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들의 밤 10시간 30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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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령, 총장 공관으로
  
  12월12일 오후 6시 직전 경복궁 부근에 있는 수경사 30경비단장실에는 수도군단장 차규헌 중장, 국방부 군수 차관보 유학성 중장, 제○공수여단장 최세창 준장, 제○공수여단장 장기오 준장, 수경사 제○○경비단장 김○○ 대령 등이 와 있었다. 수경사 30경비단장인 장세동 대령이 그들을 맞았다. 제1군단장 황영시 중장과 제9사단장 노태우 소장도 곧 도착했다. 이어서 박희도 제○공수여단장과 제20사단장 박준병 소장이 도착했다. 보안 사령관은 보이지 않았다. 보안 사령관의 행방을 묻는 사람들에게, 장세동 대령은 『사령관은 대통령이 불러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갔다』고 말했다.
  
  유학성 의원은 『정총장이 계엄사령관의 막중한 직책을 갖고 있으므로 보고하면서 연행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즉, 보고와 연행지시를 거의 동시에 내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보고란 단순한 알림이 아니라 연행재가서를 뜻하는 것이다. 오후 6시 조금 전에 전두환 소장은 허삼수, 우경윤 대령에게 정총장의 연행을 지시했다. 두 대령은 총장공관으로 갈 때 합수본부에 배속된 ○○헌병대 1개 소대와 10여명의 보안사 수사관, 그리고 세 명의 헌병장교들을 데리고 갔다.
  
  육군본부 헌병감실 기획과장 성환옥(成煥玉) 대령(현 청와대 경호실차장), ○○헌병대장 崔○○ 중령(현재 준장), 육군참모총장 공관 경비를 책임진 육군본부 본부 사령 소속 헌병대 이종민(李鍾敏) 중령(대령 예편) 등 3명이 그들이 었다. 수경사 ○○헌병대는 원래 대통령 경호실에 배속되어 있었으나 10·26 뒤 궁정동 시해현장을 조사할 때부터 합동수사본부장의 관할로 옮겼었다. 이 세 헌병 장교는 허, 우 대령에게 포섭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종민 중령을 데리고 간 것은, 그의 직속 부하들이 총장공관의 경비를 맡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총장공관 외곽의 경계병력과는 사전 제휴가 없었다. 총장공관 외곽의 경계병력은 해병대였다.
  
  허삼수 대령은 출발하기 직전 총장공관에 전화를 걸어 총장 수행부관 이재천(李在千) 소령과 통화했다. 허대령은 총장에게 보고사항이 있어 찾아 가겠다고 했다. 이때 허 대령은 자신을 보안사 정보처장이라고 소개했었다. 그 때 정보처장은 권정달(權正達) 대령(현 민정당의원)이었다. 보안사 인사처장인 허대령으로서는 육군 참모총장을 면담하는 데 정보처장이라고 위장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승용차 두 대에 허, 우 대령과 헌병장교들이 타고 헌병 1개 소대는 마이크로 버스에 타고 뒤따랐다. 승용차는 6시50분께 총장공관에 도착했다. 성환옥 대령과 최○○·이종민 두 중령은 정문 앞에서 내렸다.
  
  이들은 수사관들과 헌병 병력을 지휘하여 재빨리 공관 내 경비병력을 무장해제시켰던 것 같다. 공관 구내 안으로 들어온 병력은 공관건물을 향해 엎드려 쏴 자세를 취한 채, 공관건물 안으로 들어간 두 대령과 수사관들을 엄호했다. 공관 정문 앞에는 총장의 검은색 레코드 로얄 승용차가 대기중이었다. 허, 우 두 대령은 정총장의 수행부관 이소령의 안내로 공관 1층 응접실로 들어갔다.
  
