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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여인
 두여인
 
 대통령은 탁자 건너편에 앉은 김재규 부장을 향해서 {부산 마산에 별일 없지}하고 물었다. {예, 별일 없습니다.} 시바스 리갈을 얼음이 든 물컵에 타서 젖고 있던 김 부장이 대답했다.
 
 {부산사태는 신민당이 개입해서 하는 일인데 괜히들 놀래가지고 야단들이야. 신민당 의원이 나한테 와서 말한 게 있어. 오늘 삽교천에 가 보았지만 국민 대다수는 다 열심히 일하는데 부산 데모만 하더라도 그렇지 식당 뽀이, 똘만이들이 많았잖아. 그 놈들이 어떻게 선별수리란 말을 알겠어. 중앙정보부가 수고 많이 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더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김 부장의 얼굴은 어두웠다. 이날 박 대통령은 부산사태는 김영삼의 신민당이 조종해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선입견을 깔고서 김재규와 정보부의 무능을 질책했다. 이것이 김재규로 하여금 더욱 울화를 치밀게 하였다. 김계원이 군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은 저간의 사정을 잘 설명해준다.
 
 [지난 10월16일 부산에서 발생한 소요사태에 관하여 차지철은 각하에게 신민당이 배후조종한 폭동이라고 보고해서 선입견을 갖게 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조사결과 신민당이 아니고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등 불온단체와 일부 반정부학생들이 가담했다고 보고했으나 각하로부터 거절당하고 오히려 야단을 맞게 되자 김재규는 그 원인이 차지철의 농간에 의한 것이라고 눈치채고 분노가 극에 달한 바 있습니다.].
 
 김재규는 그 전에도 수 없이 김계원에게 이렇게 털어놓곤 했다. {각하께서 나 보고 무어라고 명령하는 것은 좋지만 지가 뭔데 한 수 더 떠서 이러쿵 저러쿵 나에게 이야기하는지, 짜식….}
 
 대통령은 김재규 부장에게 다시 한번 퉁명스럽게 물었다. {신민당 공작 어떻게 되었소.} {다 틀렸습니다. 당직에서 사표 내겠다고 한 친구들이 모두 강경으로 돌아서버렸습니다. 암만 해도 당분간은 정운갑 대행 체제의 출범이 어렵겠습니다.}
 
 이때 차지철 실장이 나섰다. {그까짓 새끼들, 까불면 신민당이고 학생이고 탱크로 싹 깔아뭉개버리겠습니다.}
 
 김재규는 [야 이 친구 또 이런 자리에서…. 꼭 마찬가지로구나]하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못마땅한 말투로 얘기를 계속했다. {설사 일괄 반려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때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 친구들 괜히 놀라서 야단들이야. 참 답답하단 말이야.}
 
 차지철이 이 말을 받아 {각하, 정말 그렇습니다}고 반주하듯 말했다. 대통령은 {국회의장이 무슨 잘못이 있어…}라고 중얼거렸다. 차 실장은 두 여자 때문에 안방과 바깥을 들락날락했다.
 
 신재순과 심수봉이 궁정동 안방 옆 대기실에 도착한 것은 6시15분쯤. 의전과장 박선호가 나갔다 오더니 서약서를 내놓았다. 오늘 듣고 본 것을 바깥에 나가서 발설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상투적인 내용으로 인쇄된 문안에 사인만 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정인형과 안재송 두 사람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차 실장이 오더니 또 몇 가지를 물었다. 그 다음 박선호가 신양에게 [단독으로 각하를 모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신양은 어제 본 박 과장과 너무 달라진 오늘의 박 과장을 대하고 흠칫했다. 얼굴에 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심수봉은 대기실에 기다리면서 안재송 부처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사격이 취미였던 심양은 태릉 사격장에서 안재송을 만난 적이 있었다. 6시30분쯤 차 실장이 안방에서 나오더니 남효주 사무관에게 {지금 여자 손님이 두 분이 있는데 현관 앞에서 대기시키고 내가 들여보내라고 할 때 들여보내라}고 하고는 다시 들어갔다.
 
 식당 관리자 겸 안방 전담 웨이터 남효주는 박선호를 찾아 경호관 대기실로 가보았다. 박선호가 정인형, 안재송, 그리고 두 여자와 함께 앉아 있었다. 차 실장의 전달사항을 박선호에게 말해주었다. 박 과장은 두 여자를 내보내어주었다. 남 사무관이 안방 입구 쪽에 있는 부속실로 안내하여 기다리도록 했다.
 
 잠시 후 경호실장이 안방에서 나오더니 두 여자를 데리고 들어갔다. 두 여자는 실내화로 갈아신고 핸드백과 기타를 그곳에 놓아둔 채 살며시 들어왔다. 심수봉은 대기실에서 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이 언성을 높여 다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긴장했다. 처음 와 본 신양의 눈에 들어온 방은 한 여섯 평이 되는 온돌방이었다.
 
 한가운데 직사각형의 식탁이 놓여 있었고 뒤쪽으로는 십장생이 그려진 병풍이 펼쳐져 있었다. 그 옆으로 작은 진열장. 두 여자가 들어왔는데도 네 사람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심수봉은 대통령의 왼쪽, 신재순은 그 오른쪽에 앉았다.
 
 신양은 김재규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이날 가장 정확한 목격자가 될 수 있었다. 신양은 네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 심각하게 진행되자 긴장을 풀려고 식탁 위에 놓인 안주를 세어보았다. 꿀에 재운 인삼, 도라지 나물, 부침, 생채, 송이구이, 편육, 시바스 리갈 두 병, 선 담배 두 갑. 술상은 생각보다 조촐했다.
 
 대통령이 먼저 심수봉을 보고 한 마디 했다. {이 아가씨는 텔레비에서 많이 본 얼굴이고.} 신재순을 쳐다보면서는 {이 아가씨는 처음이군}이라 하더니 {예쁘게 생겼군. 이름이 뭐지. 나이는?} 하고 물었다.
 
 긴장한 신양이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통령은 심수봉에게 {본이 어디지?} 하고 물었다. 청송심씨인데 고향은 충청도라고 하자 대통령은 {충청도 놈?}하고 웃더니 {작고한 총무처장관과 같군}이라고 했다. 심의환 장관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대통령은 전날 심 장관의 부인에게 위로 편지를 써 집무실 금고에 넣어놓고 있었다. 10·26사건 후 대통령의 집무실을 정리할 때 발견된 이 서신에서 박정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었다.
 
 [인생은 원래 무상한 것이고 회자정리라고 하였으니 한번 왔다가 한번 가는 것은 정한 이치인 줄 알면서도 너무나도 홀연히 떠나시니 애석하고 허전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고인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가신 편지사연을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고인도 이 편지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지막 서신이라는 것을 영감적으로 느끼면서 썼으리라는 흔적이 구절구절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읽으면서 단장의 슬픔과 감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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