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  조선일보  |  독립신문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라이트뉴스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기사 확대  기사 축소  

9·28수복후 '북진통일' 의견일치
 9·28수복후 '북진통일' 의견일치
 
 박정희 전투정보과장이 정보국 상황판의 적정지도에 나타나기 시작 한 중공군의 만주집결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던 1950년 10월은 한국 현 대사의 결정적인 순간과 순간의 연속이었다. 전쟁이 비참하면서도 매력 적인것은 외교가 수백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전쟁은 단 한번의 결전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이 운명의 10월에 이승만, 모택동,트루먼, 맥아더가 결심한 행동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과 조건 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박정희는 11년 뒤 이 네 거두가 만든 상황을 유산 으로 물려받게 된다.
 
 박정희는 6·25동란 이전에 고생을 미리 해서 그런지 이 전쟁에서 는 비교적 안전한 곳에 위치했다. 박정희가 남긴 전쟁 회고담을 살펴보 아도 전투와 관계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는 적의 포화나 총격에 직접 노출된 적은 거의 없었다. 1963년 10월 7일 제5대 대통령선거 기간중 진 주에서 한 유세에서 박정희 후보는 13년 전의 체험을 실감나게 설명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오늘 이 학교 운동장에 와서 앉으니까 육니오(6·25)사변 당시의 일을 회상하게 됩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께서 '임자가 비행기로 진주 방면으로 날아가서 진주가 현재 적의 수중에 있는지 아군의 수중에 있는 지 공중에서 확인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T-19라고 쪼맨한 비행기가 있습니다. 그 비행기를 타고 이 진주 상공에 서 돌았습니다.
 
 당시에 이 학교의 나무들이, 지금 플라타나스가 여기 저 기서 있는데, 현재보다 훨씬 더많은 나무가 서 있지 않았나 기억하고 있 고, 건물도 지금과 같은저런 건물이 아니라 붉은 벽돌 건물에 까만 기와 가 입혀져 있는 건물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상공을 돌다가 보니까 운동장에 까만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이는데 비행기가 저공으로 날아오니 까 놀라서 나무 밑으로 들어갔는지 이것을 좀 더 확인하기 위해서 저공 으로 내려가지고 학교 상공을 한 바퀴 도니까 바로 이 부근에 있던 어떤 플라타나스 밑에서 인민군의 기관총이 갑자기 다르륵 하고 올라왔습니다.
 
 제가 타고 있는 비행기 날갯죽지에 까만 구멍이 순식간에 네 귀퉁이로 뚫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차 하고 비행기 고도를 높여서 돌아가 보고를 했는데 '진주는 현재 적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고를 했습니다> 10월의 상황에서 이승만-맥아더는 동지였고 모택동은 외부의 적, 트루먼 은 내부의 방해자였다. 이승만과 맥아더는 서로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사 이였다. 같은 70대의 연배인 데다가 (이승만이 5세 위)기독교 정신에 입 각하여 공산주의를 악마의 교리로 보는 시각에서도 완전히 일치하고 있 었다.
 
 그는 14년 동안 미국 땅을 한번도 밟지 않고 아시아에서 군림했다. 맥아더는 필리핀과 일본을 관리한 경험에 입각하여 아시아는 아시아인에 의하여 지배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9·28서울 수복 바로 다 음날 총탄자국과 불탄 자국, 그리고 화약과 연기냄새 진동하고, 돔 천장 에서는 유리조각들이 떨어지고 있는 중앙청에서 환도식이 열렸다.
 
 도쿄에서 날아온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참석자들과 함께 기 도한 뒤 남한의 행정권을 노대통령에게 이양했다. 맥아더가 며칠전 워싱 턴에 행정권 이양문제를 타진했을 때, 이승만을 공산주의자보다도 더 싫 어했고 신탁통치를 검토하고 있던 국무성 관리들은 '그런 결정은 상부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반대했다. 맥아더는 '본인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한국정부가 전쟁중에 언제 사라진 적이 있었던가'라고 일 축했다. 환도식 직후 별실에서 이승만과 맥아더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배석했던 정일권 육군총참모장의 증언이다('정일권회고록').
 
