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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구 계엄사무소장 박정희
 부산지구 계엄사무소장 박정희
 
 공군참모총장 출신인 김정렬 국방장관은 4월19일 오후 5시를 기해서 서울 등 전국 5대 도시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 육군참모총장 송요찬계 엄사령관이 서울로 진입하는 15사단을 이용하여 쿠데타를 일으킬 만일의 가능성에도 대비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계엄사령관이 야심이 있든지 없 든지 간에 주위에서 잘못 부추긴다면 휘하 병력을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 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1군 사령관 유재흥 중장을 통해서 견제 하기로 했다'는 요지의 증언을 남겼다. 김정렬은 일본육사 54기 출신으 로서 유재흥보다 1기 선배인데다가 집안끼리도 절친한 사이였다. 김정렬 장관이 1군 사령부가 있는 원주로 전화를 걸어 유재흥 사령관을 찾으니 그는 마침 교육에 참여하러 서울로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김정렬과 유재흥은 중앙청 뒤편에 있는 별채 건물에서 만났다.
 
 '병력을 동원해서 계엄사령관을 꼼짝 못하도록 감시를 해야겠소. 몇 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소?' '2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지휘소를 설치할 생각이오?' '중랑천 부근에 주둔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재흥 사령관은 중랑천 근처 한독약품 공장을 임시 지 휘소로 설치하여 서울시내로 들어간 15사단의 거동을 감시, 견제했다는 것이다. 유재흥 장군은 15사단으로 가서 조재미 사단장과 중대장급이상 장교들을 집합시킨 다음 '실탄은 휴대하되 내 명령 없이는 사격하지말라' 고 지시했다고 한다(회고록 '격동의 세월'). 그는 '임시 지휘소에서 대 동한 참모들과 함께 사태를 주시하면서 군부의 예상치 않은 행동을 미연 에 방지하기 위해 감독했다'고 썼다.
 
 2개 사단을 서울의 외곽에 배치했다는 김정렬의 언급은 사실과 다르 다. 육군의 20개 전투사단 중 18개를 지휘하는 1군사(당시는 3군 사령부 가 창설되기 전)의 태도에 대해서 매카나기 주한 미국 대사도 관심이 많 았다. 4·19 며칠 전 매카나기 대사는 유재흥 장군을 초청하여 저녁 식 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자꾸 시위가 일어나고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데 야전군에선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야전군은 절대로 정치에 간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선을 지키는게 우리 임무입니다.'.
 
 유재흥은 '그는 무슨 낌새를 채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며 그 런 사태가 벌어진다 하더라도 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답변에 안심하 는 듯했다. 미국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군부보다는 야당이 집권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을 것이다'고 증언했다. 그 동안 이승만 대통령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왔던 국군은 이제 권력의 편에 서느냐, 국민의 편에 서느냐의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19일 AP통신은 '군대는 정숙히 서울로 들어왔다. 그들은 데모대원들 에게 손뼉을 치던 연도의 구경꾼들로부터 환영의 갈채를 받았다. 몇몇 군인들도 미소짓고 손을 흔들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9일 부산 에서는 학생 데모대에 합세한 군중 속에 군인도 끼여 있어 이들은 학생 들에게 돌을 날라다 주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부산에서도 돌을 던지고 방화하는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하여 15명이 죽었다. 4월19일 시위로 인한 사망자는 서울에서 1백10명, 마산 10명,광 주 8명을 포함하여 모두 1백43명이었다. 4월19일 밤 8시를 기해서 정부 는 계엄포고문 제 3호를 통해서 계엄부사령관에 장도영 2군사령관, 부산 지구 계엄사무소장에 박정희 군수기지사령관, 대구지구는 윤춘근소장,광 주지구는 박현수 소장, 대전지구 계엄사무소장에는 임부택 소장을 각각 임명했다. 박정희 소장의 이름이 언론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그 11 년전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 처음이었다.
 
 박정희 소장은 이날 저녁 경고문을 발표했다.
 
 '시민 여러분과 학생 제군은 냉정과 이성을 찾아 여러분의 가정으로 돌아가 주시기를 바라며 만약 본인의 이와 같은 간곡한 호소를 듣지 않 고 법과 질서를 문란케하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지극히 불행한 사태가 발 생할 것이며 본인은 부득이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 다.'.
 
 박 소장은 통금 시간을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로 확대했 다. 박정희는 부산의 기자들과 회견하는 자리에서 일문일답을 주고 받았 다.
 
 <문: 집회는? 답: 모든 집회는 계엄사령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 마산 사건의 경우, 소요 주모자 색출에 경찰의 고문이 많았다 는데 부산의 경우는?.
 
 답: 이제부터는 수사에 그런 일은 없고 어디까지나 인권을 존중할 것이다.
 
 문: 소요 주모자가 적발되면 엄벌할 것인가? 답: 아직 무어라 말할수 없다. 상부 지시에 따르겠다.
 
 문: 경찰에 연행된 학생들은 어떻게 되나? 답: 상부 지시를 기다리고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집에 돌려보 내주고 싶다.
 
 문: 신문보도에 대한 검열기준은 어디에 두나? 답: 선동적인것과 허위사실은 통제하겠다.
 
 문: 신문기자들에 대한취재활동의 자유보장은? 답: 물론 최대한 협력하겠다.>.
 
 박정희 소장은 또 '계엄령 선포 전의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선포 후의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지구 계엄사무소는 21일 경찰이 넘긴 소요 혐의자 41명을 심사하여 12명만을 구속하고 나머지는 석방했다. 박정희는 기자들에게 '이들 구속자는 건물 파괴, 방화에 앞장선 이들로서 학생들은 한 사람도 없고 구두닦이, 전차 표파는 사람 등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계엄 선포 후 연행자를 고문하 는 경찰관들은 엄벌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날 박정희 소장은 동부산 경찰서 사찰계 형사들이 시위 주동자를 색출한다고 데레사 여중-고에 들 어가서 수색을 한 데대해서 이를 중단시키고 '앞으로는 경찰은 물론, 군 수사기관원도 사전 승인 없이는 학원 수색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24일 부산계엄사무소 예하 군검합동수사반은 민주당원을 시위 주모 자로 몰아 고문한 부산진 경찰서 사찰계 형사 한 사람을 구속하고 수 명 의 형사들을 연행했다. 계엄령이 퍼지자 군대가 학생, 시민, 언론, 야당 편에 서서 이 정권의 하수인 격인 경찰을 몰아세우고 있었다.아래로부터 이미 정권 교체가 시작되고 있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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