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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8기생
 술과 8기생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 남한반장이던 한무협중위는 자신의 결혼식 에서 주례를 서 주었던 박정희를 무척 따랐다. 비록 박정희가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근무하고 있었지만 한중위는 여전히 그를 상관으로 대 우하고 있었다. 이즘의 박정희에 대해서 한무협은 '때로는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흔들리다가도 다시 마음잡고 사는 모습으로 바뀌는 등 기복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젊고 미인인 연인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이 편치못했다.
 
 한때는 '빨갱이'였고, 결혼하여 딸까지 두고 있으며, 파면되어 장래 가 어두운 박정희에 대해서 동거녀 이현란은 절망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전증언-- .
 
 '우리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이를 날 새가 어디 있었어요. 살기는 햇수로 3년이지만 같이 산 것은 8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가출을 수도 없이 했으니까요. 아이가 있었다면 붙잡혀 못나왔을 걸.그 사람이 얼마나 독한 사람인데 나를 놔줘요. 미스터 박은 방에 누워 책 으로 얼굴을 덮고 연설을 하곤 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독재자이긴 하지만 영웅은 영웅이라고 하더군요. 나긴 난 사람이라고. 미스터 박 그 사람은 국방장관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요만큼을 가도 나 를 데리고 가려고 해요. 화장실에 오래 있어도 들여다 봐요. 내가 달아 날까 봐. 미스터 박은 땅을 치고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날 놔달라고 자꾸 그러니까 울더군요.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 았습니다. 괘씸하고 그 얼굴이 가면 같이 느껴지고요. 여자(본처 김호 남)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아이(박재옥)까지 내 앞으로 입적하겠다니 천길만길 뛰겠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분의 마음을 너무 아프 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 연분이 아니었지요. 미스터 박이 대통령이 되 었을때도 아무렇지도 않았으니까요'.
 
 박정희는 큰딸 재옥을 데리고 가출한 뒤 소식이 없는 본처 김호남과 정식으로 이혼하여 호적을 정리하려고 속을 태웠다. 박정희는 고향에서 제법 사업에 성공하여 큰 기와집을 사서 살고 있던 조카 박재석을 불러 올렸다. 박정희는 조카를 중국집에 데리고 가더니 울먹이면서 하소연을 했다.
 
 '너의 숙모(김호남)하고 이혼 좀 시키도고.' '제가 어떻게 이혼을 시킵니까.' '내가 지금 새로 장가를 가야겠는데 이혼이 안되니… 좀 도와다오.'.
 
 박재석은 고향으로 내려와서 김호남을 찾아가 사정했으나 펄쩍 뛰는 것이었다.
 
 박정희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술이었다. 박정희는 많지 않 은 월급에 비해서 술을 과하게 마시는 편이었다. 월급이 나오자마자 운 전사를 시켜 봉투째 단골술집 여주인한테 갖다주기도 했다. 백선엽 정 보국장은 이런 박정희를 도와주려고 배급품인 시 레이션과 담배를 모아 서 건네주기도 했다. 팔아서 쓰란 뜻이었다.
 
 한무협 중위는 어느 날 종로의 단골집에서 술을 마신 뒤 먼저 집으 로 돌아왔다. 다음날 출근하니 박정희가 전화를 걸었다. '차를 가지고 나를 데리러 오라'는 것이었다. 간밤의 단골집으로 가니 술집 여주인이 양말부터 속옷 일체를 새것으로 갈아 입히고 있었다. 박정희는 천진난 만한 어린아이처럼 앉아서 옷을 하나씩 받아 입는 것이었다.
 
 한중위는 '오늘도 부부싸움이 벌어지겠구나' 생각했다. 이 무렵의 박정희에 대한 기억들은 거의가 술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불운의 계절을 술로 달래고 있었다. 박정희는 정보국 5과장 차호성 소령과 자주 어울렸다.박정희는 배갈, 막걸리, 소주 등 닥치는대로 마셨다. 곧잘 팬티차림으로 주저 앉 아 격식과 체면도 벗어던진 채 먹고 마시고 춤추곤 했다. 차씨에 따르 면 박정희는 취하면 아무나 부둥켜 안고 볼에 침이 묻을 만큼 입을 맞 추는 버릇이 있었다.
 
 깨어 있을 때는 목석 같은 박정희였지만 취하면 한량이었다.
 
 5·16거사의 주체세력이 되는 육사8기생들과의 인연도 이 무렵 술을 통해서 맺어졌다. 공산 빨치산의 활동이 격화되자 전투정보과의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백선엽 국장은 선임장교인 유양수(육군소장 예편, 동자부 장관 역임)대위를 부르더니 '육사8기생들이 졸업하는데 임자가 가서 머리 좋은 생도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유대위는 1천명이 넘는 졸업예정자들 가운데 성적이 25등 안에 드는 생도들을 면접하여 그해 6월에 15명을 전투정보과로 데려왔다.
 
 지금 국무총리 서리로 있는 김종 필 소위를 비롯하여 이영근(유정회 총무 역임), 이병희(전 국회의원· 작고), 전재덕(전 정보부 차장), 전재구(전 정보부 차장보), 석정선(전 정보부 차장), 서정순(전 국회의원) 등 이들 정보장교 출신들은 5·16 의 기획과 거사 뒤의 정보부창설 등에 깊이 참여하게 된다. 박정희 대 통령의 경호실장이 되는 박종규는 그때 사병으로 전투정보과에서 근무 하고 있었다. 이들 8기 장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민간인 박정희 였다.
 
 이영근의 증언-- .
 
 '작전과 정보에 대해서 경험이 없었던 저희들의 눈에는 박정희 그분 이 하나의 경이였습니다. 빨치산들의 이동이 감지되면 그들의 예상이 동경로를 저희 과에서 판단하여 작전국에 알려주곤 했는데 그분의 예상 이 적중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상황실에 가끔 상관들이 나타나 박정희의 지도하에 8기 장교들이 그 려넣은 상황판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험이 적은 장교들이 생각 해도 억지주장을 하는 상관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상황판을 지우고 자기 생각대로 그려놓고 나가버리면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박정희는 '자아식,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한 마디를 한 다음 마른 걸레로 다시 상황판을 지우고 본래대로 그려놓는 것이었다. 며칠 지나고 보면 본래 의 판단이 맞아떨어진 것으로 밝혀져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은 배가되더 라는 것이다. 박정희는 8기생들을 무교동의 '은월정'이란 술집으로 자 주 데려나가곤 했다. 이영근은먼저 퇴근하여 막걸리에다가 얼음을 담구 어 차게 해놓는 임무를 도맡았다.
 
 '정보국장도 박정희 실장에게 존칭을 쓰면서 부하이지만 어렵게 대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들에게 그분은 형님 같기도 하고 아버지 같 은 느낌도 들었어요. 업무에 대해서는 엄격한 분이 술자리에서는 상하 관계를 의식하지 않도록 소탈하게 우리를 대해주었습니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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