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가을이었다. 도서실에서 친구와 중간고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국어 교과서에 나와 있는 글들을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열 번쯤은 읽어야 시험지를 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옆에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묘한 눈길로 한참 나를 보더니 이런 말을 던졌다.
“야, 공부할 필요 없어. 시험문제와 답을 미리 빼내면 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되물었다. 하기야 시험 때가 되면 미리 문제지를 입수하면 참 좋겠다는 공상을 하기도 했었다.
“선생님이 돈 많은 집 아이들 집에 가서 과외공부를 시키잖아? 그 집 아이가 그러는데 시험 전날이 되면 미리 문제와 답을 다 알려준다는 거야. 그 아이를 꼬셔서 우리도 답이 적힌 쪽지를 받으면 공부하지 않고 극장에 가도 되는 거지.”
그 말이 사실이었다. 다음날 친구는 시험 직전에 답만 적힌 쪽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시험시간에 나온 문제들의 정답만 적혀 있었다. 그 다음 달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불공평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밤새 죽겠다고 공부해도 좋은 성적을 받기 힘든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미리 문제와 답을 안 아이는 놀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것이다. 그걸 학교당국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번 시험 전날이었다. 증거물은 나왔는데 증인이 필요했다. 시험을 치른 후에 그 쪽지를 공개해도 부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전에 그 쪽지를 본 인물이 필요했다. 나는 답이 적힌 쪽지를 들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상급생에게 다가가서 사정을 얘기했다. 듣고 난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난 그런 문제에 개입되기 싫은데.”
모두들 그런 식이었다. 그들은 침묵하는 게 현명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문제와 답을 빼돌린 선생님에게 찾아가 항의했다. 선생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며칠 후 수업이 끝날 무렵 그 선생이 나에게 저녁에 자기가 있는 숙직실로 오라고 명령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텅 빈 교정과 교사는 적막감이 돌고 있었다. 국어교사인 그가 숙직실 뒤로 나를 데리고 갔다. 갑자기 눈에 불이 번쩍했다. 그의 주먹이 날아온 것이다. 이어서 발길질이 왔다.
“이 새끼가 약점을 잡았다 이거지?”
그렇게 소리치면서 그는 바닥에 쓰러진 나를 짓밟았다. 그날 나는 떡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더 이상의 항의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개입하기 싫다고 피하던 상급생들이 현명했던 것 같았다. 공정한 경쟁이 아닌 공부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 다음부터 공부하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나는 성격이 독특한 친구와 죽이 맞아 학교에 남아 있었다. 퇴역장군의 아들인 그 아이는 유난히 정의감이 강했다. 아버지가 혁명은 안 된다며 반대했다가 군대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얻어맞은 내용을 대충 털어놓았다.
“알았어. 크리스마스도 됐으니까 그 선생님한테 선물을 하나 드려야 하지 않을까?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줘.”
그 아이가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어둠에 싸인 교무실 쪽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담임선생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교실로 들어섰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밤에 누군가 교무실로 침입해서 교사들의 서랍 속에 전부 쓰레기를 채워 놓은 놈이 있다. 물건이 없어진 건 없는 걸로 봐서 외부에서 침입한 건 아니고 학생이 범인이라고 교무회의에 판단했다. 여러분 중에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수하면 용서한다. 그렇지 않고 발각되면 그 아이는 꼭 퇴학시키기로 학교에서는 결론을 내렸다. 이중에 그 아이를 알거나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있으면 얘기해 주기 바란다.”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침묵했다. 우리들은 걸리지 않은 채 무사히 졸업을 했다. 범인이었던 그 친구는 대학시절 문화패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유명한 원로 역사학자로 대학에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나는 변호사로 평생을 보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부정부패의 목격자일 때가 많았다. 어디까지가 나의 행동반경일까 항상 자문하고 했다. 중학시절 선생한테 맞은 것 이상으로 사회적인 매질도 여러 번 당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바른 말을 했다가 목이 잘려 쟁반에 담긴 채 비웃음을 당한다. 예수도 기성권력을 향해 위선자,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외쳤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했다. 성경은 바른말의 끝이 어떤 현실적인 결과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경험 많은 팔십대의 선배와 동네 기원에서 바둑을 두다가 바른 말과 항의가 어디까지냐고 그 한계를 물었다. 신문기자로 출발한 선배는 신문사 사장을 하고 감옥에도 다녀왔다. 그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부정을 봤을 때 침묵하면 안 돼.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분명히 해야지. 단 거기까지야. 상대방을 바로 잡겠다고 일어서서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 다음부터는 명분은 정의일지 몰라도 사실은 감정싸움이 되고 증오가 되니까 말이야.”
그 대답은 ‘중도’에 서야 한다는 선현의 지혜로 내 가슴에 흘러 들어왔다.
48년 만의 자수
- 엄상익(변호사)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17-10-29, 2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