 '(맥아더)장군, 38선 돌파를 주장해온 장군의 굳은 의사를 믿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군사상의 추적권은 승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국군은 내일 38선에 도달합니다. 그 추적권을 인정해주시기 바랍 니다.' '대통령 각하, 이틀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김일성에게 항복을 권고할 작정입니다. 이에 불응하니까 38선을 돌파할 수밖에 없다 는 형식을 취할 작정입니다.'.
 
 '하지만 사기충천한 현지 부대가 무슨 실수를 저지를지 모르는데 그것은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지부대가… 알았습니다.'.
 
 맥아더는 야릇한 암시가 숨어 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다 음날 이대통령은 육군의 수뇌부를 경무대로 불렀다. 그는 손자뻘 되는 30대초반의 장성들에게 꾸중하듯이 물었다.
 
 '정일권 총장, 미국 쪽인가한국 쪽인가. 국군 3사단과 수도사단이 38선에 도달했는데 왜 북진명령을 내리지 않는가.' '38선 때문입니다.'.
 
 '38선이 어찌 되었다는 것인가. 무슨 철조망이라도 쳐져 있다는 것 인가.넘지 못할 골짜기라고 있다는 것인가.'.
 
 이대통령은 강문봉 작전국장, 장도영 정보국장, 황헌친 인사국장, 최경록 헌병사령관에게 일일이 의견을 물었다. 모두 '명령만 내려주십시 오'였다.
 
 '여러분의 의견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나는 맥아더 장군에 게 우리 국군의 지휘권을 맡기기는 했으나 내가 자진해서 한 것입니다. 따라서 되찾아올 때도 내 뜻대로 할 것입니다. 그러한 즉, 대한민국 군 인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령만 충실히 지켜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대통령은 책상에서 종이 한 장을 집어들어 정일권 총장에게 주면 서 말했다.
 
 '이것은 나의 결심이오 나의 명령입니다.' 종이에는 붓글씨로 이렇 게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 국군은 삼팔선을 넘어 즉시 북진하라. 일구오○연구월 삼십일 대통령 이승만'.
 
 그때 3사단(사단장 이종찬)은 포항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하여 패주 하는 인민군을 하루 20㎞의 속도로 추격, 강원도 양양남쪽에 당도해있었 다. 장벽도, 철책선도 없는 지도상의 38선에 묶여 북진명령이 떨어지지 않자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들이 흥분했다. 하사관들은 분대원들을 데 리고 38선이라 표시된 흰 선을 들락거리면서 밟아 뭉개고 있었다.
 
 군화 바닥이 다닳아질 정도로 발을 구르기도 했다. '38선이 다 뭐냐'면서 총 개머리판으로 땅을 꽝꽝 찧는 군인들도 있었다. 열광된 현장의 분위기에 물든 정일권 총장은 '10월 1일 오전 11시 30분을 기해 38선을 돌파, 북 진을 개시하라'는명령을 김백일 1군단장에게 내린다. 그 전에 이미 3사 단 23연대 3대대(대대장 허형순)는 38선 북쪽 12㎞까지 진출해 있었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기사목록  프린트하기 

조선일보 | 스포츠조선 | 주간조선 | 소년조선 | 여성조선 | NK조선 | IT조선 | 잡지DB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 오피시아 1729호  |  대표자 : 조갑제  |  사업자등록번호 : 101-09-63091
상호 : 조갑제닷컴  |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동현  |  전화번호 : 02-722-9411~3  |  팩시밀리 : 02-722-9414 |
    개인정보취급방침

발행인 : 조갑제 | 편집인 : 조갑제 | 등록번호 : 서울아00945 | 등록일 : 2009/08/24 | 국민은행 360101-04-065553(예금주: 조갑제닷컴)
webmaster@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