  『총장님, 녹음실로 갑시다』
  
  정총장은 오후 6시쯤 공관으로 퇴근하였다. 그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처남 신대령이 진급하게 된 것을 직접 장모에게 알리기 위해 서울 영동에 있는 처가로 가려고 옷을 갈아입었다. 방을 막 나서는데 텔리비전에서 저녁 7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텔리비전 앞에 다시 앉아 약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아래층 현관에서 수행부관 이재천 소령이 인터폰으로 합동수사본부의 정보처장과 국방부 합동조사대장이 급히 보고 드릴 일이 있다고 찾아왔다고 알려왔다. 정총장은 곧 뉴스 보던 것을 중지하고 외출복 차림 그대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부관이 안내하는 대로 1층 홀에 들어서니 얼굴은 잘 알지 못하지만 보안사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복한 한 장교 (許三守 대령)와 국방부 합동조사대장인 듯한 장교 (실제는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禹慶允 대령)가 거수경례를 하여 보고차 왔다고 인사하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정총장 오른쪽 옆자리에 앉았다. 우대령이 웃으면서『총장님 이번에 저도 진급시켜 주시는 줄 알았더니 안 시켜 주셔서 좀 서운합니다』라고 말을 꺼내더라고 정승화씨는 기억한다. 정총장도 웃으면서 『그렇던가, 진급정원이 제한돼 있어 자격있는 사람들을 다 시키지 못해 나도 진급 발표할 때마다 서운해』하고 말했다고 한다. 허대령이 『총장님께서 김재규로부터 돈을 많이 받으셨더군요. 그래서 총장님의 진술을 좀 받아야 할 일이 생겼읍니다. 협조하여 주셔야겠읍니다』하고 말했다. 정총장은 하도 어이가 없어 『누가 그 따위, 소리를 하던가』하며 화를 냈다고 한다. 정총장은 순간적으로 김재규가 재판의 최종 단계에서 살아 보겠다고 물고 들어가느라 무슨 헛소리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총장이 재차 『김재규가 그렇게 주장해』하며 다 그치니까 『글쎄, 저는 잘 모르겠으나 상부로부터 총장님의 진술을 녹음하여 오라는 지시를 받고 왔읍니다』라고 둘 중 누군가가 말했다. 『녹음기를 가져 왔어?』하고 물으니『녹음 준비가 되어 있는 곳까지 가셔야겠읍니다』라 고 했다.
  
  M16 쏘면서 들이닥치다
  
  정총장은 김재규의 허위주장을 믿고 전두환 소장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은밀히 보고하여 자신을 조사하도록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정총장은 『이놈들, 누가 그 따위 지시를 하던가? 내가 계엄사령관인데 대통령 이외에 그런 지시를 할 사람이 없는데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해?』하고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만약 그렇다면 대통령이 직접 전화라도 있을 텐데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그러한 조사에 응할 수 없어』하며 부관을 불러 말했다. 『대통령각하나 장관에게 전화 대!』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대통령이 자신을 오해하고 조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짐작했다.
  
  이재천 소령이 현관 쪽의 부관실로 들어가는 순간 총성이 서너발 났다고 한다. 총성과 동시에 두 대령이 정총장의 양팔을 끼고는 응접실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사격 중지!』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 순간 M16을 들고 청와대 경호실 복장을 한 40대 장년 한 사람이 총을 쏘면서 홀의 대형 유리창을 깨뜨리고 실내로 뛰어들었다. 그는 정총장에게 총을 겨누며 가까이 오더니 개머리판으로 후려 갈기면서 『빨리 따라갈 것이지, 무엇을 꾸물대느냐』고 고함을 쳤다는 것이다.
  
  부관과 그밖의 공관 근무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정승화씨는 말한다. 당번병인 김병장만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쪽 구석에서 떨면서 서 있었다. 정총장은 하는 수 없이 『그러면 가자』하고 따라나섰다. 양쪽 팔이 두 사나이에 의해 붙잡히고 또 한 사나이가 총구로 미는 대로 현관을 나섰다. 어느새 총장 차를 밀어내고 까만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뒷 좌석에 두 사나이가 양쪽에서 그를 낀 채로 타고 (허대령은 동승, 우대령은 뒤에 남음) 운전수 옆자리에도 한 사람이 탔다. 차는 공관문을 빠져나갔다. 정총장은 차에 밀려 탈 때 주위를 돌아보았다고 한다. 낯모르는 사나이들이 총을 든 채 서성대었고 공관에 근무하는 경비병이나 부관 등은 한사람도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공관입구에 있던 입초병도 보이지 않았다. 차가 총장 공관을 나와 바로 곁에 있는 국방부장관 공관 앞을 통과할 때 보초를 서고 있던 해병 헌병이 차를 세웠으나, 차안에 탄 사나이들이 『육군참모총장이다!』 고 소리치니까 가라는 손짓을 했다. 정총장은 차안에서 차 밖을 내다보았으나 어디로 향하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멀리는 가지 않은 것으로 여겨질 때 무장 입초병이 서 있는 대문 앞에 차가 섰다. 누군가가 잠시 확인하더니 문이 열렸다. 차가 안으로 들어서더니 그다지 크지 않은 2층 건물 앞에 섰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양쪽에서 팔을 잡힌 채 2층의 어느 방으로 끌려갔다 고 기자에게 회상했다.
  
