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
대통령 일행의 만찬장과 마루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경호 원 대기실. 직선거리로는 박정희와 약12m쯤 떨어진 곳에 정보부 의전 과장이자 이날 밤의 암살작전 지휘자 박선호가 앉아 있었다. 박선호 는 마루와 통하는 대기실 문을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에 있는 응접 의 자에 앉아 총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경호원 대기실은 여섯평쯤 되 는데 가운데엔 길죽한 탁자가 있고 그 3면을 둘러서 의자 일곱 개가 놓여 있었다. 안쪽 벽에는 텔레비전이 붙어있었다.
박선호와는 친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해병간부후보 동기생 정인형 경호처장은 박선호와는 오른쪽 대각선 방향의 의자에 앉아 안주를 먹 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국가대표 사격선수 안재송 부처장도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갔다 와서는 박선호의 왼쪽편 맨 안쪽 의자에 앉 아 무얼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박선호는 손을 허리에 찬 권총에 대고 옆방인 만찬장에 신경을 집중시켜놓고 있었다. 심수봉의 기타소리가 들려왔다. 박선호는 박정 희의 콧노래 소리는 듣지 못했다. 기타 소리 속에서 총성 일발. 김재 규가 차지철을 쏜 것이다. 박선호는 권총을 뽑아들고 일어났다. 경호 처장 정인형, 부처장 안재송 두 사람은 의자에 앉은채 박선호의 얼굴 을 쳐다보았다. 의아한 표정. 안재송이 허리에 찬 총을 뽑으려고 손 을 가져갈 때 박선호가 소리쳤다.
'꼼짝마!'.
이어서 두번째 총성. 김재규가 박정희의 가슴을 내려다보면서 쏜 것이다. 박선호는 제1발과 제2발 사이는 4-5초 간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두 경호관의 손이 권총으로 향했다.
'총뽑지 마. 움직이면 쏜다. 야, 우리 같이 살자!'.
박선호는 둘도 없는 친구 정인형을 향해서 소리쳤다. 정 처장의 안색이 변하더니 포기하는 기색이었다. 옆방인 주방쪽에서는 연발 총 성과 고함이 잇따라 들려왔다. 안재송이 정인형의 얼굴을 보더니 결 심한 듯 권총을 뽑으려고 앉은 자세에서 상체를 오른쪽으로 홱 돌렸 다. 박선호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안재송은 엎어지듯이 쓰러졌다.
검시 결과 왼쪽 어깨로 들어간 총탄은 등판의 오른쪽 아래를 향해서 진행하다가 살에 박혔다. 이 탄도는 안재송이 일어서지도 못한 상태에서 피격되었음을 말해준다. 육군과학수사연구소 법의과장 정상우 소령의 사체검안서에 따르면 안재송은 이 한발에 허파나 심장이 손상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사료된다는 것이다.
이 순간 박선호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아 있던 정인형도 몸을 일 으켜 권총을 뽑으면서 박선호를 향해서 덮쳐오듯 다가왔다. 문쪽으로 2보가량 뒤로 물러서면서 절친한 친구를 향해서 탕. 정인형은 앞으로 꼬꾸라졌다. 탄알은 왼쪽 목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직선관통을 했다. 정상우 소령이 작성한 사체검안서에 따르면 목 관통상으로 목에 나 있는 기도와 혈관이 파괴되어 질식사 또는 공기전색증으로 사망케 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박선호는 '그때 두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었으면 나는 당했을 것 이다. 뒷걸음 치다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고 재판정에서 진술했다. '같이 살자'면서 그가 두 경호원을 붙들어 둔 시간은 약 15 초. 박선호는 그 15초가 길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박선호는 또 '안재 송이가 총을 뽑지 않았더라면 정인형도 뽑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본인도 그들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고 군검찰에서 진술했다.안 재송은 0.7초 안에 권총을 뽑아서 25m 떨어진 곳에 있는 박카스 병을 맞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었지만 선수를 빼앗겼던 것이다.
박선호가 대기실에서 마루로 뛰어나가는 순간 전깃불이 나갔 다.이 전깃불이 조금 일찍 나갔더라면 박선호가 당했을지 모른다. 그 랬다면 두 경호원이 안방으로 뛰어들어가서 치명상을 입지는 않은 박 정희를 구출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마루로 나선 박선호는 주방 을 향하여 플래시를 비추면서 '나 과장이다.불 켜!'라고 고함을 질렀 다.
나동의 지하실에는 보일러와 냉동시설 및 배전시설을 통제하는 방 이 있었다. 이곳을 관리하는 강무홍 기관공은 신문을 읽고 있다가 총 성을 들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전기 합선이라고 생각했다. 냉동실 문 바깥에 있는 배전판을 열고 인입선 주스위치를 내렸다. 나동 전체가 정전이 된 것이다. 강무홍은 지하실 계단을 통해서 지상으로 올라가 는데 주방 쪽에서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는 소리가 들렸다 . 그는 합선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급히 뛰어내려와서는 라이터를 켜고는 배전판을 비추면서 스위치를 다시 올렸다. 겁이 난 그는 지하실 문을 안으로 걸어잠그고 전등을 다 끄고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불이 다시 켜지는 것과 동시에 박선호의 눈에는 안방 문 모퉁이 를 도는 마루에 김계원이 엉거주춤 서있는 것이 보였다. 김계원은 김 재규가 안방에서 두 발을 쏘고 불이 꺼지자 마루로 나와서 '대기실, 주방, 안방 사이 중간지점 벽에 (기대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한 20초뒤에 다시 전깃불이 들어오고 김재규가 마루에서 박선호의 권 총을 빼앗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김 계원은 공포와 주기로 해서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는 뜻이다.
제미니 승용차 안에서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세 사람은 허리에 찬 권총에 손을 대고 총성이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의 앞뒤 문을 살짝 열어놓았다. 이 제미니는 주방 벽면과는 나란히 놓여있었다. 유 성옥과 이기주가 앉은 자리는 주방쪽이었고 박흥주는 반대편이었다.
유성옥이 차 안에서 주방쪽을 주시하고 있는데 청와대 경호원으로 보이는 세 사람은 주방 밖 정원에 모여 잡담을 하고 있었다. 식당차 운전사 김용남이 제미니 쪽으로 다가오더니 앞자리에 않은 박흥주 대 령을 힐끗 살펴보고는 주방 안으로 사라졌다. 조금 후에 두 경호관이 주방안으로 들어가고 한 사람이 혼자 바깥에 남아있었다. 차 안의 세 사람은 손을 권총에 갖다대고 총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부영화에서 누가 먼저 총을 뽑느냐로 진땀나는 그런 순간이었다. 영화와 다른 점 은 상대편인 경호관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방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방에서 첫 총성. 해병대 하사 출신 경비원 이기주는 딱총 소리 같다고 느꼈다. 박흥주와 이기주, 유성옥은 권총을 빼들고 미리 열어 둔 차문을 밀고나가 한 7m 떨어진 주방을 향해서 뛰었다. 박흥주 대 령은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면서 뛰었다. 총성과 함께 주방 바깥에 남 아 있던 사람(대통령 승용차 운전사 김용태)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 다. 그를향해서 유성옥은 뛰었다. 그 사람(류성옥은 경호원이라고 생 각했다)은 오른 쪽 출입문을 통해서 주방으로 들어서더니 뒤돌아보는 동작을 취했다. 유성옥은 그가 권총을 빼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 한 3m 앞에 있는 그를 조준하여 첫 총탄을 발사했다. 푹 쓰러지더니 안 쪽 바닥으로 기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