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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11월 첫부인 김호남과 이혼
 50년11월 첫부인 김호남과 이혼
 
 육영수와 재혼하기로 결심한 박정희로서는 조강지처 김호남이 가출한 뒤 아직 호적이 정리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조 카 박재석에게 또 독촉했다. 박재석은 그 전에 몇번 김호남의 친정으로 가서 사정을 해보았지만 번번이 퇴짜였다. 박재석은 그날은 '결판을 내 야겠다'고 결심하고 자전거를 타고 선산군 도개면에있는 박정희의 장인 김세호를 찾아갔다. 큰 절을 올린 뒤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이혼도장을 찍어주셔야겠습니다.'.
 
 김세호가 거절하자 박재석은 야무지게 나왔다.
 
 '법적으로도 가출하여 1년이 지나면 이혼이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도 장을 안찍어주시면 김씨 집안에 관한 소문이 나쁘게 날 겁니다. 따님은 이미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던데요.'.
 
 김세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쌈지를 열고는 나무도장을 꺼내 박재석에게 던져주었다. 박재석은 가져 간 서류를 내놓고 '어르신 네가 직접 찍어주십시오'라고 들이밀었다. 김세호는 눈물을 지으면서 도 장을 꾹꾹 눌렀다. 1950년11월1일자로 호적이 정리되었다. 박정희와 김 호남은 호적상 9년간 부부였으나 한 지붕에서 살았던 것은 1년도 채 되 지 않았다. 1948년에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와 대구로 가서 살던 큰 딸 박재옥은 6·25동란이 터지자 경주로 피란갔다. 그때 열두살이던 재옥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전 우리 집으로 갈래요. 저 사람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잖아요. 제게는 아버지가 계신데 여기 있을 수는 없어요.'.
 
 박재옥은 '독하게'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선산의 외갓집으로 갔 다. 자상한 외할머니는 고집쟁이 손녀를 귀여워해주었다. 보름 뒤 박재 옥은 다시 사촌오빠 박재석의 집으로 보내졌다. 비로소 박재옥은 안정을 찾고 국민학교 5학년부터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 시작했다.
 
 충청도와 경북지방의 산중에서 9사단이 인민군 패전병을 상대로 한 소탕작전을 벌임에 따라 11월22일 사단 사령부는 대전에서 대구로 이동 했다. 박정희는 새 장가를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재물에 대해서 결벽증 이 있는 그로서는 스스로 나서서 결혼경비를 마련하기가 어려운 형편이 었다. 어느 날 박정희는 군수참모 김재춘 령에게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김형, 이제 중신도 했으니 결혼도 시켜주어야지.'.
 
 그래 놓고는 한참 있다가 침울하게 말했다.
 
 '김형, 그런데 나, 아무것도 없어.' '아, 예, 알겠습니다.'.
 
 김재춘은 풍족한 집안 배경을 갖고 있었다. 김재춘은 직속상관의 결 혼에 필요한 돈을 모으면서 식장준비도 했다. 박정희의 대구사범 동기 생들도 김중령과 함께 결혼준비를 도와주었다. 교육계에서 활약하고 있 던 두용규와 이성조가 중심이 되어 청첩장, 예물준비, 식장물색에 나섰 다.
 
 뒤에 경북교육감을 지낸 이성조의 증언--.
 
 '피란을 와서 고생하고 있는 정희를 돕자는 뜻에서 대구에 사는 동 기생들은 거의 다 모였을 겁니다. 마침 은사 김영기 선생이 대구에 계 셔서 축사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정희와는 만난 적이 없지만 허 억 대구시장을 주례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결혼식 날을 기다리던 육영수는 이즈음 재봉틀을 돌릴 때나 바느질 을 할때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뒤 육영수 집안에서 유명해진 그 노래 의 가사는 이러했다.
 
 '검푸른 숲속에서 맺은 꿈은 / 어여쁜 꽃밭에서 맺은 꿈은 / 이 가 슴을 설레어라 / 첫 사랑의 노래랍니다 / 그대가 있었기에 그대가 있었 기에 / 나는 그대의 것이 되었답니다 / 그대는 나의 것이 되었답니다'.
 
 박정희는 육영수에게 결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딸 재옥의 존재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육영수는 차마 아버지 육종관한테 는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치밀한 육종관은 박정희의 호적을 떼 보 고는 더욱 거세게 딸을 말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경령, 육영수 두 모녀 는 육종관으로부터 결혼 허락을 받지 못하니 이미 날을 받아놓은 사실 을 알릴 수도 없었다. 며칠을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가 어느 날 이경령 이 남편에게 넌지시 귀띔했다. 시인 박목월은 '육영수 여사'에서 그 직 후에 있었던 부녀의 대화를 이렇게 재구성했다.
 
 ''집안을 알아보았느냐.' '아뇨.'.
 
 '이 난리판에 군인에게 시집을 가다니 될 법이나 한 소리냐.' '….' '잘 생각해봐라.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그만두도록 해라.'.
 
 다소곳이 앉아서 듣고만 있던 작은 아씨가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아 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 군인으로 그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다 제 운명 이라 생각하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어요.'.
 
 육종관은 딸을 설득할 수 없자 '너네 멋대로 해!'하고는 방을 나왔 다.'.
 
 그 며칠 뒤 송재천 중위가 군용트럭을 몰고 와서 이경령의 집 대문 을 두드린다. 육영수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모녀는 육종관한테 차마 결혼식을 올리러 간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육영수의 동생 예수가 나섰다. 아버지한테 다가갔다.
 
 '예수야, 너도 네 언니 결혼식에 갈테야?' '그럼요, 언니 들러리를 서기로 했는 걸요.' '너네 멋대로 해! 넌 오늘부터 내 딸도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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