  부인이 육군 수뇌에게 전화
  
  그의 아내 신유경(申有慶)여사는 정총장이 끌려간 뒤의 일을 월간조선 1987년 9월호 인터뷰기사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 제가 뛰어내려 갔지요. 저 분은 끌려간 뒤였어요. 현관 옆에 있는 부관실로 들어가 보았더니 책상 앞에 있던 전화기가 떨어져 덜렁덜렁 매달려 있읍디다, 바닥은 피바다였어요. 총장 경호대장인 김인선 대위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부관 이소령은 보이지 않았어요. 이소령이 총리 공관으로 전화를 걸려고 할 때 누가 권총 사격을 한 것이었습니다. 뒤에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이소령은 간을 총알이 약간 스치기만 했답니다.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숨었기에 제가 갔을 땐 못 본 것이지요. 김대위는 척추와 눈 근방에 서너발을 맞았읍니다. 두 사람 모두 그 뒤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져서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읍니다. 착한 장교들이라 하느님이 도운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모두 현역으로 근무중입니다.
  
  저는 부관을 찾으러 주방까지 가보았는데 없어요. 그 때 2층에 있는 아들 생각이 나서 죽어도 그 아이와 같이 있어야겠다고 계단을 올라가는 데 총소리가 또 났어요, 저를 향해 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허겁지겁 올라갔지요. 2층에서 떨고 있다가 조용해진 것 같아 1층으로 내려가 보니까 아주 덩치 큰 사나이가 현관 쪽으로 열십자로 뻗어 있더군요』「열 십자로 뻗어 있던 아주 덩치 큰 사나이」는 정총장을 연행하러 왔던 우경윤 대령이었다. 12·12사건에 대한 국방부 발표문과 노태우 민정당 총재의 공개적 발언에 따르면 우경윤 대령은 총장공관 경비대의 선제 총격으로 다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총장을 모시러 간 사람을 총장공관 경비대가 총격을 가해 쓰러뜨렸어요, 그것이 발단이 된 겁니다. 지금, 그 총상을 입은 당사자는 하반신을 못 쓰고 있어요』(1985년 4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한 말).
  
  다른 여권자료에 의하면 정총장은 두 대령이 강제연행하려 하자 『헌병!』이라고 외쳤고, 이때 경비대원들이 나타나 우대령을 떼어놓으며 권총을 쏴 하복부를 맞았다는 것이다. 허삼수 대령은 권총을 뽑아 정총장을 위협하여 승용차에 강제로 태웠고 정문을 막는 경비대원들에게 정총장으로 하여금 문을 열도록 명령하게 하여 바깥으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승화씨는 『나는 헌병을 부른 적이 없어요. 우대령이 총을 맞았다면 내가 끌려간 뒤일 것입니다. 우리 비병들은 그 전에 이미 무장이 해제돼 있었으니 합수본부의 수사관들끼리 오인사격을 하여 다친 것이 아닐까요? 내가 위협을 받아 정문을 열게 한 적도 없어요. 최대통령이 재가 한 줄로 알고 순순히 연행에 응했읍니다』고 말했다.
  
  신여사는 외부와 연락을 취하려고 전화를 돌렸으나 모두 선이 절단되어 불통이었다. 다만 비상전화 한 대가 살아 있었다. 맨처음 신여사는 연합사부사령관 유병현 장군 집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유장군은 『즉시 가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엔 윤성민(尹誠敏) 육군참모차장 집에 전화를 걸었다. 윤차장도 놀란 말투로 『빨리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노재현 국방부장관 집에 두 번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국방부장관공관은 육참총장공관 바로 옆에 있었다. 노국방은 총성을 듣고는 담을 뛰어넘어 육본벙커로 갔다). 이희성 중앙정보부장서리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의 아내가 받았다. 『나도 (남편한테서) 연락을 받았는데, 오늘은 집에서 자지 말고 나가서 자라 고한다』고 말하였다.
  
  공관관리 담당 장교의 증언
  
  총장공관에서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느냐 하는 것은 12·12사건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다. 지금까지는 노태우 총재와 12·12사건에 대한 국방부 발표문만이 공표돼 정총장 경계병이 먼저 쏜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기자는 공관 내에 있었던 목격자 2명을 더 찾아 목격담을 들어보았다. 반일부(당시 39세·현재 택시기사) 준위는 육군참모총장 공관의 관리담당이었다. 반준위는 오후 6시 조금 넘어서 총장수행부관 이재천 소령이 합수본부 총무국장 허삼수 대령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소령이 아주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총장님이 외출하시기로 되어 있으니 그 전에 빨리 오십시오.』 저쪽에서는 긴급히 보고할 내용이 있다고 말하는 모양이었다.
  
