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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와의 결별
 시위대와의 결별
 
 국제신보 편집국장 겸 주필이던 이병주는 5·16 뒤 군사정권에 의해서 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집권하기 전인 4·19 전후의 박정희 모습을 실감있게 묘사했다(월간조선 1991년7월호에 실렸던 '대통령들의 초상'). 그가 타 계하기 전에 쓴 이 글을 통해서 떠오르는 박정희의 이미지는 '청렴한 유아 독존'이다. 부산일보 주필이자 대구사범 동기인 황용주가 군수품을 횡령한 죄로 군법회의에 넘어간 한장성을 화제로 올리면서 개탄을 하니 박정희는 어깨를 펴면서 결연하게 말하더란 것이다.
 
 '여기 도의적으로 말짱한 사람이 있어. 걱정하지 마.'.
 
 박정희는 좀처럼 자신의 청렴함을 드러내거나 부하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으나 강한 자의식(자의식)을 갖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이런 자의식을 품고 있었기에 그는 많은 상급자들을 속으로는 경멸하고 있었고 상관들은 금전적인 면에서 약점이 없는 박정희를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다. 박정희가 1군사참모장일 때 그 밑에서 참모로 일했던 박경원(소장 예편)은 '그 분은 총으로 혁명한 것이 아니라 인격으로 혁명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박정희가 혁명군을 조직한 것은 그가 실병을 지휘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직할 병력이 1개 소대도 안되는 2군 부사령관으로 있을 때였다. 자신의 직위가 아 니라 자신의 인격을 통해서 많은 부하들을 사선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비 결의 한 핵심이 청렴이었다. 이 무렵 박정희를 가깝게 모신 한 인사는 익 명을 조건으로 하여 이런 증언을 했다.
 
 어느 겨울날 신당동 자택으로 찾아가니 육영수가 가족들과 한방에 옹 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연탄이 모자라 한 방에만 불을 넣는다'는 설명 이었다. 이 장교는 다음 날 연탄을 한 차 사서 신당동으로 가져갔다. 연탄 을 부리고 있는데 박정희가 나타났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는 바람에 맞 닥뜨리게 된 것이다. 박정희는 화를 냈다.
 
 '이 놈아, 누구한테 뇌물을 받아먹고 이런 짓을 하나. 이 돈 어디서 났어?'.
 
 이렇게 혼을 내더니 '내일 군법회의에 넘기겠어'라고 호통을 쳤다. 이 때 육영수가 남편에게 '당신은 뭘 해주셨나요'라며 대들었다. 입장이 난처 해진 박정희는 부하를 보고 다시 한번 '넌 내일 군법회의야'라고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박정희의 이런 청렴성은 그의 생리이기도 하지만 야 망을 품은 사람의 의도적 결심이었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4·26 이승만 하야 직후 이병주는 황용주와 박정희 사이에 이런 대화 를 목격했다고 쓰고 있다. 황용주가 '통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군 인들이 정권을 잡고 즉시 북쪽의 김일성을 판문점으로 불러 당장 휴전선을 틔워 한 나라를 만들어버리는 일이다'라고 했다. 박정희는 얼굴이 일순 핼 쑥해지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너 무슨 말을 해. 위험천만한 놈이 로구나. 너 같은 놈하고는 술자리 같이 못하겠어'라면서 방문을 걷어차 열 곤 돌아가버리더란 것이다. 이병주가 모르고 있었지만 이때 황용주, 박정 희 두 사람은 이미 쿠데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박정희의 이 날 행동은 허를 찔린 사람의 반사적 행동이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승만 하야 뒤부터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이 승만 하야 뒤의 시위는 그 전의 시위와는 성격이 달랐다.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어용 총장, 교장, 교수, 교사 물러나라'는 식의 학내사태로 변질되 었다. 4·26 전에 '용감한' 시위를 못했던 학교에선 시위를 했다는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데모를 해야 했다. 그때 중학교 2학년생이던 기자도 무엇을 위한 데모인지도 모르고 상급생이 이끄는 대로 시내로 나가 시위행진을 했다.
 
 박정희 소장의 계엄군이 엄호하는 가운데. 이 시점부터 박정희와 학생 들의 밀월은 끝나고 사이는 벌어지게 된다. 박정희는 반 이승만이란 점에 서는 학생들의 시위에 공감했으나 이승만이 물러난 뒤의 무질서와 난동을 용인할 생리도 입장도 아니었다. 박정희가 학생시위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 상을 굳히게 된 것도 4·26후부터였다.
 
 4월27일 밤 부산에선 전 농림부장관 양성봉, 금성중고교 교장 우덕준 의 집을 군중이 습격하여 군인들이 공포를 쏘아 해산시켜야 했다. 경남 의 령에서는 군중이 자유당 간부들 집을 파괴하고 전기회사를 습격, 송전을 중단시켰다. 4월28일 박정희 부산지구 계엄사무소장은 조치를 취하기 시작 했다. 트럭 1백대를 뺏어타고 마산, 밀양, 창녕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형무 소와 경찰서를 습격하고 약탈을 일삼던 난동자 86명을 붙잡아왔다. 39사단 병력이 출동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전'을 벌였다고 한다.
 
 박정희 소장은 4월28일 계엄사무소에서 학생, 언론인, 군인 대표들을 초청하여 시국간담회를 열었다.
 
 학생들은 이런 말들을 했다.
 
 '우리는 부정선거 원흉과 부패한 공무원부터 발본색원 해주기를 바랍 니다.' '군인들 가운데도 부정선거에 앞장선 인물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자율적으로 처단하지 않으면 국민을 떳떳하게 대할 자격이 없습니다.'.
 
 '때묻은 기성세대는 물러나고 혁명주체인 학생들이 정권을 잡아야 합 니다.'.
 
 한 중견 언론인이 일어나더니 '학생들은 정권을 잡으러 데모했나. 4· 19에 양아치가 앞장섰으니 그러면 양아치가 정권을 잡으란 말인가. 남들이 다해 놓은 다음 체면치레 한다고 데모한 주제에 큰 소리를 치는 것은 부끄 러운 이야기다'라고 나무랐다. 다혈질인 부산일보 김종신기자는 취재하러 들어왔다가 열이 나서 일어났다.
 
 '지금은 무정부 상태입니다. 불량배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리를 휩쓸면서 방화, 강탈을 일삼고 있습니다. 차제에 군인들이 나서서 민족의 앞날에 참신한 바람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황필주 참모장이 일어서더니 김 기자를 반박했다.
 
 '군인이 정치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중이 고기맛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벽에 붙은 빈대가 남지 않아요.'.
 
 김종신은 이 말에 다시 반박하여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박 정희는 눈을 지그시 감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김종신이 보니 참모장의 말에 못마땅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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