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요찬과 김종필
최영희 육군교육총본부 총장은 박정희에 의한 반란음모설을 조사하러 부산으로 갔다가 그의 군쇄신론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는 말했다.
'박 장군, 군대에선 협력이고 뭐고가 없어요. 승리 아니면 굴복 아니오. 이번 혁명이 옳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나가고 박 장군 같은 사람이 군을 맡아야지. 아니면 당신을 숙청하든지 말이야.'.
두 사람은 연이틀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2군 사령관을 지낸 적이 있는 최영희 중장은 후방 지역의 군 배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충고도 했다.
'당신 말이야, 바보가 아니라면 이곳에서는 혁명 일으키지마. 지방에 서 일어나 성공한 나라가 없어. 통신부대와 의무부대 갖고 뭘 하겠소. 3개 사단만 집어넣으면 단번에 진압될 텐데. 그러면 당신은 죽는 거지. 그건 그렇고 이젠 당신이 참모총장하쇼. 나는 그만둘 테니까.'.
사흘째 되는 날 최영희 중장은 송요찬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
'여기 와 보니 아무 이상이 없어요. 올라가도 좋겠소?'.
송요찬은 '부산은 아직 위험하니 더 있어. 내가 내려갈 테니까 거기 서 만나'라고 했다. 최 중장은 이종찬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보고를 했는데 그도 '내가 내려갈 테니 더 있으라'고 했다. 송요찬 총장 은 비행기로 내려와 군수기지사령부를 시찰하고 장병들 앞에서 훈시를 했다. 그런데 송요찬은 박정희 계엄사무소장이 그동안 시위대에 대해서 취한 조치를 칭찬하는 게 아닌가. 그 자리에서 이 연설을 들은 최영희 중장은 '내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총장이 정치적으로 논다는 생각 이 들었다'고 한다.
최영희 장군에 이어 이종찬 국방장관도 부산을 시찰하러 내려왔다. 5월9일 정부 대변인도 부산시위에 공산세력이 개입했다는 일부 정치인들 의 주장을 부인했다. 부산 등 지방 계엄상황을 시찰하고 돌아온 이종찬 국방장관이 9일 국무회의에서 그같이 보고했다는 것이었다. 같은 날 송 요찬계엄사령관도 태도를 바꾸고 기자들에게 '조총련 사주설은 사실무근' 이라고 말했다. 부산 기자들은 현지에 내려온 군고위층 인사들에게 '왜 평화적인 부산 시위에 조총련이 개입하고 있다고 덮어씌우느냐'고 대들 기도 했다.
부산군수기지사령부 기자회견장에서 송 총장은 옆에 배석한 박정희에 게 '언론검열을 중지해도 되겠는가. 자신있는가'라고 물었다. 박정희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 조치는 다음날 발효되었고 부산은 정상을 되찾았다.
송요찬 총장이 자신의 용퇴를 주장하는 박정희 소장을 내사하고 김종 필 중령을 구속했지만 대세는 이미 그의 편이 아니었다. 보통 때였다면 박정희와 김종필은 해임되거나 구속되었을 것이다. 혁명적 상황으로 변모한 격동기 역사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은 박정희와 김종필쪽이었다. 많 은 장성들과 장교들, 그리고 언론이 박정희와 김종필의 노선에 동정하고 호응하고 있었다. 서울 진주 15사단장 조재미 준장한테 김웅수 군수참모 부장이 부탁을 했다. 연판장 사건으로 구속된 김종필 중령 등 육사8기생 다섯명을 석방시켜줄 것을 송요찬 계엄사령관에게 건의해달라는 부탁이 었다. 조재미 장군은 물러날 결심을 굳히고 있던 송 총장을 찾아가서 이 부탁을 전달했다.
송요찬 총장은 육군 방첩대장 이소동 준장에게 지시하여 김종필등 다 섯명의 장교들을 풀어주고 총장실로 데려오도록 했다. 육본 연병장에는 소문을 들은 8기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총장실로 들어 간 김종필 중령은 송요찬 총장과 이런 대화를 했다고 한다(김종필 총리서리 의 최근 증언).
'날 더러 군복 벗고 나가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이유가 뭐야?' '우리나라가 4·19혁명으로 일대 전환점을 맞이했는데 그 시발이 3·15부정선거입니다. 총장께서는 이 부정선거에 앞장서시지 않았습니까. 이기붕에게 표를 1백20% 몰아주었다고 자랑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참 신한 후계자를 골라서 넘겨주시고 깨끗이 물러나십시오. 저희들도 나가 겠습니다. 군대가 깨끗하고 건실해야 그 뒤에서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 지 않습니까.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군 내부의 요인들을 참모총장께서 안 고 나가주십시오.'.
송요찬 총장은 마주 서서 이런 말을 하는 김종필 중령에게 '앉아'라 고 했다. 김 중령은 계속 서서 말했다. 그는 이 시점이 결판을 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나도 이 격동하는 상태 하에서 생각이 왜 없겠나. 귀관들이 그런다 면 한 이틀만 여유를 주게. 나도 생각해보고 결심하겠네.' '안됩니다. 오늘 저녁에 결심하십시오.'.
'그래 이틀도 여유를 못 준단 말이야?' '시간을 가지시면 결심이 또 물러집니다. 그러니 오늘 저에게 아주 수 모를 당하시는 자리에서 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송 총장은 털썩 자리에 앉더니 무겁게 말했다.
'그래. 내 행동은 스스로 결심할 테니까… 고생했어. 나가보시오.'.
김종필 중령이 연병장으로 나서자 기다리던 동기생들이 '와'하고 함 성을 지르면서 달려와 에워쌌다. 송요찬 총장은 5월19일 사표를 냈다.정부는 5월23일 송요찬의 후임에 최영희 육군교육총본부 총장을, 국방연구 원장으로 나간 김종오 참모차장 후임엔 최경록 국방연구원장을 임명했다. 허정 과정수반은 '3·15부정선거에 대한 문책은 육군참모총장과 차장의 경질로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과도정부의 내각수반 허정과 이종찬 국방 장관은 자유당 권력과 밀착되었던 군 고위층을 숙청해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었으나 과도정부란 한계로 해서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미8군 사령관 매그루더도 허정에게 '한국군의 재편은 현존하는 불안 정과 혼란이 종식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