  반준위는 정총장이 서울강남에 있는 장모댁으로 가게 돼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소령이 너무 쉽게 그들의 보고를 허용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반준위는 정규 육사출신들이 선후배 관계를 너무 중시하는 것을 보아온 터라 이소령의 저자세가 불쾌했다. 허삼수, 우경윤 대령이 1층으로 들어오자 이소령은 1층 홀로 안내하였다. 회의장으로도 쓸 수 있는 넓은 응접실이었다. 이소령이 인터폰을 통해 총장 거실이 있는 2층에 두 대령의 도착을 알렸다. 반준위는 이때 1층 현관 오른쪽에 있는 부관실 안에 있었다. 두 대령을 수행하고 온 것 같은 사복 차림의 두 수사관이 부관실에 들어왔다.
  
  총장 경호장교인 김인선 대위가 부관실로 들어오더니 두 수사관을 가리키면서 호통을 쳤다. 『너희들 뭐야? 나가 있어!』두 수사관은 쭈빗쭈빗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몇 분 있다가 두 수사관은 다시 부관실로 들어왔다. 반준위는 바깥 날씨가 추워서 다시, 들어 온 것으로 생각했다. 『커피 들겠오?』두 수사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때 이소령이 황급히 들어오더니 전화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반준위는 당번병에게 코피를 시키려고 부관실을 나와 주방 있는 곳으로 가다가 홀에서 나오는 당번병 김영진 병장과. 마주쳤다. 당번병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덜덜 떨면서 『반준위님, 홀로 한 번 가보세요』라고 말했다.
  
  반준위가 홀로 뛰어 들어가는 순간 부관실에서 총성이 울렸다. 『사격중지!』하는 정총장의
  외침도 들렸다(뒤에 반준위가 안 일이지만, 이소령은 총리공관으로 전화를 돌리다가 부관실에 들어와 있던 두 사복 수사관들로부터 권총사격을 당했고 김인선 대위도 그 때 피격당했다고 한다. 이소령은 복부에 총을 몇 방 맞았다. 김대위는 척추와 눈 근방에 몇 발을 맞았다). 반준위는 총장공관 경비병에게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현관 앞에는 총장의 외출에 대비하여 총장공용의 승용차가 서있었는데, 수사관들이 타고 온 승용차가 거기에 대신 주차해 있었다. 반준위가 뛰어나가자 대통령 경호실의 경호 요원 복장을 한, 즉 야전잠바를 입고 Ml6을 든 사나이들이 자신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반준위는 돌기등을 잡고 피했다.
  
  한 사나이가 유리창을 총 개머리판으로 부수더니 1층으로 뛰어들어갔다(이 사람이 정총장을 후려치고 가슴에 총을 겨눈 듯하다). 반준위는 공관 정문 쪽으로 뛰었다. 공관 보초헌병들의 내무반 막사가 정문 쪽에 있었다. 막사의 낮은 창문을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보니 보초병들은 땅바닥에 엎드려 있고, 합수본부의 사복 수사관들이 소총으로 보초병들을 겨누고 있었다. 정문에 선 보초병은 낯선 얼굴이었다. 바꿔치기를 한 모양이었다. 사복 수사관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수사관은 막사 안에서 그대로 총부리를 반준위에게 돌리더니 드르륵 사격을 가했다. 반준위는 담쪽으로 뛰어 달아났다. 『저놈 죽여버려!』하는 소리와 함께 드르륵 연발사격 소리가 들렸다. 핑―총탄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반준위는 공관 담을 훌쩍 뛰어 넘었다. 이담은 축대 위에 쌓은 것이다. 반준위는 자신의 몸이 한참 떨어진다고 느꼈다.
  
