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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고문
 전기고문
 
 박정희 소령이 수감된 곳은 지금 신라호텔 부근의 남산 기슭에 있던 헌병대 영창이었다. 박정희는 여기서 수사에 협조하기로 결심한다. 그가 수사팀장인 김창룡 1연대 정보주임(소령)에게 써낸 자술서를 읽어본 사 람으로서 유일한 생존자는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 특무과장(소령)이던 김 안일(육군준장 예편). 박정희와는 사관학교 동기이고 지금은 기독교 목 사로 있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김창룡한테 들었는데 박 소령은 구속되자마자 이런 때가 올 줄 알았 다면서 자술서를 쭉 써내려 갔다고 합니다. 그 내용인즉 대구폭동에 가 담했다가 피살된 박상희형의 집을 찾아가 보았더니 이재복(남로당 군사 부 책임자)이가 유족들을 도와주고 있더랍니다. 이는 '공산당선언' 같은 책자를 가져다 주면서 남로당에 가입하라고 꼬었고 형의 원수를 갚으라 고 하더랍니다. 자술서를 읽어 보니 박 소령은 이념적 공산주의자가 아 니고 인간관계에 얽혀서, 또 복수심 때문에 남로당에 들어간 감상적 공 산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군내 남로당 조직원들의 이름들을 많이 털어놓았다. 특히 박 소령이 중대장으로서 1년 남짓 근무했던 사관학교 내의 남로당 세포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박정희와 친 밀했던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 김점곤 과장은 김창룡 대위를 따로 불러 때리지 말고 수사하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정희는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자술서를 잘 썼다고 해서 얌전하게 대접하면서 수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해 4월3일부터 시작된 제주도 폭동과 여순14연대 반란사건을 통해서 군내 좌익이 저지른 동료 군인들에 대한 학살은 많은 수사관들을 난폭하게 만들었다. 숙군수사의 기본 성격은 숙 청이었다. 적법절차와 인도주의가 끼일 수 있는 여지는 좁았다.
 
 박정희는 헌병대 영창에서 한동안 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넘어갔다. 여기에는 전군에서 붙들려온 숙군피의자 1천여 명이 건물 2개 동에 수용 되어 있었다. 김창룡은 형무소에서 방을 빌려 상주하면서 신문을 벌이고 있었다. 박정희 소령과 같은 무렵에 구속된 김도영(육사1기 출신·육군 대령 예편)은 김창룡의 조사실로 불려갔다. 김창룡 소령, 이한진대위 등 수사관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전기고문을 받으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박정희였다. '너도 불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 고 겁을 주기 위해서 고문하는 것 같았다.
 
 김 소령을 신문하던 사람이 '너 이러다간 죽으니 우선 아무나 대고 재판받을 때 부인하라'고 충고했다. 김 소령은 우선 살고 보자는 생각에서 같은 연대의 장교 두 사람을 찍었다. 이 둘은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김 소령도 재판에서 무 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자마자 공비토벌에 투입되었다. 경인지구 부대의 숙군책임자는 특별부대(군수지원 업무담당) 정보처장 차호성 소령.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김창룡의 조사실 옆방을 쓰고 있었다.
 
 어느날 김창룡 방에 들어갔다. 박정희 소령이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 었다.
 
 차 소령은 친면이 있는 그에게 말했다.
 
 '박형! 이왕 자백하려면 깨끗이 털어놓으세요. 솔직히 불어야 속도 후련해질 것이오. 너무 걱정 마시오.'.
 
 박정희는 '이미 다 털어놓았다'고 대답했다. 박정희를 신문한 사람은 일제시대 학병출신으로서 힘이 장사인 이한진 대위. 그는 사관학교 5기 생으로서 당시 중대장 박정희와는 사제지간이었다. 박정희와 육사동기이 고 그와 친하다가 최남근에게 포섭될 뻔했던 한웅진 대위는 이즈음 박정 희를 면회간 적이 있었다. 박정희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무좀으로 고생 한다고 해서 약을 사넣어주고 왔다.
 
 박정희가 '남로당 세포'라고 털어놓은 사람들 가운데는 억울한 사람 들도 있었다. 아마도 고문에 이기지 못해서 허위진술을 한 것이리라. 그 들중 한 사람이 육군항공사관학교(공군사관학교의 전신) 교수부장 박원 석(공군참모총장 역임) 대위였다. 1949년1월 박정희 담당 수사관인 이한 진이사관학교 5기 동기생이기도 한 박 대위를 연행해 갔다.
 
 항공사관학 교교장 김정렬(공군참모총장, 국방장관, 국무총리 역임·작고)은 일본사 관학교 4년 후배인 박 대위가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다음날 명동 증권거래소 건물 안에 있던 김창룡의 수사본부를 찾아갔다. 음산한분위 기였다. 곳곳에서 신음소리, 수사관의 고함소리가 어두컴컴한 복도를타 고 들려왔다. 김창룡은 관동군 헌병 출신으로서 정규 일본육사 출신에게 는 고분고분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는 김정렬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아니, 남의 교수부장을 빨갱이라고 잡아가면 어떻게 하오?' '아닙니다. 그 놈은 빨갱이가 틀림없습니다.' '증거가 있소?' '예, 있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김창룡이 차트를 펼쳐 보였다. 웬만한 사람의 키를 넘을 만큼 큰 차 트에는 남로당 수뇌부를 정점으로 하여 밑으로 피라미드 모양으로 퍼져 나간 남로당 군사조직표가 그려져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조직원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박원석 대위의 이름은 박정희 소령 밑에 올라 있 었다.
 
 '아니, 박원석이가 무엇을 했길래?' '드러난 것은 없지만 박정희의 세포입니다.'.
 
 김정렬은 박정희가 일본육사 57기 유학생대에 다닐 때 박원석이 58기 로서 그때부터 서로 알고 지낸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었는데 같은 세포라 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김정렬은 몇 달 전의 일이 생각났다. 항공사관 학교 창설을 주도할 간부 7명이 육군사관학교에서 15일간 교육을 받는데 담당 중대장이 박정희 소령이었다.
 
 박 소령은 일제시대의 군경력이 훨씬 선배인 김정렬과 박범집을 매일 저녁에 숙소에 초대하여 술과 음식을 대 접했다. 김정렬은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것을 알고 유심히 그를 관찰했다. 명망대로의 인물됨이었다. 그런데 그가 좌익이라 니. 김정렬이 '박원석은 물론이고 박정희 소령도 내가 보기엔 빨갱이가 아닌 것 같은데….'라고 했더니 김창룡은 '아닙니다. 그는 확실합니다' 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다.(계속).
 
 (조갑제 출판부부국장·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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