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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반으로 송요찬장군 지지한다.
 정부 수반으로 송요찬장군 지지한다.
 
 경무대 후원에서 학생 대표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미국 매카나기 대사가 오셨습니다'란 전갈이 왔다. 대통령은 '기다리라 고해'라고 한 뒤 대화를 계속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야지'라고 되뇌인 뒤 학생들에게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 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고려대학생 유일나는 경무대로 오는 차중에서 안 내하던 이모 준장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애급의 나세르를 아시잖습니까. 우리는 적과 대치중이므로 2년 정 도 군정을 실시해 질서를 회복한 다음 민간정부를 출범시키면 될것입니 다.'.
 
 유군이 배석하고 있던 송요찬 계엄사령관을 쳐다보니 괜한 오해를 받게 되었다는 표정이었고 신임 외무장관 허정은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한참 생각하다가 '군정은 안돼. 우리는 애급과 달라'라고 했다. 유일나의 이 건의가 송요찬의 사주에 의한 것이란 오해가 있었다. 유일나는 '송 사령관은 오히려 우리가 대통령한테 하야를 권고하는 것조 차 반대했다. 다만 우리를 육본에서 경무대까지 안내해준 이석봉 준장이 '정말 자네들이 하야권고를 할 수 있나' '군이라고 해서 정치를 하지말란 법이 있느냐'고 말했을 뿐이다'고 증언했다.
 
 매카나기 대사가 경무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라디오에서 이승만의 하야 성명이 방송되고 있을 때였다. 매카나기 대사가 이승만에게 하야를 권고하여 결심을 하도록 했다는 통설은 완전히 엉터리이다. 오전 10시40 분부터 시작된 대사와 대통령의 면담에는 김정렬, 허정이 배석했다. 매 카나기 대사는 당초엔 미국 정부의 강경한 압력을 전달하려고 했었는데 하야성명이 나가는 바람에 성명서 내용을 확인하는 대화로 바뀌었다.
 
 김 정렬 장관이 옆에서 보충설명을 많이 했다. 김 장관은 '미국 정부가 빨 리이 성명을 지지하여 질서를 회복하는 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매카 나기 대사는 '우리는 각하를 한국의 조지 워싱턴으로 생각한다'고 말했 다.그는 이어서 '우리는 각하가 역사에서 합당한 위치와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김정렬 회고록에 따르면 이 말을 듣고 있던 이승만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우리 말로 '저 사람 무슨 잠꼬대야'라고 혼 잣말을 하더라고 한다. 매카나기 대사가 국무부로 보낸 면담 보고서엔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측의 배려와 관심에 감사했다'고 적혀 있지만.
 
 국군은 이승만의 하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군은 계엄령 하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임무를 맡게 되자 시위 진압을 포기하고 발포를 하지 않았다. 계엄군은 붙들린 시위학생은 풀어주고 고문 경찰관들은 잡 아 넣었다. 군심이 민심과 맞물려 돌아버리고 정권을 지탱하던유일한 물 리력 경찰은 계엄군에 의해서 무력화 되어버렸다. 4월26일 오전에 이승 만의 하야성명이 없었더라면 군의 봉기가 있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당시 1군 사령관 유재흥 중장의 비서실장은 정승화(육군참모총장 역임) 대령이었다.
 
 '1군사령부의 장교들이 계엄군으로 투입된 1군 산하 15사단 병력의 지휘관들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절대로 발포해선 안된다'고 부탁 할 정도였습니다. 민기식 부사령관이 이 사태에 대한 1군의 태도를 결정 하자고 사령관에게 건의하여 26일 아침에 군단장 회의가 열렸습니다. 나 도 이회의에 배석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 을 내렸습니다. 이 결의를 미군 수석고문과 김종오 육군참모차장에게 전 달하는 한편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대비한 일종의 후보계획도 마련했습니다. 이종찬 육군대학 총장을 진해에서 모셔와서 지도자로 옹 립한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이 장군을 태우러 갈 경비행기를 준비시켰습 니다.'.
 
 석 달 전부터 거사계획을 꾸미고 있던 박정희도 한때 이종찬을 지도 자로 모실 생각을 했었다. 육군대학 부총장으로 있던 김재규에게 '이총 장의 동참 의사를 타진해달라'고 부탁했다. 박정희와는 육사2기 동기이 자 고향 후배인 김재규는 얼마 뒤 '이 총장을 관찰해보니 혁명에 가담할 분이 아니다'는 답을 해왔다. 많은 장교들이 이종찬을 그런 일의 지도자 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는 존경을 받기는 원해도 쿠데타 같은 일에 직 접나서서 모험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김정렬은 생전에 '이 대통령의 하야를 내가 건의했다느니 미국의 압 력 때문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은 이 박사를 욕되게 하는 일이다'면서 진상을 가장 잘 아는 자신이 언젠가는 기록을 남기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사후에 나온 회고록에 그 때 상황이 실감있게 묘사 되어 있는데 이 기록에는 중요한 비화가 한 토막 있다. 이승만의 하야 성명이 나온 다음날(4월27일) 김정렬은 육본으로 가서 송요찬 참모총장 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때 총장 부관 김운용 소령이 들어오더니 '미군 군사고문단장 하우츠 장군이 편지를 보내왔다'고 했다. 송 장군이 읽어보라고 했다. 김 소령이 즉석에서 번역하여 읽어 내려가는데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김 장관이 편지를 가져오라고 하여 원문을 읽었다. '8군 사령관의 명을 받들어'라고 부기되어 있는 편지였다. '대단한 변동을 겪 고있는 한국에서 미국 정부는 앞으로 송요찬 장군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송요찬을 쳐다보고 물었다.
 
 '송장군, 어떻게 생각하시오.' '아이고, 만고역적이 되게요.'.
 
 김정렬은 회고록에서 '긴장된 송 장군의 얼굴에서는 내심 좋아하는 듯한 표정이 어쩔 수 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고 썼다. 김 장관은 '다시 예기치 않은 역사의 소용돌이가 내 앞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아 끄는'기 분을 느끼면서 매그루더 8군사령관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 편지는 팬타곤의 의도요, 국무성의 의도요, 아니면 당신들이 여 기서 멋대로 만든 것이오?' '그야 국무성의 의도지요.'.
 
 '아니 미국은 문민우위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나라인데 어떻게 군 인이 수반이 되는 정부를 지원하겠다고 하시오? 국무성의 지시라고 하지 만여기서 그런 보고를 올리니 그런 지시가 내려온 것 아닙니까.' 매그루더 사령관이 매카나기 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장관은 대사에게 곧 거기로 가겠다고 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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