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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불손
 오만불손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시고 있었던 김계원, 김재규, 차지철이 세 군인 출신 인사들은 박 대통령과 키가 거의 같았다(1백64cm 내외). 곧 궁정동에 모이게 될 이 네 사람은 유신정권의 핵심이 었다.
 
 유신정권의 정치조직인 공화당과 유정회, 그리고 군부는 이들 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었다. 이들은 박정희라는 항성을 최근접 거리에서 돌고 있는 세위성이었다. 이 세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 가 만든 덫에 걸려든 것이 이 날의 박정희였다. 권력 핵심부의 균형을 잡고 조화를 도모해야 할 사람은 김계원이었지만 차지철 을 미워하는 데는 김재규와 완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김재규 정보부장은 김계원 비서실장을 선배로 깎듯이 예우하 면서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는 사이였다. 김재규가 진해 육군 대 학 부총장으로 재임했던 1960년 당시 김계원 소장이 총장으로 부 임하면서 두 사람은 인연을 맺었다. 그 무렵 마산에서 회식을 마 친 뒤 돌아가던 김재규의 지프가 절벽 아래로 굴렀다.
 
 마침 뒤따 라가던 김계원이 그 현장을 목격하고 중상을 당한 김재규를 업고 올라와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구해준 일도 있었다. 김계원은 육 군참모총장을 끝으로 군에서 물러난 뒤에 정보부장을 잠시 지낸 다음 대만 주재 대사를 오래했다. 그는 1978년 12월의 10대 국회 선거를 앞두고 김재규에게 부탁하여 고향인 영주에서 공화당 공 천을 받아 출마하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재규는 그 런 그를 대통령에게 비서실장으로 천거했던 것이다.
 
 김계원이 1979년 11월10일에 합수부에서 쓴 제3차 진술서는 차실장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나는 비서실장으로 부임한 후 차지철의 사무실로 가서 인사 를 했는데 이에 대하여 답례인사도 오지도 않았습니다. 한번도 본인의 사무실로 찾아온 적이 없었습니다. 차실장은 각하께 보고 하러 본관에 와서 1층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도 내가 있는 2층 사 무실로 올라오면 될 것을 꼭 1층 대기실로 나를 불러내려 용건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8월경 일본의 후쿠다 전 수상이 방한 하여 각하를 모시고 백두진 국회의장, 차지철 경호실장,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뉴관악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나서 샤워장에 들어갔습니다.
 
 백 의장이 맨 먼저 샤워장에 들어갔는데 빨리 나오지 않자 차 실장은 샤워장 문을 두드리면서 '빨리 나와요 빨리. 뭘 하는 거 요'라고 하면서 '이 늙은 이가 무얼 우물 우물 하는가.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독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연장자에 대 한 태도가 무례할 뿐만 아니라 항상 각하를 경호한다는 입장을 내세워서 자리나 차량운행 순서에서 자기가 먼저 차지하는 것이 었습니다. 각하를 모시고 정부종합청사에 갈 때 각하, 총리, 관 계장관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차실장은 자리가 좁다는 이유를 대 면서 본인보고는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라고 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차지철은 간혹 각하가 출근하기 전에 대통령 집무실에 와서 기다리다가 먼저 들어가 결재를 받고 나오는 바람에 내가 상당히 기다렸다가 결재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본인이나 장관들이 결 재를 받으러 기다리고 있는데 차실장이 각하 집무실 입구 경호원 에게 지시하여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 뒤 자기가 와서 먼저 결재를 받는 바람에 장관들이 차 실장이 결재를 받고 나올 때까 지 기다리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차지철은 경호실 정보처로 하여금 정치 및 시국에 대한 정보 를 수집하여 각하에게 보고하는데 어떤 사태가 야기되었을 때는 정보부장이 보고차 오기 전에 먼저 보고하여 정보부장이 뒤늦은 보고를 하도록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차지철은 연장자인 본인이나 장관 국회의장 군 선배에게도 님자를 붙이는 법이 없고 오만불손하였습니다. 각하가 방문하는 호텔이나 골프장의 사장들 이 각하를 영접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인사하러 나오면 차 실장은 들어가라고 제지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 자기 업무도 아닌 정치공작에까지 간여하고 육군참모 총장 이세호대장을 주1-2회 정도 자신의 사무실로 부르는가 하면 군내의 주요지휘관들과 장성들을 불러다가 돈도 주고 식사도 같 이 하고 하는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치열 법무장관이 군인 들과 접촉하는 차 실장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 은 적도 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의 핵심에서는 항상 최고 권력자의 귀와 눈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다른 요인보다도 먼저 정 보를 올려서 그 권력자의 선입견을 차지하는 것이 이런 권력 게 임의 요령이다. 차지철 실장은 권력자의 그림자라는 위치를 이런 게임에 활용하고 있었으니 항상 비서실장과 정보부장은 한 발 뒤 처지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가부장적 예의범절에 익숙하여 서 열을 무시하는 행동을 미워하도록 교육받았다. 특히 군대사회에 서는 이 서열의식이 엄청 강하고 예민하다.
 
 그런데 육군대위 출신인 차지철은 육군대장 출신의 비서실장 과 육군중장출신의 정보부장, 그것도 나이가 훨씬 많은 두 사람 을 마치 하급자 다루듯이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는 정의감이 있 고 울컥하는 성격인 김재규가 입버릇처럼 했다는 '저 자식을 해 치우겠습니다'라고 한 말은 그의 가슴속에서 쌓여가고 있었던 증 오심의 온도상승을 뜻하고 있었다.
 
 김재규는 차지철로부터 받는 모욕과 그의 월권에 대해서 대통 령과 담판을 한다든지 정보부의 막강한 정보수집능력을 이용하여 그를 견제한다든지 하는 식의 대응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만한 논리와 배짱이 없는대신에 속으로는 울분만 소리없이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고향 후배이자 육사동기생이 고 자신의 비호 아래에서 커온 김재규가 만만해서 그랬는지 여러 사람들 앞에서 김재규의 무능을 나무라곤 했다. 이를 본 대통령 측근들은 김재규보다 차지철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왜 박정희가 차지철의 월권적 행동과 오만불손한 언동을 방치 하고 부추기기까지 했느냐 하는 것이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육영수 여사가 죽은 후 일어난 그의 인간적 변모에서 해답을 찾 으려한다. 권력을 관리하는 자세가 옛날처럼 엄정하거나 날카롭 지가 않고 인간적이고 무디어졌다는 것이다. 아내라는 정신적 안 식처이자 견제장치가 사라지니 박정희는 허무적, 감상적으로 변 하고 권력의 정상이 겪어야 하는 고독에다가 홀아비로서의 외로 움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는 인정과 비정을 잘 조화시켜 권력을 잘 관리해온 사람이었지만 말년에는 점차 긴장감을 잃고 있었다. 비서실장 자리를 제의받았을 때 김계원이 고사하니까 박정희는 '실장 일을 안해도 돼. 나 하고 말동무만 하면 돼'라고 했을 정 도였다.
 
 차지철의 오만방자, 김계원의 조정력 부족에 덧붙여서 김재규 는 간질환으로 환자와 다름없는 상태에 있었다. 김재규는 오후에 는 궁정동에서 몇 시간씩 취침을 해야 건강이 유지될 정도였다. 심할 때는 이동복을 특보로 임명하여 부장이 읽고 결재해야 할 업무를 대행시키기도 했다. 1979년 김영삼이 신민당 총재로 복귀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민주화세력의 정치적 도전은 정보부장의 업무를 과중시켰지만 김재규는 이런 난세를 헤치고 갈 만한 머리 와 건강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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