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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장 '박정희 그사람 인물이야'
 이 총장 '박정희 그사람 인물이야'
 
 육군총장 비서실장 안광호 대령은 새벽 3시쯤 이종찬 총장을 관사로 찾아가 참모회의의 결정을 보고했다. 이 총장은 '오늘 현재 육본의 결심 은 변함이 없다고?'라고 반문하더니 웃더라고 한다. 안광호는 '그 참모 회의를 누가 소집했고 누가 2개 대대의 부산파병을 제안했을까. 왜 이용 문 작전국장은 참석하지 않고 박정희 차장이 대신 참석했을까'하는 궁금 증을 지니고 다녔다. 그는 이종찬 중장과 함께 미국 참모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는데 그때 물어보았다.
 
 '그 회의는 누구의 발상이었습니까.'.
 
 이종찬은 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고 '박정희 그 사람 인물이야' 라고 했다. 안광호가 '동감입니다'라고 했더니 이 총장은 '어떤 점이 그 렇더냐'고 되물었다.
 
 '그날 밤 박정희 대령의 표정을 보니 그가 '명령만 내리시면 가능합 니다'라고 답할 때나 유재흥 차장이 '부산파병은 안된다'고 결론을 내릴 때 흔들림이 없더군요. 저는 박정희는 청탁을 같이 들여마실 수 있는 큰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봤네.'.
 
 이 참모회의에 참석했던 김종평 정보국장은 '그 회의를 소집한 사람 은 박정희 대령이었다'고 증언했다. 파병문제가 의제였으니 작전국장을 대리한 박정희가 회의를 소집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당시 이승만을 실각시킬 목적의 군대동원에 대해서는 이종찬-이용문-박정희 세 사람이 핵심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작전과장 유원식 중령은 박정희 대령의 지 시를 받아 실무적으로 참여했다. 이날 회의에 이종찬, 이용문은 참석하 지 않았다. 박정희는 의제만 상정해놓고 회의에서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 는 입장을 취했다. 대령으로서는 회의를 주도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박정희가 단독으로 이런 중대한 회의를 소집했을 리는 없다. 그는, 이용문 국장이든 이종찬 총장이든 상부의 지시를 받아서 했을 것 이다.
 
 파병이 결의되려면 이종찬 총장의 적극적인 의사표시가 있어야 했 는데 이날 그는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렇다면 이용문 국장이라도 총대를 메야 하는데 그는 자리를 피했다. 이 국장은 아마도 박정희 대령 으로 하여금 의제를 상정시켜 참모회의의 분위기를 떠보려 했을 것이다. 그날 밤 참모회의 의장이 된 유재흥 차장은 그 며칠 전(5월30일)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했다가 대통령으로부터 심각한 이야기를 듣고 나온 사람이 었다.
 
 '육본에서 지금 흥사단 사람들(평안도 인맥을 지칭)이 반역을 꾀하 고 있어. 최고사령관인 대통령에게 항명한 이종찬 총장을 포살해야 돼.' 불발로 끝난 이날 참모회의는 박정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그때 육본이 2개 대대를 부산으로 파견하여 '이승만의 계엄군' 헌병2개 중대를 접수해버렸다면 거의 틀림없이 정권은 무너졌을 것이다. 야당을 탄압하던 물리력이 사라지면 국회가 정상화되어 간선으로 장면을 차기 대통령으로 뽑았을 것이다. 미국측도 그런 군사개입이 신속하게 충돌없 이 성공하면 그 결과를 기정사실로 추인해버렸을 것이다.
 
 그때 육본은 최소한의 병력으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 있었고 그 상황의 한복판에 박정희가 있었다. 박정희는 이때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그 뒤 한번도 언급하지 않고 무덤까지 갔다. 훗날 닉슨 미 대통 령이 자신의 전화를 자동적으로 녹음하도록 했다가 워터게이트 사건 때 이게 약점이 되어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도록 법원의 명령을 받아 혼이 나 는 것을 본박정희는 경멸조로 말했다고 한다.
 
 '닉슨, 그 자는 회고록 쓸 일이 있었나.'.
 
 '회고록을 쓸 자료를 모으기 위하여 녹음을 했는가'란 말인데 박정 희는 회고록을 쓸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개조된 대한민국이 바로 자신의 회고록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육본심야회의 며칠 뒤인 6월4일 미국정부는 이승만에 대한 입장을 바꾼다. 이날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주한미대사관에 보낸 전문에서 이런 요지의 지시를 했다.
 
 <이승만이 계속 대통령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미국과 유엔의 이익과 합치된다고 우리는 결론내렸다. 이승만이 직접선거에 의해서 뽑혀져야 그는 국내외에서 더 강력한 지지기반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장택상 총리와 협조하여 총리가 제안한 타협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하라.>.
 
 '장택상의 타협안'이란 이승만측이 제안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과 야당이 제안한 내각제 개헌안 중 직선제와 국회의 통제강화 부분을 발췌 하여 만든 제3의 개헌안을 가리킨다. 사실상 직선제 개헌안이나 다름 없 었다. 미국정부의 이승만 지지는 6월4일 애치슨 국무장관이 국무부와 합 동 참모본부의 합동회의를 주재한 뒤 결정한 것이다. 이 결론은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장군을 비롯한 군부의 견해를 많이 반영했다.
 
 요컨대 유 엔군이 직접 이승만제거에 나서는 방안은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갖고 있 고 우선은 미국 대사관과 미군이 '객관적 중재자'의 입장에서 이승만과 야당 사이의 타협을 모색하도록 한 것이다. 이 타협이란 이승만의 재집 권을 가능케 할 발췌개헌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미국정부의 태도 변화 에 따라,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던 이용문-박정희 계열과 미국에 희망을 걸고 있던 야당 세력은 배신감을 느끼게 되지만 자력돌파가 불가능한 그 들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국 출장에서 부산임시수도로 귀임한 무초 주한 미국대사는 6월6일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하고 계엄령의 해제를 요구하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다시 전달한 다음날 신익희 국회의장을 찾아갔다. 무초는 그때까 지의 야당지원 자세에서 돌변, '이제는 양쪽이 조금씩 양보할 때이다'라 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세가 자기 편으로 기울었음을 간파하고 더욱 강공으로 나왔다. 6월12일 친여단체가 주최하는 '반민족 국회해산 국민총궐기 대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시위 군중은 국회를 '외세(미국) 의 앞잡이'라고 규탄하고 '외국에 의한 내정간섭의 배격'을 외쳤다. 군 중은 미대사관 건물과 경남도청 건물에 돌입하려고 했으나 저지되었다. 주한 미 대사관에선 '이승만 재선'을 눈감아주는 대신, 경찰력을 동원하 여 이승만의 정치 공작을 도와주고 있다고 판단되는 이범석 내무장관을 반미 강경파로 규정, 그와 족청(민족청년단) 세력을 이승만으로부터 떼 내는 정치공작을 시작한다. 미국은 이를 '이승만 정권의 순화'라고 개념 규정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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