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양수 육군 정보국 전투정보과장은 6월15일쯤 장도영 국장에게 '남 침임박'을 강조하는 정보보고를 다시 한번 했는데 국장이 화를 냈다고 한다. 대강 이런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유 과장, 당신 보고는 말이야, 순수한 군사적 입장에서만 본다면 설득력이 있을 수 있어.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이 문제를 너무 강조하지 않는 게 좋겠어. 같이 근무하기가 곤란해.'.
다음날 유양수 과장은 6월26일자로 6사단 정보참모로 부임하라는 전 근명령을 받았다. 후임 과장은 발령이 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군은 6·25남침을 당했을 때 핵심중의 핵심인 전투정보과장이 공석이었다.과 장뿐 아니라 북한반장도 공석이었다. 북한반장 백모 대위는 그 며칠 전 자살했다.
백 대위는 그때 남북무역을 이용한 정보수집을 관장하고 있 었다. 무역업자를 지정하여 북으로는 약품과 차량부속품을 보내고 북으 로부터는 명태 같은 것들을 받아오면서 이를 기회로 삼아 북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백 대위는 이 일을 하다가 돈을 만지게 되 었고, 그 돈으로 외도를 한 사실이 밝혀져 다른 부대로 좌천되게 되었 다. 그 며칠 뒤백 대위는 육본 근처에 있던 김종필 중위의 하숙집을 찾아왔다.
2층방으로 올라온 백 대위는 김 중위에게 편지를 건네더니 계 단을 뛰어서 내려가는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든 김 중위는 따라서 내려갔다. 백 대위는 권총을 꺼내더니 심장 부위를 겨냥하고는 '김 중 위,나 간다'란 말을 남기고 방아쇠를 당겼다. 백 대위의 등 뒤 벽에 붙 어있던 거울이 산산소각나는 소리와 함께 백 대위는 쓰러졌다. 김 중위 가 그의 입과 코에 손을 대보니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때 잠 옷바람으로 있던 김 중위은 그대로 뛰쳐나가 육본을 향해서 달리기 시 작했다.
이 사건으로 북한반의 선임장교가 된 김종필 중위는 과장-반장이 공 석이된 상황에서 다가오는 인민군의 남침을 맨 앞에서 받아내게 되었다. 6월8일 포천 파견대 양문리 초소에서 '일단의 장교를 대동한 인민군 고 급지휘관이 전방 고지에 나타나 종일 정찰하다'고 보고해 왔다. 9일에 는 같은 현상이 동두천과 고량포 건너편 고지에서도 목격되었다. 전곡 지방 도로를 따라 차량행렬이 남하하는 것도 관찰되었다.
19일, 동두천 파견첩보대장 김정숙 대위는 전곡 -연천 사이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기 동하는 전차 수 대를 발견했다. 다음날엔 더 많은 전차군과 자주포군이 보였다. 6월22일 고량포 파견대장 김병학 중위는 '남천에 있던 인민군 1사단이 38선 바로 북쪽 구화리까지 남하했다'고 보고해 왔다. 도강용 주정이 강변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보고도 김종필 중위에게 들어왔다.이 무렵 작전정보실장으로 불리던 비공식 문관 박정희는 어머니의 1주기제 사를 지내기 위해서 구미로 내려갔다.
그는 떠나기 앞서 김종필, 이영 근 중위 등을 불러 놓고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구미 경찰서를 통해서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23일 24시를 기해서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은 인민군의 대규모 훈련(사실은 훈련으로 위장한 개전준 비)에 대비하여 78일간 유지해온 대북경계령을 해제하고 예하부대는 휴 가를 실시해도 좋다고 지시했다. 6월24일은 토요일이었다. 김종필 중위 는 오전 10시 장도영 국장에게 급박한 상황을 보고한 뒤 이렇게 말했다.
'적의 전면공격이 임박한 것 같습니다. 내일은 일요일이라 전방부대 에서 외출을 내보낼 텐데, 저는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듭니다. 뭔가 대비 를 해야 하겠습니다.'.
'응, 나도 동감이야. 일반 참모들을 데리고 갈테니 상황실에 브리핑 준비를 해두게.' 30분 후, 김종필 중위는 육본 인사국장 강영훈 대령, 작전국장 장창국 대령, 군수국장 양국진 대령, 고급부관 황헌친 대령, 그리고 장도영 정보국장 앞에서 '적이 기습을 한다면 내일 같은 일요일 의 미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 김종필은 긴급대책을 건 의했다.
'전군에 비상태세를 명령할 것. 대통령에게 긴급한 상황을 보고하고 정부의 대비를 건의할 것. 적의 주공로로 예상되는 동두천과 조공로로 예상되는 개성 정면에 강력한 정찰조를 침투시켜 적정을 확인할 것. 비 상경보망의 정비. 이 시간 이후 정보국과 작전국이 합동 근무반을 편성 하여 작전상황실에서 근무토록 할 것.'.
김종필 중위의 이 보고에 대해서 작전국장과 군수국장은 냉담한 반 응을 보였다. 다만 전방부대에 경계강화를 지시하고 장병들의 외출 외 박은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조절하도록 했다. 육본의 다른 참모들을 움 직이는 데 실패한 장도영 국장은 정보국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한다. 동두천과 개성의 전면에 결사정찰조를 침투시키기로 했다.
김종필 중위가 기안한 정찰계획에 따라 김경옥 대위가 인솔한 분대병력은 기관단총과 무전기를 휴대하고 심야에 개성 송악산 저쪽 기슭을 타면서 38선을 넘어갔다. 김정숙 대위가 인솔한 정찰조는 전곡을동쪽으로 돌아 연천으로 향했다. 두 정찰조는 38선을 넘어간 뒤 '적에게 발각되었다' 는 소식을 전하고는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김종필 중위는 24일 밤 정보국 야간 당직장교였다. 저녁 7시 그는 정 보국의 각 지구 파견대와 전방 4개 사단 정보참모에게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상황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밤 9시 옹진반도와 춘천에서 가벼운 총격전이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38선 일대에서는 호우, 서울에서 도 기온이 내려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김종필 중위는 '불안, 초 조, 그리고 야릇한 기대마저 뒤섞인 기분으로' 벽에 걸린 둥근 시계를 응시하곤 했다. 이 시간 육군본부 장교구락부에선 개관연회가 질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미 군사고문관들과 수도권의 국군 지휘관들이 참석했 다. 술과 춤과 여인들이 있었다. 장도영 국장도 이 파티에 끼였다가 자 정무렵에 관사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25일로 바뀌어 새벽 3시, 포천에 나가 있던 첩보파견대장이 김종필 중위에게 제1보를 전해왔다. '전차군을 동반한 대병력이 양문리 만세교 일대에서 공격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의 동시에 7사단 정보장교가 전화를 걸어왔다. '떨어집니다. 대구경포탄이 아군 진지에 떨어집니다. 전차도 밀려오고 있습니다.' 마른 침을 삼키면서 숨이 넘어가듯 절규하 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울리고 있었다. 김종필 중위는 '왔구나. 드디어 오고야 말았구나'라고 중얼거리면서 한동안 넋잃은 사람 모양 앉아 있 었다. (계속).
(조갑제 출판부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