리면) 또 조흔(좋은) 일도 안 있것나. 사람이 다(사람이 모두)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반드시) 몸만 성키(성하게) 추스리라(추슬러라)">
  
  ( )는 필자가 첨가. 詩는 계속 이어진다.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이렇게 자상하고 다정한 남해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과 남해 사랑을 그 누가 짓밟는가? 윤미향과 신학림에게 묻는다. 남해 사람들의 유자향 같은 그 순후한 자존심을 무참히도 짓밟은 파렴치한 행각에 대해 부끄러움을 진정 느끼는가?
[ 2023-09-10, 16: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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