  사격 피해 해병대에 신고
  
  담 아래 땅바닥에 내려서자마자 그는 해병대 내무반으로 뛰어들어갔다. 공관촌 일대의 외곽경비는 해병대 1개 중대가 맡 고 있었다. 황소령이란 장교가 사무실에 있었다. 『총장님께서 납치되셨습니다!』 반준위는 그 때까지도 김재규를 지원하는 세력이 정총장을 납치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황소령도 『총소리가 나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면서 즉시 비상을 걸었다. 해병대원들이 배치장소로 뛰어나가는 등 한동안 어수선했다. 사무실에는 황소령과 반준위, 그리고 사병 등 서너명만 남게 되었다. 황소령과 반준위는 바깥 상황을 살펴보려고 내무반 막사를 나서기 위해 캄캄한 복도를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사나이들이 걸어오다가 맞닥뜨렸다. 반준위는 공관 경계병인줄 알고 『너희들 뭣들 하는 거냐!』하고 고함을 질렸다. 그 순간 개머리판 세례가 쏟아졌다. 반준위와 황소령은 합수본부 사람들이 데리고 온 이들 경호실요원 복장의 부대원들에게 끌려 사무실로 들어갔다. 거기서 합수단측 요원들은 반준위, 황소령, 그리고 해병대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피가 튀고 쓰러지고 짓밟히고… 이러다간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해병대원들이 우루루 뛰어들어왔다. 이제는 해병대원들이 합수본부 요원들을 붙들어 개패듯 한 뒤 바깥에 세워 둔 마이크로 버스 (합수본부가 끌고 온 것)안으로 떠밀어 넣었다. 해병대원들은 50명쯤 되는 합수본부 요원들과 헌병들을 버스에 가두어 놓은 뒤 이를 에워싸고는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총격을 받은 이재천 소령과 김인선 대위는 공관 안에 한동안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김대위는 정원에 있는 연못 속으로 기어들어가 있었고 이소령은 부관실 침대 밑에 기어들어가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다. 총장 차 운전병이 두 사람을 업고서 순천향 병원 응급실에 데리고 가 응급 수술을 받도록 하여 목숨을 살렸다.
  
  당번병 김영진씨의 증언
  
  이날 중장공관 안에서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서는 목격자마다 조금씩 증언이 다르다. 총탄이 오고가는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기자는 여러 사람의 증
  언을 종합하여 그 때의 장면을 재생해 볼 심산으로 반준위에 이어, 당시 총장공관 당번병이었던 김영진씨(金永振씨.34세·건설회사 대리)를 찾아서 만나보았다. 김영진씨는 두 대령을 응접실로 안내할 때 느낌이 이상했다고 한다. 「장성들도 함부로 총장을 만나지 못하는데, 대령이 감히 일과 후에 불쑥 나타나다니」하는 불쾌감도 생겼다. 그래서 『대령이 무슨 보고를 하겠다고』하고 흔자말로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김병장이 응접실에서 흘로 나와 보니, 홀에는 사복한 사나이 6∼7명이 들어와 있었다. 부관실에 들어가 보니 거기에도 2∼3명의 수사관들이 들어와 있었다. 1층 전체가 사람들로 꽉 찬 기분이었다. 바깥을 보니 낯선 승용차 2대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야전잠바 차림의 사나이들 수십명이 M16을 현관쪽으로 겨눈 채 엎드려 있었다. 김병장은 응접실 칸막이 뒤에서 정총장과 두 대령 사이에 오고가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단순한 보고가 아니었다. 총장이 돈을 많이 받았다느니, 진급을 시켜주지 않아 서운하다느니 하는 등의 시비조의 이야기가 감히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파랗게 질려있는데 정총장이 벨을 눌렀다. 김병장과 이재천 소령이 동시에 응접실로 들어갔다.
  
  『장관에게 전화 대!』이소령이 응접실을 나와 부관실로 뛰어들어간 몇 초 뒤 「타당탕!」 총소리가 났다. 바깥에서도 「드르륵」하는 M16의 총성이 잇따라 울렸다. 정승화씨는 『부관실쪽에서 난 총성 이외에는 다른 총성은 없었다』고 했는데, 김영진씨의 증언은 다르다. 현관 바깥에 엎드려 있던 합수본부측 병력이 이때 바깥으로 뛰어나간 반준위를 향해 쏜 총성인지, 아니면 부관실에서 이재천, 김인선 두 사람에게 쏜 총성에 자극을 받아 엉겁결에 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김병장은 총성과 함께 응접실로 뛰어들어갔다.
  
