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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용공조작엔 5열이 약방의 감초'
 박, '용공조작엔 5열이 약방의 감초'
 
 1960년 이른 봄 군사혁명을 모의하고 있던 군수기지사령관 박정희 소 장을 가깝게 관찰한 사람 가운데는 소설가 이병주도 있었다.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있던 그는 부산일보 황용주 주필과 함께 부산언론의 논조를 이끌고 있었다.
 
 <처음 그를 본 것은 경상남도 도청의회 회의실에서다. 무슨 일이었던 가는 기억할 수 없는데 신도성 도지사가 기관장 회의를 소집했고 나는 사 장을 대리하여 참석했다. 회의가 시작되기 얼마 전 여윈 몸집으로 작달막 한 군인이 육군 소장의 계급장을 달고 색안경을 쓰고 가죽으로 된 말채찍 을 든 채 회의장에 들어섰다.
 
 도지사와 인사를 나누고 도지사가 지정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곤 회의장을 둘러보는 듯하더니 후다닥 일어나 서 휙 하고 나가버렸다. 회의가 시작되었는데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후 도지사에게 물어보았다. 신도성이 쓴 웃음을 띠고 한 대 답을 요약하면 그는 박정희 소장인데 자리가 도지사석과 시장석과는 먼 말석인 것이 불만이어서 화를 내고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대통령들의 초상').
 
 이병주는 그 뒤 박정희, 황용주, 조증출(대구사범 동기·의사)과 함 께 더러 술자리에서 어울렸다. 국제신보 군출입기자 설영우가 이병주의 논설에 동감과 관심을 보이는 박정희에게 한번 만나볼 것을권해서 이루어 진 자리가 그 뒤로도 이어졌다고 한다.
 
 <술자리에 앉기만 하면 나에게 던지는 그의 첫 말은 다음과 같았다. '이 주필, 나라가 이래 갖고 되겠소?' 그런데 이것은 묻는 말이 아니고 자기의 자세를 다지는 일종의 제스처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황용주에게 대한 첫 말은 '어때, 부인 잘 계시나'였다. 이렇게 한 마디 해놓고는 별 반말이 없다. 묵묵하게 잔을 비우고 있는 사이 사이 간투사를 닮은 말이 끼일 뿐이다.
 
 '부정선거를 하느니 차라리 선거를 하지 말지'. 그리곤 잠 깐 말을 끊었다가, '이놈 저놈 모두 썩어빠졌어' 하고 혀를 찼다. 그러다 가 뜬금없는 말이 튀어나온다. '학생이면 데모를 해야지. 이왕 할 바엔 열심히 해야지.' 마산사건에 제5열이 섞였다고 정부가 발설했을 때이다. 여느 때처럼 '이 주필, 나라가 이래 가지고 되겠소' 해놓곤 대뜸 시작했 다.
 
 '도대체 5열이란 게 뭣고. 5열이 약방의 감초가? 감당 못할 사건이 생 기면 5열이 튀어나와. 5열이 어딘가에 대기하고 있다가 자유당이 필요로 하겠다 싶으면 출동하는 모양이지. 국민을 편하게 할 방도는 생각하지 않 고 생사람 죽일 궁리만 하고 있으니 원!' 박정희 소장은 대개 묵묵했지만 입을 열었다고 하면 나라 걱정이고 민족 걱정이었다. 그는 공기를 호흡하 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애국애족을 호흡하고 있었다.>.
 
 자유당 정권이 제4대 정부통령 선거날짜를 1960년3월15일로 정한 것 은 3월26일이 이승만 대통령의 만 85세 생일이란 것과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자유당의 온건파를 이끌고 있었던 이재학 국회 부의장의 증언 에 따르면 자유당 강경파는 '노인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 탄신일 이전 에 당선시켜 드린 다음 탄신일을 거족적인 축일로 하자'고 조기선거를 밀 어 붙였다는 것이다. 2월15일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미국 월트 리 드 육군병원에서 서거했다. 이로써 이승만 후보는 단일 후보로 사실상 당 선이 확정되었다. 문제는 자유당의 이기붕과 민주당의 장면간의 부통령 선거였다.
 
 자유당 강경파에선 연로한 이승만 대통령이 유고가될 경우 대 통령직을 승계하게 되어 있는 부통령직에는 반드시 이기붕을 당선시켜 놓 아야 안심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유당은 최인규 내무장관과 이강학 치안국장 지휘하에 행정과 경찰조직을 총동원한 전국적인 부정선거를 획책하게 되었다.
 
 이재학의 증언에 따르면 이승만은 경무대를 찾는 자유당 간부들에게 하는 당부가 '공명선거 부탁뿐이었다'고 한다. 이재학은 지역구인 강원도 홍천에 내려와 보고는 깜짝 놀랐다. 경찰서장의 진두 지휘하에 투-개표부 정 작전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이 의원이 '당장 취소하라'고 해도 서장은 난색을 보였다.
 
 '치안국장이 '나의 육성으로 변경을 명령하기 전까지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밀어붙여라'고 했으니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권력자가 하나를 하라고 하면 아랫 사람은 열 개를 알아서 하려는 이 과잉충성은 조선왕조에서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거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끈질긴 정치문화이다. 권력자가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은 권력자를 위한다면서 열심으로 무리하는 아랫사람을 제어하는 일인데 그 런 아부자는 실은 권력자를 위한다면서 사익을 챙기고 사원을 갚는 경우 가 대부분이다.
 
 군대도 부정선거 공작에 휩쓸렸다. 육군참모총장 송요찬 중장은 비리 의 온상이던 후생사업을 금지시키고 미국의 선진 행정기술을 도입하는 등 공이 많았으나 부정선거 공작에 앞장서는 실수를 범함으로써 4·19뒤의 혼란기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군에서 밀려난다. 박정희군수기 지사령관은 육본으로부터 내려오는 부정선거 지시에 협조하지 않았다. 3 월어느 날 작전참모 김경옥(준장 예편, 주일대사관 공사 역임) 대령은 방 첩대장 모 대령과 함께 사령관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부관 손영길 대위가 투표통지서를 가져와서 박정희 사령관에게 드렸다. 박정희는 용지 를 받아들더니 '이 따위 투표는 해선 뭘해'라면서북북 찢어 내버렸다. 김 경옥은 방첩대장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상부에 보고하지 말 것을 당부 했다. 그 대신 자신이 나서서 장병들에게 기권방지 운동을 하겠다고 약속 했다.
 
 지금은 동주산업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손영길은 '그때 박 장군은 자 신이 부산으로 주소지를 옮긴 지 석 달이 안되어 부산에서 투표용지가 나 올 수 없는데도 투표용지가 나온 것을 보니 원천적 부정선거라고 흥분했 다'고 기억한다. 그때 송요찬 참모총장 부관은 손 대위와 육사11기 동기 인 김성진 대위였다. 김 대위가 손영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부산병기학 교에 교관으로 있는 육사 후배가 여당후보 지지 교육을 사병들에게 하라 는 지시를 거부했다가 구속되었으니 선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손 대위는 박정희에게 보고했다. 박정희는 즉시 전화기를 들어 병기학교장에게 지시 했다.
 
 '그 장교에 대한 처벌조치를 중지하시오.' '방첩대에서 한 일입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사령관인데. 내 명령대로 하시오.'.(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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