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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절 외면… 박도 끝까지 불손하게…
 큰절 외면… 박도 끝까지 불손하게…
 
 육영수는 9사단 참모장 박정희 중령이 장인 육종관에게 정식으로 인사하러 오는 날 이질 홍정자, 송재관 등 집안 아이들을 문밖에 세 워 두었다. 박정희는 운전병이 모는 지프차를 타고 나타났다. 철모 에 카빈소총을 맨 부관을 앞세워 바짝 마른 박중령이 들어왔다. 부 관은 걸을 때 철모가 흔들거려 아이들은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박중령의 전투복 상의 양어깨엔 초록색의 지휘자 견장이 붙어 있었다. 멋을 낸 차림이었다. 아이들의 안내로 대궐 같은 집에 들어 선 박정희는 안채의 대청마루로 올라서 이경령의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이런 일에는 유달리 호기심이 많은 부인네들과 아이들은 옆 방으로 들어가서 미닫이 문을 닫고 틈새로 눈과 귀를 갖다 댔다. 육 영수의 외가쪽 동생인 송재관은 마루에서 왔다갔다하면서 문틈으로 두 사람을 지켜볼 수 있었다.
 
 '먼저 박정희씨가 저의 외삼촌(육종관)에게 큰 절을 하면서 '안 녕하셨습니까'하고 인사를 했지요. 외삼촌은 절을 대충 받았지만 눈 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사윗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역력했어요. 외삼촌께서는 상대가 잠시 다른 쪽으로 눈길을 줄 때 는 날카로운 눈매로 그 사람을 싹 훑어보는 특기가 있었는데 그날도 그러셨을 거예요.'.
 
 이때까지만 해도 육종관은 딸이 자기 몰래 박정희와 약혼식을 올 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육종관은 박정희에게 형식적인 질문 만 몇 차례 던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엿보고 있던 송재관은 자신 의 눈을 의심했다. 박정희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오른쪽 무릎을 반쯤 세우고는 그 위에 오른 팔을 걸쳐 놓은 '불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 는 것이 아닌가.
 
 '저는 지금도 매형이 왜 그때 그런 자세로 앉아 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외삼촌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마음의 문을 닫은 듯 합니다.'.
 
 육종관은 박정희에게 매정하게 말했다.
 
 '요사이 군인들이 얼마나 끼가 많은가. 서른네살까지 총각이 어 디 있나. 좀 더 알아봐야겠네.'.
 
 '일이 꼬이는구나'하고 직감한 송재관이 박정희를 보니 박정희는 육종관의 말에 고개만 주억거리면서 라이터를 꺼내더니 손장난을 치 는 것이었다. 라이터 뚜껑을 닫았다가 덮었다가 하는 '또각 또각'소 리만 어색한 방안 공기를 깨고 있었다. 육종관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이 '그럼 잘 놀다 가게'라며 방을 나왔다. 그날 박정희는 저녁을 잘 대접받았다. 잠자리로는 육영수의 동생 예수 방을 썼다. 박정희 가 저녁상을 물리자 육영수는 예수를 앞세워 그 방으로 들어갔다.육 영수는 다소곳이 앉아 박정희가 묻는 말에 대답만 했다. 육예수는 그런 언니의 수동적인 모습에 다소 불만이었다. 박정희 일행이 다음 날 새벽에 집을 떠나자 육종관은 본처 이경령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태도가 그게 뭐야. 라이터를 찰칵거리지를 않나 꽁초까지 피우지도 않고 장초를 끄질 않나….'.
 
 육종관의 주된 불만은 박정희의 집안 내력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딸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타인에게 항상 공손한 박정희가 육종 관에게 보인 의외의 모습은 그의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리라. 아버지 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녀가 참석하여 비밀 약혼식까지 올린 마당에 육종관의 반대란 활을 떠난 화살을 논하는 격이라고 그는 판단했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런 배짱을 품고 육종관의 영토를 야금야금 잠식 해간다. 대전의 9사단 사령부에서 박 참모장과 같이 근무했던 작전참 모 손희선 중령은 박정희가 '툭하면 저녁에 사라졌다가 아침에 돌아 오곤 했다'고 기억한다. 박정희를 누이뻘 되는 육영수에게 소개했던 송재천 중위는 이때 박정희의 직속부하인 군수참모 김재춘 중령 밑에 서 일하고 있었다. 송재천은 박정희가 워낙 내색을 하지 않아서 두 사람의 사이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눈치가 빠 른 김재춘은 박정희가 거의 매일 옥천에 다니러 가는 것을 보고는 곧 결혼까지 가겠구나 하는 판단을 했다.
 
 육예수는 언니를 자주 놀렸다.
 
 '아유, 새까매. 언니는 눈이 삐었어? 뭐가 그리 볼 게 있어? 지금 까지 기다렸는데 겨우 저런 사람한테 시집가려고 해?'.
 
 육영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애. 저 사람은 뭐 좀 다르지 않니? 난 뭔가 끌 리는 데가 있더라.'.
 
 이즈음 육종관은 자기 집에 뻔질나게 나타나는 박정희를 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 어느날 육종관은 이경령과 육영수가 있는 데서 들으라는 듯이 힘주어 말했다.
 
 '9사단 참모장 정도면 내가 잃어버린 닛산 차 정도는 찾아올 수 있을 거야. 거 조금만 신경쓰면 찾아온다고. 유능한 사람이면 부하들 을 시켜 찾아올 수 있다고.'.
 
 해방 직후 귀국하는 일본군이 주고 간 닛산 트럭을 피란중에 인민 군이 몰고가버린 것을 자동차 수집광인 육종관은 두고두고 원통해하 고 있었다. 육영수는 아버지의 이 소원을 박정희에게 어렵게 이야기 한 것같다. 며칠 뒤 육종관은 대문 앞에 갖다 놓은 닛산 트럭을 발견 한다. 박정희는 수송부대를 시켜 폐차 직전의 고물 차를 하나 구해서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육종관의 기대는 이 고물을 보는 순간 실망 으로, 다시 분노로 바뀐다.
 
 '아니, 걔가 성의만 있으면 싹 손보고 가져다 줄 수 있는 거잖아. 군인들은 부속품이 공짠데 이 고물을 나보고 손 보란 말이지. 하여간 결혼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니깐.'.
 
 어느 토요일 점심 때 육영수는 송재관을 부르더니 '오늘 박 중령 이 올 거니까 동생이 나가서 좀 봐'라고 했다. 잠시 후 박정희가 도 착하고 두 사람은 송재관을 차에 태웠다. 차중에서 박정희는 '천렵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오리티 강가로 가자고 했다. 박정희는 고기를 잡으러 간다면서 어디서 났는지 수류탄을 들고 강물로 다가가서 안전핀 을 뽑아 던졌다.
 
 폭음과 함께 물기둥이 솟아 올랐다. 또 한 발 투척. 포말이 사그러들더니 죽은 물고기들이 허옇게 떠올랐다. 운전병과 송 재관은 열심히 고기를 건져 담았다. 송재관이 길위를 올려다보니 박 중령은 두 다리를 떡 벌린 채 양손을 허리춤에 괴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육영수가 함박웃음을 웃고 있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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