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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총장 운동
 참모총장 운동
 
 5월31일자 부산일보에 '동아대학생들 총장배척 운동'이란 1단 기사가 났다. 그 이튿날 이 기사에 불만을 품은 동아대학생들이 부산 일보로 쳐들어가 창문을 부수고 기물을 파괴한 뒤 편집국에 난입했다. 학생들은 이상우 편집국장을 납치하여 '사과 호외'를 인쇄하게 했다. 부산일보 김종신 기자가 박정희 계엄사무소장에게 달려가 급보를 전했다. 박정희는 즉시 헌병을 출동시켜 주동학생 수십명을 체 포했다. 까만 안경을 쓴 박정희가 부산일보 사장실로 들어가다가 친구 황용주 주필과 마주쳤다.
 
 '신문쟁이들이 그동안 학생들을 선동하더니 이제는 좀 당해봐야 돼.'.
 
 이 때 헌병대장이 '동아대학 총장이 사령부로 와서 면회를 청했습니다'고 보고했다.
 
 '여기서 만나자고 해.'.
 
 조금 뒤 헌병대장이 또 들어와서 말했다.
 
 '신문사에선 만나기 싫답니다.' '그만두라고 해.'.
 
 바깥에 나갔던 헌병부장이 다시 들어오더니 말했다.
 
 '부산역 광장에서 만나자고 합니다.' '일국의 법무차관을 지냈다는 사람이 그 모양이야?'.
 
 광장에서 박정희 사령관을 본 정재환 총장이 항의했다.
 
 '부산일보만 제일이오? 평화적인 데모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소.학 생 잡아가는 게 군대요?'.
 
 박정희는 화가 나면 늘 그러하듯 턱을 약간 떨더니 빽 고함을 질 렀다.
 
 '결사대가 평화적인 데모요? 사회질서가 문란해지는데 지성인들이 각성을 해야지.'.
 
 박정희가 송요찬 총장 앞으로 용퇴하라는 편지를 보내고 김종필중 령이 주동한 연판장 사건이 계기가 되어 결국 송 총장은 물러났다.박 소장에게 호감을 가진 최영희 중장이 신임 육군참모총장으로 취임하 는 데 대해서 연판장 사건을 일으켰던 김종필 중령 등 8기 장교들은 불만이었다. 이들은 후임 총장으로 박정희나 박병권 소장을 희망했으 나 거명을 하면서 추천을 하고 다닐 입장은 아니었다.
 
 김종필 중령은 이종찬 국방장관을 찾아갔다고 한다(이낙선의 증언 록).
 
 <그들은 장관을 만나지 못하고 특별보좌관 방희 장군에게 차기 총 장의 인선에 참고할 사항을 건의하였다. 정군을 단행할 만한 인물일 것, 그사람이 참모총장으로 임명됨으로써 군내의 파벌이 없어질 수있 는 공정무사한 인물일 것, 정군이 끝나는 날 자기도 정군대상자로서 스스로 용퇴할 수 있는 뱃심 있는 인물일 것.>.
 
 김종필 총리서리는 '박정희 장군이 참모총장이 되면 정군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인을 추천할 입장은 아 니었다.
 
 박병권 장군 정도가 총장이 되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 했다. 당시 이종찬 국방장관이 일본 육사 후배인 유재흥 1군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추천할 것이란 말이 돌았다. 김종필 중령은 유재흥 장군을 찾아가서 '이런 분위기에선 총장에 취임하지 마십시오. 차라 리 명예롭게 물러나실 때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건의했다. 유재흥은 선선히 '그러면 물러나지'라고 했다.
 
 김종필과 유재흥의 인연은 박종 규(전 대통령 경호실장) 소령의 중계로 이루어졌다. 박 소령은 1958 년 유중장이 연합참모본부 의장으로 있을 때 그의 전속부관이었다.모 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박 소령이전출갈 때 자신의 후임으로 추천한 것이 김종필 중령이었다. 그 때 유재흥이 김종필 중령을 불러 의사를 물어보았다. 김 중령은 그러나 '지금 저는 계획이 있어서 미국에 가 공부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불러주십시오'라면서 사양했다.
 
 박종규는 김종필을 형처럼 따랐다. 1948년 김종필이 육사 8기로 졸업하여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에 배치되어 그 과에서 비공식 문관 으로 근무중이던 박정희를 만났을 때 이 과에는 박종규 하사도 있었 다. 박종규 하사는 이틀이 멀다 하고 구타사고를 일으키곤 했다. 일 본 소년비행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 박종규는 유 중사, 정 중사와 함 께 정보국의 3총사로 불렸다. 육본앞에 화교가 경영하는 중국 요리집 이 있었다. 이 삼총사는 퇴근 길이면 이 음식점에 나타나 행패를 부 리곤 했다. 그래서 주인이 퇴근 시간에는 문틈으로 박종규 하사 일행 이 정문을 나오는가를 엿보고 있다가 '악당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빨리 빨리 해서 해'하면서 음식을 내어오는 등 (물론 공짜로) 쩔쩔 맸다고 한다.
 
 김종필은 그런 박종규가 '디스 이즈 어 독, 디스 이즈 어 북'이라 면서 우직하게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6·25 동란중 일 등중사로 승진한 박종규를 지프에 태우고 가서 육군종합학교에 억지 로 입학시켜 장교로 만들어준 것도 김종필이었다. 박종규는 장교 생 활을 하면서 가정사로 인해 탈영, 잠적 등 사고가 많았다고 한다. 김 종필이 힘을 써 그를 정보국 인사계장으로 데려다 놓은 지 몇달 되지 않을때였다. 아내 박영옥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박소령이 집 에 오더니 자살한다고 우물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김 중령이 달 려가보니 박종규는 우물 속에서 양팔과 양다리를 벌려 벽을 민 채 떨 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자살할 생각이 있었더라면 머리부터 들어갔을 터인데 발부터 들어간 상태였다. 일종의 자살극이 라고본 김종필은 그를 끌어내 고민을 들어보고는 '전방에 가서 긴장된 생활을 해야 낫겠다'면서 그를 전출시켜 주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유원식 대령의 안내로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던 민주당구 파 보스 김도연 의원을 찾아가서 만난 적도 있다. 유 대령은 박정희 를 총장으로 밀어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그런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보이는데 5·16 뒤 박정희의 증언에 따라면 '그저 인사 정도였고 군 내의 동요에 관한 언급이 있었을 뿐 깊은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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