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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관학교의 하루
 군관학교의 하루
 
 아침 5시에 기상 나팔소리가 울린다. 박정희 등 생도들은 늦어도 10분 전에는 눈을 뜨고 이불 밑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나 1분 내에 연병장에 집합하라! 생도들은 옷을 걸치고 끼 워입은채 한 손으로는 각반을 차면서 연병장으로 달려나간다. 만주 군관학교 교정, 즉 동덕대는 만주국의 수도 신경의 교외에 있었다. 주변 야산에는 억새풀이 우거지고 공사장이 있었다. 아침에 점호를 받으면서 바라보면 멀리 신경역에서 열차가 오가는 것이 눈에 들어 와 생도들은 고향을 그리기도 했다.
 
 점호보고가 시작되면 생도들은 부동자세를 취해야 했다. 이때부터 구대장들이 돌아다니면서 행동이 느려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않았거나 각반 끈이 묶여있지 않은 생도를 적발한다. 가슴을 쳐서 사정없이 땅바닥에 쓰러뜨린다. 무릎이 붙지 않은 생도도 당한다. 만주군관학교는 일본육사와 마찬가지로 자세교육을 중요시했다. 입교 한지 여섯 달까지는 뒷짐을 지고 다니면서 시선은 눈보다 높게 두도록 했다. 어깨를 펴고 상체를 꼿꼿하게 유지하도록 한 것이었다. 아침 점호가 끝나면 각자 내무반으로 돌아와서 침구와 관물정돈을 한다.
 
 내무반은 통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5개씩의 침대가 있는 10인 실이었다. 38소총을 걸어둔 총가가 있고 개인별 관물함 아래에는 배 낭을 두도록 했다. 5시50분에 식사당번 생도들이 식당으로 먼저 출발한 뒤 오전 6시에 일제히 행진하여 식당에 간다.
 
 생도들은 '콰이츠'라 불리는 나무젓가락 통을 갖고 다녔다. 숟가락은 내주지 않았다. 식탁은 한 줄에 6명씩 12명이 마주보고 앉아 먹게 되었다. 일본 유학생도들은 쌀밥을, 만주와 조선인 생도들은 수수밥을 먹어야 했다. 일본인들은 수수밥을 먹으면 설사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정희가 소속된 구대에서는 입학 며칠 뒤에 이런 일이 있었다. 조선인 생도들을 포함한 만계 생도들이 수업이 좀 일찍 끝나 식당에 들어왔다. 일본인 생도들이 먹을 쌀밥통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만주인, 조선인 생도들이 이 쌀밥통을 끌어다가 먹어 버렸다. 뒤에 들어온 일계 생도들이 화가 나서 양쪽이 난투극을 벌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점심시간에만 만주,조선인 생도에게도 쌀밥을 주게 되었다. 식사에 있어서의 이런 차별은 민족감정만 부추겼다.
 
 아침식사 후 내무반으로 돌아와서 서랍을 정돈한 뒤 학과장으로 갈 때는 서랍을 15㎝쯤 열어놓게 되어 있었다. 생도들이 나간 뒤에 구대장들이 순시하여 정돈상태가 나쁜 서랍은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 이었다. 동기생 이재기가 보니 박정희의 서랍 안은 책이나 문구류가 언제나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이었다. 박정희의 이런 정리정돈 벽은 유별났다. 지저분한 것을 생래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였 지만 사실은 이런 교육의 결과일 것이다.
 
 그는 대통령 시절에도 사 무실 정리를 혼자서 했다. 촌지를 넣은 편지봉투를 보낼 때도 집무 실 책상위에 놓아둔 가위로 스카치 테이프를 정확하게 잘라 붙인 다 음 전달자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보고장에 가서도 책상 앞에 놓인 볼펜이 조금만 삐뚜룸하면 이를 반듯하게 고쳐 놓아야 직성이 풀리 는 사람이었다. 이런 성격이니 그가 장발족을 그대로 둘 리가 없었 던 것이다.
 
