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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2. 朴正熙 전기 연재 / 마지막 10日 |
1979년 10월17일 오전 朴正熙 대통령은 金載圭 정보부장, 具滋春 내무장관, 金桂元 비서실장, 柳赫仁 정무1수석, 高建 정무2수석 비서관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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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1. 朴正熙 전기 연재/1979년의 드라마 |
1979년 10월16일 저녁 부산 국제신문 사회부 전화는 불이 났다.
『오늘 데모 난 것 압니까?』
『예』
『왜 데모 기사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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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0. 金桂元·鄭昇和·全斗煥의 등장 |
1977년을 보내면서 朴대통령은 일기를 썼다.
<1977년 12월31일 맑음. 달력에는 마지막 한 장이 남았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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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9. 가로림만(加露林灣)) 프로젝트의 대야망 |
1977년 12월22일, 드디어 한국은 연간 100억 불(달러) 수출 목표를 달성했다. 목표연도는 1980년이었는데 3년을 앞당겼다. 朴正熙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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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8. 기자를 박치기 한 朴대통령의 공개사과 |
1979년 3월21일 청와대 경내 賞春齎(상춘재) 건물에서는 청와대 출입기자를 위한 만찬이 있었다. 청와대를 출입하다가 내근으로 돌아간 기자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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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7. 「시스템운영의 鬼才」 박정희式 일하기 |
「시스템운영의 鬼才」 박정희式 일하기
吳源哲 前 대통령 경제 제2수석비서관·중화학기획단장
브리핑이 成敗 결정
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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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6. 이슬숲에서 선진국으로 만나자 |
朴正熙의 대야망-이슬숲 프로젝트(6)
한국 전체가 자유특구화해야
장관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가로림 FTS가 본토에 주는 영향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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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5. '2030 가로림 FTS(자유경제특구)' 구상 |
朴正熙의 대야망-이슬숲 프로젝트(5)
독립국 수준의 자유지역으로
지금 가로림만 일대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1978년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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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4. 『꼭 조선시대의 烽燧臺에 올라온 것 같구먼』 |
朴正熙의 대야망-이슬숲 프로젝트(4)
가로림만 시찰
며칠 후 朴대통령 일행은 헬기를 탔다. 일행 중에는 현대의 鄭周永 회장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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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3. 『각하, 싱가포르를 능가합니다』 |
朴正熙의 대야망-이슬숲 프로젝트(3)
균형감각
朴正熙 대통령의 경제개발 정책은 독점과 경쟁을 적절하게 배합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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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2. 차트名 「N·C(New Capital)」계획 |
朴正熙의 대야망-이슬숲 프로젝트(2)
『임시행정수도를 만들자』
1977년 2월10일 朴대통령은 서울시청을 연두 순시해 市政(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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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1. 維新은 수단, 목표는 중화학공업 건설 |
박정희의 대야망: 가로림만(加露林灣-충남 서산市 일대) 프로젝트
「이슬숲」에서 선진국으로 만나자
수출 백억 불!
1977년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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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0. 駐韓미군 철수저지工作의 내막 |
1977년 1월21일 朴正熙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對北(대북) 식량원조를 제안했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매우 심각한 것이 사실인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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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9. 전쟁에 가장 가까이 갔던 날 |
〈전쟁 미치광이 金日成 도당들의 이 야만적인 행위에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
저 미련하고도 무지막지한 폭력배들아,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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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8. 청와대의 골칫거리-朴槿惠와 崔太敏 밀착 |
1975년 5월21일 오전 10시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金泳三 신민당 총재와 朴대통령의 회담이 있었다. 金총재는 李宅敦 대변인을 데리고 청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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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7. 『지키지 못하는 날에는 다 죽어야 한다』 |
[연재] 근대화 혁명가 朴正熙의 생애 (9권8장)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越南 패망과 긴급조치 9호 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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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6. 3面의 敵 |
『州방위군이 시위대에 발포하는 美國이 우리가 어떻다고 인권 운운하나!』
北의 金日成, 南의 민주화 세력, 태평양 건너 미국의 인권 압력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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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5. 아내 잃고 詩人이 된 대통령 |
朴正熙는 아내를 잃은 뒤 日記에 수십 편의 감상적인 詩를 남겼다. 그는 「앉은 자리 밟던 자국 / 체온마저 따스하여라」, 「짝을 잃은 저 기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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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4. 魔彈의 射手 |
1974년 8월15일 국립극장의 진실
제3탄의 不發이 대통령을 살렸다. 과잉경호에 대한 陸여사의 질책이 암살자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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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3. 石油위기와 中東진출 |
시련은 석유를 쓰는 세계 각국에 똑같이 주어졌다. 한국이 이 시련을 이겨내니 상대적으로 훨씬 앞서가게 된 것이다. 석유파동은 그때까지 비슷하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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