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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령 '병력동원 명령만 내린다면…'
 박대령 '병력동원 명령만 내린다면…'
 
 이승만의 재선을 저지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군은 한국군이 이승만에 의해서 계엄군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측에 대해 부산정치파동 이전부터 공작을 해왔다. 밴 플리트는이승만에 대한 미국측의 거부감을 내비치면서 쿠데타 가능성도 타진한 것으로 보인다. 이종찬은 '밴 플리트의 진심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서 관망하는 태도였 지만 이용문 작전국장은 달랐다.
 
 그는 '미군이 이승만 제거를 원하고 있 다'고 해석하고 '미국이 이승만에 대한 지지를 사실상 철회한 지금 2개 대대 정도의 병력만 있으면 간단하게 이승만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국회에 서 장면을 차기대통령으로 뽑도록 도울 수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용문의 보좌관격인 박정희 대령도 강경론이었다.
 
 김종평 정보국장을 비롯한 육본 참모들도 대체로 반 이승만 성향을 보였다. 이들 장교는 6·25초전에 있었던 이승만의 '서울사수' 거짓방송, 1·4후퇴 때 수만 명을 얼어죽고 굶어죽게 만든 국민방위군 사건, 7백여 명의 양민을 공비로 몰아 학살한 거창사건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다. 이용문과 박정희는 전전부터 이승만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이용 문-박정희의 강경론에 밀린 이종찬 참모총장은 한때는 미국측에 대해 적 극적으로 한국군의 쿠데타계획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타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종찬 총장은 그러나 미국의 지원없이도 쿠데타를 감행할 인물 은 아니었다.
 
 6월1일 라이트너 미국 대리대사는 국무부에 전문을 보낸다. '필요한 때는 유엔군이 부산에 직접 계엄령을 선포하여 이승만을 예방적으로 구 속하고 부산의 한국군과 경찰을 접수하는 계획을 수립해줄 것을 건의한 다.이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은 거의 없다. 질서는 단기간에 회복될 것이 다. 이승만이 저항을 선동할 일정한 힘은 갖고 있지만 새 대통령이 선출 되면 교육을 받은 층에선 그를 받아들일 것이며 수동적인 대중도 별다른 말썽을 부리지 않고 따라갈 것이다.
 
 대리대사가 말한 '교육받은 층'이 란 미국식 민주주의교육을 받은 층을 가리킨다. 6월초는 이승만에게는 피를 말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미군이 곧 계엄령을 선포하여 야당을 이승만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것이란 소문이 부산 정가에 나돌 아 숨어 다니던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용기를 갖도록 했다. 야당의원들의 신변을 미군이나 국군이 보호해줄 수 있다면 국회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 될 것이고 이승만 정권은 끝나는 것이다.
 
 이 무렵 육본에서 심야참모회의가 열렸다. 증언자 안광호(육군준장 예편,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 역임·작고)는 당시 총장 비서실장이었다. 안광호의 부친 안병범은 일본육사출신으로서 6·25남침 직후 서울을 빠 져 나오지 못하고 인왕산에서 할복자살했다. 안씨의 두 동생도 전사했다. 안씨는 문제의 심야 참모회의가 열린 날을 계엄령 선포 1주일 뒤인 6월1, 2일경으로 기억했다. 총장 전속 부관 유병일 중령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 어와 육본 회의실로 나가니 참모들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이종찬 총장 과 유재흥 참모차장은 보이지 않았다. 이종찬 총장은 5월28일 이승만 대 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뒤에는 관사에서 칩거중이었고 유재흥 차장이 대리하고 있었다. 안광호의 생전증언-.
 
 <이상하게도 이용문 작전국장은 보이지 않고 박정희 차장이 대신 참석했다. 유병일 부관이 나에게 의제를 설명해주었다. 후방에서 공비토 벌 임무를 맡고 있는 2개 대대를 부산으로 보내 원용덕의 헌병대 병력을 견제하자는 것이었다. 아주 간단한 병력이동 같았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 를 빚을지는 모든 참모들이 잘 알고 있었다. 이승만이 유일하게 의존하 고 있던 헌병대가 무력화되면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에 의해서 이승만 대 통령은 실각할것이다.
 
 내가 회의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논의가 상당히 진행된 것 같았다. 투입 병력의 지휘관으로 박경원, 이용 같은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내 느낌으로는 회의의 대세는 파병하는 방향으 로 기운 것 같았다. 나는 퍼뜩 이종찬 총장을 생각했다. 그분의 지론이 군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오늘 회의는 친위 쿠데타를 견 제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쿠데타를 감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모들은 날 보고 이종찬 총장 대신 유재흥 차장을 참모회의 의 장으로 모시고 나오라고 했다. 그때가 밤2시쯤. 나는 대령이고 그는 소 장이었지만 우리는 친구 사이였다. 나의 선친과 그의 선친 유승열 장군 도 친구였다. 나는 유재흥 차장을 지프에 태워 육본으로 가는 차중에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유재흥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물었 다.
 
 나는 이런 요지의 설명을했다. '잘하면 혁명이 될지는 모르겠다. 성 공여부는 일선의 사정에 달려 있다. 군단장 사단장급이 반발하면 수습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전쟁수행에 차질이 생긴다. 성공해도 군이 혁 명했다는 오점을 남긴다. 미국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밴 플리트 가자주 이종찬 총장을 찾아오긴 했지만 이렇다 할 언질을 준 것은 없다.' 이런 내 의견을 듣더니 유 차장이 말했다.
 
 '안 대령, 그러면 이러면 어떨까. 군의 정치 불개입을 선언한 지난 5월26일 현재의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나는 '그게 좋겠다'고 찬동했다.유재흥 차장이 참모회의장에 들어가 더니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김종평 정보국장이 의제를 설명한 뒤 '작전 참모도 가능하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사참모는 일 선장병들의 사기나 군기(군기)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신속하게 치러져 야 하는데 그 판단은 인사참모가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유 재흥차장이 이용문 작전국장을 대리하여 작전참모로 참석한 박정희 대령 에게 물었다. 박 대령은 싱긋이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 문제는 상부에서 결심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한다면 지장이 없게끔 수배는 됩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박 대령의 그 묘한 웃음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군수참모는 '그 문제는 G2(정보), G3(작전)에서 결정할 문제이지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물으니 어느 참모도 '꼭 해야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참모들의 의견을 다 들은 다음 유재흥 차장이 말했다.
 
 '그러면 육본의 태도를 분명히 하겠다. 오늘 현재 육본의 결심엔 변 동이없다.' 회의를 마치고 나가는데 김종평 국장이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안 대령, 잘 됐수다'라고 했다. 나는 '잘 됐수다'란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그날 회의는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무 거운 분위기였고 국가의 운명이 이 자리에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모 두 갖고 있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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