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프랑스인의 당당함에 경의를
여행 중 만난 사람들188 – 드골은 '굿맨' 마크롱은 '노굿'

bestkorea(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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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행 중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특별한 경우도 더러 있다. 오늘도 그런 경우이다. 이곳 파타야의 특징 중 하나는 해변은 물론이고 큰 쇼핑몰의 푸드코트에는 항상 세계 여행자들로 붐빈다는 것. 거의 90% 이상은 서양 백인들이다. 항상 궁금한 것이지만 그 많은 한국인은 다들 어디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노는지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오직 태국에 입국할 때와 출국할 때의 공항에서만 볼 뿐이다.
  
  오늘도 해변에 나갔다. 매우 보기 드문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네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내 눈에 확 띄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초고령으로 보이는 백인이고 또 한 사람은 60대로 보이는 흑인이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그들은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나는 노크를 했고 그들은 문을 열어주었다.
  
  간단한 불어로 인사말을 한 뒤 영어로 내 소개를 자세히 했다. 서울에 살며 젊을 때부터 세계 배낭여행을 했고, 겨울에는 아내와 함께 주로 이곳 파타야에서 보낸다고. 그런데 내 말에 가장 큰 반응을 보인 이는 가장 고령으로 보이는 그분뿐이었다. 알고 보니 그가 영어를 가장 잘했다. 정말 신기했다. 나는 계속 내 소개를 했다. 1983년 한 달간 프랑스 여행을 할 때, 파리는 물론 아미앵, 딸몽, 코냑, 아비뇽, 리용, 낭트, 보르도 등을 봤다고. 아미앵에서는 1000년 된 목조 건물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잤다는 얘기도 했다. 그들조차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분들은 다 내가 언급한 지역에 속했다. 친밀감은 더 빨리 전달됐다. 초고령자는 보르도에, 흑인은 리용에, 또 다른 두 백인은 아비뇽과 낭트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서양인들이 해변이나 푸드코트에서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해서 한 가족이거나 한 동네 혹은 가까운 친구들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마치 오랜 친구들처럼 잘 어울린다. 한국인들과 많이 다른 점이다. 국적이 다른 경우도 많다. 그럴 땐 다들 자연스럽게 영어로 소통한다.
  
  예상했던 대로 초고령으로 보였던 분은 89세였다. 귀도 밝았고 시력도 좋고 발음도 또렷했다. 그 나이로 볼 때 프랑스인으로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물었다. 역시 의외의 답이었다. 자기는 어릴 때부터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했다고. 특히 영어가 재미있었단다. 내가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1983) 안내소에서조차도 불어(佛語)만 했다고 하니 그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며 프랑스인들은 너무 속이 좁고 근시안(近視眼)적이라고 했다. 언 듯 보면 그분은 자기 나라 프랑스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듯했다.
  
  정반대였다. 이분은 프랑스 해병대 출신이었다. 그것도 해병대 공수부대였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해병대의 자긍심은 대단했다. 그의 군 생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나머지 양반들도 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1960년 알제리에 파병됐다. 당시 알제리는 프랑스 식민지였고 독립운동이 8년 동안 치열했던 때였다. 드골 대통령이 재집권(1959)한 뒤 이전처럼 격렬한 전투나 탄압은 자제됐고 1962년 드디어 알제리인들은 독립했다. 그에게 물었다. 드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는 반복적으로 굿맨이라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에 관해서 물었더니 그는 물론 다들 고개를 저으며 노굿이라고 했다. 3년 지나면 그는 사라진단다. 그는 젊고 똑똑한 지도자로 알고 있다고 하니 그 역시 마크롱이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정책은 싫어했다.
  
  그의 여행 경력도 화려했다. 대부분 유럽인이 여행을 많이 하지만 그에겐 좀 특이한 면이 있었다. 그가 여행한 국가들이 그랬다. 가령, 수단, 세네갈, 토고, 부르키나파소, 모로코, 카메룬, 콩고, 튀니지, 마다가스카르, 시리아, 알제리, 인도의 뽕디체리 그리고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이었다. 나도 대부분 가 본 나라들이었다. 암튼, 그가 말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프랑스 식민지였다는 것. 나는 그 역시 영국, 일본, 독일, 이태리, 스페인, 포루투갈처럼 식민제국(植民諸國) 시대의 후손들처럼 당당함을 보았다.
  
  1994년 인도 여행 시 5일 동안 일본인 네 명과 함께 여행한 적이 있다. 숙식을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자의 배낭 속 지참물들도 보게 되는데, 내 눈에 크게 띄었던 것은 당시 배낭여행자의 바이블이었던 ‘세계를 간다’가 아니라, 일본이 식민지배를 했던 나라들을 지도와 함께 잘 정리해 둔 일본판 근대 역사서였다. 그들은 그 역사서에서 밝힌 일본이 지배했던 나라들을 답습(踏襲)하는 것이었다. 물론 인도(印度)에도 일본인들이 남긴, 특히 안다만에는 엄청난 규모의 군사시설과 건축물들이 있었다. 그들의 막강한 힘의 징표(徵表)였다.
  
  이는 프랑스가 지배했던 나라에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모로코, 튀니지아, 시리아, 인도의 뽕디체리 등 내가 직접 확인한 곳들이지만 그곳에는 마치 아직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할 정도로 프랑스의 언어와 건축물 등이 빼곡했다. 어쨌든 오늘 만난 89세의 당당한 프랑스인처럼 수많은 프랑스인이 그들이 지배했던 식민지를 자유롭게 여행했다. 그들에겐 흔히 우리가 말하는 식민지배자는 나쁘다는 인식은 없었다는 것이 내가 느낀 점이다. 그렇다. 만약 그곳에 한국인 조상들이 한국식 문명을 심어 놓았다면 나는 어땠을까. 물론 자랑스러울 것이다. 힘의 논리를 인정하니까. 그것은 지금도 우크라이나, 대만, 가자 지구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힘의 논리, 약육강식의 자연법은 예나 지금이나 아니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식민지를 거느린 식민제국을 원하는가 혹은 식민지배를 받는 노예국가가 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즉시 전자(前者)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실제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한국은 외침(外侵)을 많이 받았다거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누워서 침 뱉는 꼴이라서, 내가 말하는 진짜 한국인의 자존심이 허용치 않아서!!
  
  감사합니다.
[ 2024-02-16, 14: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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