  두 대령이 정총장을 양 옆에서 끼고 끌고 나가고 있었다. 김병장이 몸으로 막았다. 김병장이 한 대령의 손을 떼내는 등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대령의 몸에서 권총이 툭 떨어졌다. 하얀 라이터만한 권총이었다. 두 대령은 정총장에게 주먹질을 하지는 않았다. 몸 싸움을 하면서 홀까지 나오니까 한 사나이가 두꺼운 홀 유리창을 「퍽!」 깨고 뛰어 들어오더니 M16 개머리판으로 정총장을 후려쳤다. 김병장을 전화 생각이 나서 2층 내실로 뛰어올라갔다. 노재현 국방부장관, 윤성민 참모차장, 유병현 연합사 부사령관, 이희성 중앙정보부장 서리 집으로 전화를 돌려 정총장의 부인 신유경 여사에게 바꾸어 주었다. 전화를 건 뒤 홀로 내려와 보니 조용했다. 부관실과 홀 바닥에는 선지피가 흥건했다. 얼마 있다가 육군본부 본부사령 황관영(黃瓘泳) 준장이 와서 사정을 들었다.
  
  밤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육군본부작전참모부장 하소곤(河小坤) 소장(예편·금융결제관리원감사)이었다. 『수경사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니 사모님을 안심시켜 드려라. 총장님은 곧 나오시게 될 거야.』그러나 새벽에 정총장의 한 측근 장교가 『수경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렸다. 12월 13일 공관에는 『이사준비를 하라』는 지시가 육본측에서 내려왔다.
  며칠 뒤 정총장의 부인 신 여사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사저로 이사했다. 김영진씨는 우대령이 피격된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당시 공관 안에는 가족 이외에, 부관, 경호대장, 당번병, 보초헌병 1∼2명, 정원관리인 1명, 운전병 3명이 있었읍니다. 평소에도 무장을 하는 사람은 김인선 대위 한 사람뿐입니다. 김대위는 제일 먼저 총을 맞았습니다. 우대령을 쏠 사람이 어디 있고, 총이 어디 있읍니까. 12·12사건 이후에 합수본부측에서 김대위 등을 불러 조사를 했지만, 결국 자기들끼리 오인 사격한 걸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우대령 몸에서 나온 총알을 조사하면 단번에 알 일이지요』
  
  정승화씨도 『우대령을 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쪽에서 가만히 있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우경윤, 허삼수 두 사람은 정총장쪽 사람이 먼저 쏘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장 부관과 경호장교가 아직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으니 이 시비를 가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10·26뒤 육군본부에서는 공수단 병력을 총장공관 안팎에 증강배치한 일이 있었다. 정총장은 『내가 뭐 대단하다고 이러느냐』면서 이 병력을 철수시켜 버렸다고 한다.
  
  대치상태만 계속하다가
  
  저녁 8시쯤 육군본부 당직사령실은 수경사 상황실로 긴급지시를 내려보냈다. 총장공관으로 출동, 총장납치 병력을 체포하라는 내용이었다. 조홍(趙洪) 수경사헌병단장(준장예편·현재 한국화재보험협회 회장)은 이때 시내에서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접대하고 있었으므로 부단장인 申○○ 중령(현재 대령)이 장갑차와 기동타격대 병력을 이끌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수경사 병력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합수단 수사관들과 ○○헌병대 병력은 공관 외곽 경비병력인 해병대원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었다. 수사관들과 ○○헌병대원들은 몰고온 마이크로버스에 갇혀 있었다. 해병대원들은 마이크로버스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채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수경사의 기동타격대와 거의 동시에 육본헌병대, 육본의장대, 국방부 헌병대, 시경 기동타격대 병력이 출동, 공관주변의 한남동은 여러 부대가 뒤죽박죽 뒤섞여 있었다. 해병대 병력은 위협용 사격을 하곤 했다.
  
  밤 9시30분께 이번에는 경복궁에 있던 합수본부측의 김○○ 대령이 1개 중대를 이끌고 고립된 합수본부 병력을 구출하려고 총장공관에 나타났다. 김대령은 공관 주변에 설치돼 있던 초소로 들어가 전화로 공관 내부와 통화를 꾀했다. 그때 육군본부사령 黃瓘泳 준장은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인지, 공관 안에 들어가 있었다. 황준장이 전화를 받았다. 김대령은 황준장에게 경복궁에 수도권 고위 장성들이 모여 있다고 알리고 장세동 대령과 통화해보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황준장과 장대령의 통화에서 공관내외의 대치상황을 유혈사태로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고 한다. 이날 밤 총장 공관 부근에서는 여러 부대가 대치만 했고 전투적인 총격전은 벌이지 않았다. 포위되었던 합수본부 병력은 대세가 결정된 다음날 새벽에 풀려났다.
출처 : 월조
[ 2003-07-15, 18: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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