 오전은 주로 학과수업이었고 오후는 교련이었다. 일본육사 교육 과정을 거의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일본어, 중국어, 수학, 물리, 화학, 역사, 지리, 사격, 측도, 마술, 유도, 진중근무(보초, 경계, 수색,정찰등), 전사학, 작전요무령, 보병전술 등등. 그들은 측도 교 육을 특히 중요시했다. 1주일간 야외로 나가서 일정한지역을 배당하 여 측량을 하고 지도를 그려 오도록 하는 훈련도 했다. 이때 배운 측도, 독도법을 박정희는 대통령이 된 뒤에 활용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같은 대사업을 구상할때 또는 작업을 지시할 때 박정희는 등고 선까지 들어간 지도를 아주 단순명쾌하게 즉석에서 그리곤 했다. 헬 리콥터를 타고 강원도 수해지역을 시찰할때 지사가 항로를 잊어먹자 대통령이 직접 지도를 펴놓고 정확하게 목표지점을 찾아낸 적도 있 다. 국토건설기에 있어서 특히 박정희의 이런 지도지식은 요긴하게 쓰여졌던 것이다.
 
 박정희는 또 말을 아주 잘 탔다. 당시 광활한 만주벌판에서는 말 이 중요한 기동수단이었다. 마술시간이 되면 생도들은 장화를 신고 집합하여 말에 오르는 법, 안장을 놓는 법을 배웠다. 말을 탄다는 것은 말을 부리는 것을 뜻한다. 말을 국민에 비교하면 기수는 정치 인이다. 고삐와 발동작으로써 말을 달래거나 위협하면서 질주하도록 하는 경험을 통해서 기마민족들은 지배와 통치의 요령을 본능적으로 터득했던 것이다. 세계사는 대체로 마상의 인간에 의하여 다스려졌다.
 
 박정희는 등판이 아주 넓은, 등급이 좀 떨어지는 연습용 말인데 도 두 다리를 잘 오무린 채 아주 능숙하게 말을 몰았다고 동기생 김 묵(육군공병감 역임)은 기억하고 있다. 그의 취미는 나팔불기에서 말타기로 바뀌게 된다. 자신과의 대화에서 동물과의 교감으로 바뀐 것이다. 말등에 올라탄 후에는 등자에 발의 앞부분을 걸어야 한다. 겁이 난다고 발을 깊숙이 밀어넣은 상태에서 말에서 떨어지면 발이 빠지지않아 큰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1기 선배인 한 중국 인 생도는 발이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낙마하였다. 말이 그를 거꾸 로 매달고 달리는 바람에 뇌골절로 사망했다.
 
 박정희에게 있어서 군관학교 교육은 복습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거의가 대구사범에서 한번씩 해본 종목이기 때문이었다. 김묵에 따 르면 박정희는 목검을 들고 사다리를 오르고 외나무다리를 지나는 장애물훈련에서도 발군이었고 검도도 잘 했다고 한다. 저녁식사 뒤 는 내무반에서 자습시간. 이때는 일기를 써야 했다. 구대장이 가지 고 가서 검열을 하는 일기였다. 박정희는 문경의 제자들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썼다. 취침 직전엔 조명을 어둑하게 해놓고 하루 반성 시간을 갖는다. 이때는 '오성'을 외치는 것이었다.
 
 지성에 위배된 점은 없었던가 / 언행에 부끄러운 점은 없었던가 / 기력이 부족한 점은 없었던가 / 노력에 아쉬운 점은 없었던가 /부정 에 손을 댄 적은 없었던가.
 
 이 학교의 특징은 기상과 취침에 예외를 허용하지 않아 누구나 공 평한 조건 아래서 겨루게 했다는 점이다. 강하고 머리좋은 사람이 일 등을 하도록 한 제도였다.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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