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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위 진압군에 실탄 지급 마시오'
 박 '시위 진압군에 실탄 지급 마시오'
 
 1960년 4월18일 저녁 국회의사당 앞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던 고려대 학생들이 종로4가에서 쇠뭉치, 쇠사슬, 곤봉을 휘두르는 정치깡패들로부터 습격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19일자 조간 신문에 실린 피투성이 대학생들의 사진은 학생들과 시민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날 아침 대통령 경호를 책임진 경무대 경찰서(서장 곽영주)는 서울지구를 관할 하는 육군6관구 사령관 엄홍섭 소장에게 병력을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 다.
 
 계엄 사령관은 정우식 헌병부장 겸 헌병5대대장이 지휘하는 2개 중대 병력을 이끌고 청와대로 갔다. 이들은 총은 들고 갔지만 실탄은 휴대하 지 않았다. 경무대에 간 엄 사령관이 김재춘 참모장에게 '서울의 요소를 지키는 병력에 실탄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은 군인이 실탄을 지니게 되면 격앙된 상황에서 시위대에 발포할 우려가 있다고 판 단했다. 시위대 때문에 길이 막혔다는 핑계를 대면서 실탄 지급을 회피 했다. 육본에서도 독촉이 내려왔다. 엄 사령관은 질책하는 전화를 걸어 왔다. 김재춘은 지연작전을 벌이면서 넉달 전까지 직속상관으로 모시던 박정희 군수기지사령관이 생각났다. 부산으로 장거리 전화를 걸었다.
 
 '김 대령, 요즘 어때요. 잘 되어 갑니까. 서울도 상당히 불안한 모 양이던데.' '서울은 지금 야단입니다. 전 시민이 궐기해서 모든 차량의 통행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것보다 각하….'.
 
 김재춘으로부터 실탄지급 명령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박정희 가 말했다.
 
 '저 사람들이 이제는 완전히 돌았군 그래. 우리도 못하는 구국운동 을 젊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하겠다는데 뒤에서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실 탄사격을 하겠다니…. 실탄공급은 참모장이 막아야 합니다. 이 기회에 아주 바로잡아야지 나라가 위태로워요.' '알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막겠습니다.'.
 
 정오 무렵부터 경무대 앞에서 발포가 있었다. 1960년도 육군연감은 '이 발포에는 경무대로 파견된 헌병들이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백50명의 헌병들은 M1소총과 공포탄만 가지고 출동했기 때문에 경 찰이 쓰는 카빈 실탄을 받아서 쏠래야 쏠 수가 없었다. 군의 불발포 방 침은 사실상 이때부터 출발했다.'(그러나 당시 발포사진에는 경찰관들 이 M1소총을 쏘는 장면이 찍혀 있고 헌병들도 발포에 가담했다는 주장 도 있다.).
 
 4월19일 경무대에서 있었던 국무회의는 오전11시에 끝났다. 김정렬 국방장관이 프랑스 주재 무관의 외화 사용건에 대한 대통령 결재를 받 고 나오니 경무대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시위군중의 함성과 공포를 쏘 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오를 넘기자 팽 팽 팽 하는 실탄사격 소리가 들 리는게 아닌가.
 
 '이건 실포소린데, 아니 진짜 발포를 하나.'.
 
 옆에 있던 홍진기 내무장관이 물었다.
 
 '아니, 실포가 뭐요?' '진짜 탄환 말이요. 공포가 아닌 진짜 탄환!'.
 
 홍 장관은 부산하게 연락을 취해보더니 김 장관에게 다가와서 말했 다.
 
 '아무래도 계엄령을 걸어야겠소. 경찰의 능력은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아니 경찰이 책임지고 막아야지 군대가 어떻게 시위 군중을 해산시 킵니까.'.
 
 경찰 발포로 약 1백명 사망, 경찰관도 광화문에서 시위군중에게 맞 아 죽음, 서울신문사와 반공회관 방화, 파출소들이 불타고 있음. 이런 보고에 이어 광화문에 있는 경찰 중앙 무기고가 습격당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김정렬 장관은 '정말 경찰 가지고는 안되겠구나'하는 판단을 했다. 홍 장관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상황을 보고 하니 이승만은 놀라면서 반문했다.
 
 '뭐, 부정선거? 아니 후보자가 나 혼자였는데 무슨 부정선거야?' '사실은 부통령 선거에서 경찰이 잘못 생각을 해서 부정을 저질렀습 니다.'.
 
 김정렬은 회고록에서 이때 이승만 대통령이 '각지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데모가 일어났는데도 부정선거란 말조차 들어보지 못하신 것 같았다'고 썼다. 아마도 인의 장막을 친 비서들과 자유당 강경파가 노 대통령의 심기에 지장을 줄 만한 신문과 정보를 차단한 때문이라고 김 장관은 생각했다.
 
 육군연감은 4·19계엄 부분을 서술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은 공보실에서 발행하는 영자신문 '코리언 리퍼블릭' 밖에 읽지 않았다. 외국 신문 통신도 관계 각료나 비서들이 스크랩해주는 정 도만 읽었다. 외교나 군사문제를 제외하고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 나는지도 몰랐다. 이 틈을 이용해서 자유당 간부 몇몇 사람들이 권세를 휘둘렀다.>.
 
 '아니, 그런데 데모 군중이 그렇게 많이 죽었나?' '예, 사태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네들, 계엄령이 무엇인지 아나?'.
 
 홍진기 장관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 사태 가 발생했을 경우나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하면서 법전을 외우듯이 대답하자 대통령은 '아니, 학생이 적인가?'하고 질책했다.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계엄령이야. 계엄령은 그런 데 내는 게 아니야.'.
 
 김, 홍 두 장관은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오후1시 로 소급하여 서울지구에만 경비계엄을 선포하기로 하고 계엄사령관으로 는 원용덕 헌병총사령관을 내정했다. 그런데 시위가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지방으로도 확산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서울에는 헌병대와 공병대 병력 밖에 없었다. 김정렬 장관은 경비계엄을 비상계엄으로 바꾸고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광주로 확대하여 이를 선포하기로 하고 송요찬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도록 다시 대통령의 결재를 받았다. 김정렬 장관은 하와이로 출장간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 관을 대리하고 있는 에머슨 커밍스 부사령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가평 15사단을 계엄군으로 삼아 서울에 진주시키겠다고 통보하여 양해를 받 았다. 5대 도시에 대한 비상계엄령은 이날 오후 5시를 기해서 선포되었 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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